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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인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10.11 조회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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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와 상품성. 우리가 기대하는 재공연의 성과는 무엇인가?

김예림_무용평론가

매년 1200건 이상의 무용이 공연될 만큼 양적으로 충분히 팽창해있는 무용 시장이 이제는 질적 발전을 도모해야할 때임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무용계는 독특하게도 장르별로 세 개의 국립 단체를 두고 있고 20개 이상의 시·도립 무용단이 운영되고 있으며, 세대와 장르에 따른 각종 지원제도가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무용은 경쟁적으로 공연되었고 입지를 넓히며 성과도 얻었지만, 많은 노력을 순간의 무대에서 바치는 일회성의 허무함도 맛보았다. 그 일회성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많은 무용 작품들이 재공연을 시도하고 있다. 사실 재공연의 목적은 다양하다. 명작을 공유하기 위해, 미완성작을 완성하기 위해, 상업적 수익을 위해, 실적과 경력을 위해…. 그 가운데 가장 바람직하고 발전적 목적이라면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함일 것이다. 이는 양적 팽창에서 질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현 과제와도 닿아 있다.
규모와 분야별로 간단히 언급해보면 우선 세 국립단체는 장르적 특성에 따라 재공연에 대해 다른 운영을 하고 있다. 국립발레단의 경우 발레라는 특성상 레퍼토리 작업이 주요 기획을 차지하고 있고, 오히려 신작 개발이 난이도 높은 과제가 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3대 안성수 예술감독에 이르기까지 확연히 다른 예술적 색채와 상주단원을 두지 않는다는 시스템의 문제 등으로 전임감독의 작품을 재연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올 해 안무 공모 프로젝트인 픽업스테이지 ‘스텝업’으로 기존 창작물에 제작 시스템을 지원해 완성도 높은 레퍼토리로 발전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68개 응시작 중 선정된 세작품은 향후 레퍼토리로 발전시켜 국내외로 유통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정철인의 <0g> 등 수작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성과를 얻었다. 국립극장 시즌제에 따라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고 있는 국립무용단은 윤성주 예술감독 기간 동안 <향연>이라는 막강한 레퍼토리를 발굴했다. 제작비 집행에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재공연되고 있고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국립현대무용단 ‘스탭업’ 정철인 <0g> ⓒ황승택



국립현대무용단 ‘스탭업’ 이은경 무용학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 ⓒ황승택
그밖에 많은 시, 도립 무용단이 매년 신작을 발표하고 있는데, 짧게는 1년에서 길게 3년이 주어지는 예술감독 임기 탓에 예술적 방향성을 유지하는 단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매년 신작제작이 의무이고 예산도 그에 따라 집행되기 때문에 전임감독의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특이한 경우로 부산시립무용단의 김용철 예술감독과 인천시립무용단의 윤성주 예술감독은 부임 이전 자신의 안무작을 무용단에 맞게 업그레이드시켜 호평을 받았다. <신들의 만찬>을 성공시킨 윤성주 감독은 2003년 작 <'비(悲)-오이디푸스>를 제작 중에 있다고 한다. 수익, 공연장, 무용수 확보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운 공공무용단 대부분 수월한 환경에 비해 레퍼토리 구축에 좋은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시도립 무용단의 단장이 시장, 부시장, 문예회관 관장인 것을 보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예술을 이해하는 전문 행정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축제 중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SiDance, 창무국제공연예술제, 국제현대무용제(MODAFE), K-BALLET WORLD, 부산국제무용제, 2인무 페스티벌 등의 무대에 우수작품이 선발, 재연되고 있다. 서울무용제나 전국무용제처럼 신작 경연을 중심으로 하는 경우 수상작의 재공연, 레퍼토리화에 더 많은 기획력이 발휘될 필요가 있다. 재공연을 참가조건으로 하는 축제도 있다.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인데, 기 발표된 우수작의 유통을 목적으로 해외 관계자들 초청 매년 60여 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개인공연의 어려움으로 많은 무용가들이 축제 참가를 희망하는 추세를 보면 축제의 레퍼토리 육성/보존 역할은 과거보다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개인무용단의 경우 무용단의 10주년, 20주년 등을 기념하는 대표작 재연은 종종 볼 수 있지만 신작 대다수는 일회성에 그치고 있다. 재공연을 하지 못하는 입장은 둘로 나뉜다. 처음부터 다시 모으기 힘든 물량과 인력을 쏟아 부어서 재공연을 계획하지 않은 경우와, 재공연을 희망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 재공연에 필요한 무용수와 스텝 확보, 원하는 공연장의 대관, 홍보와 관객유치가 어려움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은 자금이다. 대부분의 지원제도가 신작을 우선으로 하고 있고, 재공연을 지원하는 경우 신작에 비해 적은 지원금을 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3년 주기로 실시하고 있는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의 최근 결과를 보면 월수입이 아예 없거나(26.2%), 다른 돈벌이를 갖지 않는 전업 예술가 (72.5%)임에도 지원금 수혜 경험은 20%를 밑돈다고 한다. 물론 무용장르에 공공기금 의존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나, 개업/개인 기부가 거의 없는 한국의 무용 환경 속에서 공연 수익도 기대하기 어려우니 결국 재공연을 하면 할수록 무용가의 희생이 늘어나는 것이다. 필자가 만난 많은 안무자들은 자신의 작품이 사장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초연의 미흡함을 보완해 더 나은 작품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했다.
다행히 현실성 있는 무용가 몇몇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초연부터 저비용 고효율의 공연으로 손해를 줄이고, 유통에 수월한 작품규모를 갖는 것이다. 그 결과 젊은 무용가들의 프로젝트 그룹들이 활발히 생성/재조합 되고 있으며, 재공연을 통한 업그레이드가 익숙한 일이 되어 지원제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진예술가 지원, 상주단체육성지원 등에서 리서치 과정, 쇼케이스, 재공연의 단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지원제도가 과정주의를 존중한 만큼 무성의, 무책임한 모습은 지양되어야 하고, 완성시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될 것이다.
최근 만난 바람직한 업그레이드 작업 중 하나는 현대무용가 김경신과 영국 무용가들의 협업이다. 긴 호흡으로 4년째 양국을 오가며 리서치와 실험, 쇼케이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올 해 MODAFE에서 일부를 공개했고 2019년쯤 완성작을 선보인다고 한다. 젊은 단체 고블린 파티는 특이한 발전과정을 거쳐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2016년 초연한 창작산실 우수작 <옛날 옛적에>를 소외지역 순회사업에서 공연하며 1년 간 초보 관객의 반응을 맞는 혹독한(?)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들은 관객의 반응을 모아 부족한 전달력을 보완하고 밀도와 속도에 대한 실험을 한 끝에 버릴 것 없이 알찬 완성작을 선보였다.



고블린파티 <옛날옛적에> ⓒ고블린파티 제공
재공연이 발전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차진엽의 <페이크 다이아몬드(FAKE DIAMOND)>는 2013년 창작산실 우수작으로 초연 된 뒤 2015년 창작산실 재공연 지원작으로 선정되면서 제목(주제)을 제외하고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공연됐다. 재공연을 지원하는 목적은 관객의 향수 충족과 창작자의 업그레이드 기회 제공일 것이다. ‘리부트(Reboot)’라는 말로 자신을 변호했지만 이 작품은 엄연히 신작이었고 지원제도가 원하는 바람직한 레퍼토리 작업이 아니었다. 최근 10년 간 가장 많이 공연된 현대무용 중 하나인 신창호의 <노 코멘트>(2002)는 2012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발레단에 판매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축하공연, 갈라쇼에 반복되면서 초연의 분위기가 다소 사라져 아쉽다. 여전히 LDP무용단의 탁월한 기량과 흥겨운 춤은 감상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내전 희생자 앞에서 통곡하는 남성의 사진에 영감을 받았다는 <노 코멘트>의 초연에서 먹먹한 슬픔으로 가슴을 치는 신창호를 기억하면 지금의 신명이 낯설기도 하다. 모리스 베자르가 생전에 “내 작품 <볼레로>는 표트르 나델리(20C 발레단 교사)를 통해 전해진 것이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라고 말 할 정도로 레퍼토리 보존에서 정확성은 중요한 것이며, 그 정확성에는 동작뿐 아니라 뉘앙스와 의도도 포함될 것이다.
최근 민간 축제 등 해외진출의 창구가 많아지고 무용가들의 독자적 해외 교류가 늘어난 점도 재공연의 기회를 늘이고 있다. 그런데 해외 공연이 많아지면서 재공연의 목적 중 ‘완성도 높이기’와 ‘유통용 상품화’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 고민하는 무용가들이 늘고 있다. 늘 저울질되는 예술성과 상품성에 대한 문제(둘 다 갖춰지면 좋다는 이상적 결론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이다. 재공연을 반복하다보면 무대세트를 간소화 하거나 스텝을 줄이고 그만큼 예술적 욕심을 버리게 된다. 작품의 콤펙트(compact) 화는 투어에 수월하겠지만 성장과정에서 작품 규모를 확장하지 못하고 유통에만 초점을 두는 무용가가 되는 것은 우려가 되는 일이다. 지난 해 11월 SCF 국제 세미나에서는 이 점을 두고 해외 디렉터들과 무용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기획자들은 “예술성에는 규모나 길이가 중요치 않다.”는 입장이었고, 안무가 개발의 입장에서는 “소품을 잘 만드는 안무자는 많이 나왔지만 그 중 풀-타임(한 시간 품의 하루 공연)을 책임질 만큼 성장된 안무가는 많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대작이 능사도 아니고 현재의 트렌드가 갖는 순기능을 활용해 작품을 잘 팔면 좋지만, 15-20분 동안 흥미를 유발하는, 소위 잘 팔리는 작품에 안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상품성만큼 심도 깊은 작가성을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무용가들의 바람일 것이다. 당장의 상품성이 아니어도 가능성을 살피는 시각의 기획자, 평론가, 관객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젊은 시절 365일 중 364일을 연습하고 하루 공연을 했다.”는 어떤 한국무용가는 현재 직접 소극장을 운영하며 매주 무대에 오르고 있다. 어디까지가 연습이고 어디부터 공연일까? 관객은 얼마만큼의 완성도부터 너그러워야 하는가? 유료관객 앞과 그들이 없는 쇼케이스 무대는 다른 완성도를 가져도 되는가? 춤의 재공연과 이를 통한 업그레이드, 레퍼토리 구축에 있어서 우리 무용은 장르와 트렌드에 따라 다른 기준을 갖게 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재공연을 통해 그 작품이 레퍼토리가 될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보다 많은 무용작품에 재공연의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본다.


김예림_무용평론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이화여대 및 동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했으며, 무용수, 안무가, 교육자 활동 후 평론가로 등단했다. 현재 월간 춤과 사람들의 편집위원으로 다양한 지면에 무용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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