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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8.13 조회 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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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무용의 흐름과 특징

한경자_강원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분단되기까지 남북한에서 무용의 역사는 동일한 흐름과 환경을 공유해 왔다. 그러나 분단 이후 남북은 각각의 체제와 이념에 따라 남한은 다양성의 흐름을 따라, 북한은 단일화의 흐름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전통무용의 형식과 내용을 그 기초에 깊이 토대로 삼은 것은 공통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남한의 경우 전통무용을 복원하여 무형문화재로서의 형식과 제도를 정립하고 보전과 재창조의 보고로 활용하여 왔다. 북한의 경우 1956년 악학궤범을 완역하여 궁중무용의 형식체계를 활용한 예술정치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이를 응용한 대단위집단체조 <아리랑>의 형식 완성에 이르고 있다.

남한의 무용이 안무자의 자율성과 창의력에 기반한 예술적 표현성에 가치를 두었다면, 북한의 무용은 사실적인 미와 혁명적 이미지의 표현에 주력하여 예술형태보다는 사상성 추구에 주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한경자
북한 무용의 개념

북한에서 무용이란 “사람들의 률동적인 움직임을 기본 수단으로 하여 사회 현실과 사상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의 한 형태”(문학예술사전, 1972)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의 모든 문예정책에는 ‘주체문예이론’에 근거한 ‘당성, 인민성, 계급성’의 원칙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무용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무용분야에서는 무용이 가극, 특히 혁명가극이라는 종합예술 안에 들어옴으로써 개인숭배의 무용이론으로 무장되었을 때를 ‘주체무용’이라 일컫는다.

북한에서 무용은 위대한 김일성 수령동지의 영도아래 사회주의 건설자들의 정서와 미감에 맞는 혁명적인 무용작품을 개발하여 그들의 근로인민들을 당 정책에 맞게끔 선동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북한의 주체무용은 무용으로 독립되어있다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종속되어있고, 김일성이나 김정일 부자 개인의 주관적 견해가 예술에 있어서 그대로 하나의 당위성으로 작용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무용예술의 미(美)적 추구 보다는 사실성과 혁명적인 이미지 표현에 주력하며, 생활 기법의 모방적 형태의 미를 수용하여 목적의식이 뚜렷한 무용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결국 미적 측면에서의 예술성보다는 사상성 강화에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만수대창작사 ⓒ한경자
북한무용의 흐름과 특징

분단을 전후한 시기에 남북한은 신무용기의 특징으로 춤의 무대화가 진행되었으며, 최승희, 조택원 등 신무용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최승희가 월북한 이후 평양 대동강변에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가 개설되어 300명 이상의 무용가 양성체계가 갖춰지는 한편 <조선민족무용기본>을 출간하여 민속춤 일부가 무보화 되면서 무용의 체계적 교육이 이뤄졌다.

1960년대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남북한 무용은 각각 변화와 발전이 두드러지면서, 현존하는 무용극 예술의 초기 발전 형태를 형성하였다. 이 시기 북한의 무용은 최승희가 발간한 <조선민족무용기본>과 <조선아동무용기본>을 기초로 무용교육이 이루어져 동작과 기교에 통일성을 이루는 춤의 단일화를 추구하였다.

1970년대의 북한은 김일성 주체사상의 문예 활동으로서 다른 형태의 춤을 용납하지 않았다. 무대 무용으로서의 극적 효과를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하는 철저한 목적의식의 예술 작품이 강조되었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던 북한 무용의 가극화는〈피바다와 같은 대표작품에 의하여 순수 무용극이라기보다는 오페라 형식의 무용극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음악무용서사시(극)’이라고 하는 무용 위주의 작품도 집단적인 예술의 형태로서 합창, 오케스트라, 무용 등을 망라하여 힘을 과시하는 ‘공산주의 혁명가극’으로 변화되었다.

이 시기에 춤의 유일사상화를 구축함으로서 <피바다>, <당의 참된 딸>, <꽃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금강산의 노래>와 같은 5대 혁명가극과 <사과풍년>,
<조국의 진달래>, <눈이 내리네>, <키춤>과 같은 4대 명작무용이 집중적으로 제작되어 혁명적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1980년대에 와서 북한의 문화예술은 주체예술을 발전시켜 새로운 경향의 작품 창작을 독려하는 한편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인민 지향적인 양상이 작품평가에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1980년대 접어들면서 혁명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인민성이 강조되면서 오락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부각됨으로서 현실적 문제를 중요시하는 성향을 띄었으나 1986년 <조선 문학예술 총동맹 제6차 대회> 이후 다시 혁명성과 이념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무용의 학술적 측면에서 보면 1982년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무용의 기초이론>을 발간함으로써 조선무용의 율동적 특성을 정립하였는데, 이는 1960년대의 최승희의 ‘조선 무용 동작과 그 기법의 우수성 및 민족적 특징’과 유사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1987년에는 <자모결합식 무용표기법>을 완성하여 이를 통해 무용 작품의 양상과 정서감정 그리고 소도구의 이름이나 생활적인 동작 등을 글로 표시하도록 하였고, 같은 해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청사에서 <자모식 무용 표기법> 영화 감상회를 가짐으로서 대외적인 공표를 하였다. 1989년에는 제 1차 세계 청년 발명 평양전람회에서 <자모식 무용 표기법 타자기>를 완성하여 유네스코 발명 저작권기구에서 ‘위포(WPO)’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무용작품은 대단위 무용 공연의 경향을 나타낸다. 1987년 발표된 <행복의 노래>는 대집단 예술무용 형식으로 5천 명의 대공연에 흐름식 입체 예술무대를 펼쳐 보이고 있다. 1989년 평양축전에서는 <축전의 노래>로 7만 명 규모의 대공연을 통하여 대집단 예술무용을 선보였는데 이와 같은 형식은 혁명가극, 음악무용이야기, 음악무용서사시 등을 기초로 하여 이들 장르와 구별되는 독특한 대단위 형식 무용으로 지칭할 수 있다.

평양축전을 통하여 북한주민들은 외부 세계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맞이하였으며 이때의 문화충격과 더불어 서구적 문화와 유사한 문화들이 주민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북한 사회에서는 평양축전을 통하여 전통적 가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사회주의적 요소보다 전통적 요인을 강조하는 변화를 시도함으로서 춤의 인민화가 이루어진 시기로 특징지을 수 있다.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한경자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무용은 그 이전의 시기보다 무용소품의 활용가치와 중요성에 관한 비중이 강조되었다. 1992년 발간된 김정일의 <무용예술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향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주체사실주의의 정립에 따라 <조선 민족 제일주의>를 표방하여 김일성의 존재를 극적으로 부각시키고 그 과정에서 민족과 전통을 강조함으로서 민족적 내용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민족성이나 계급성보다는 당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으로 변화하였고, 이를 통해 전반기와 후반기를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시기를 구분하는 절대적 요인은 무용 동작의 측면보다는 정치·사회적 현안에서 비롯된다. 정치·사회적 현안에 따라 창작에서의 초점이 일사불란하게 이동하는 현상은 북한의 무용예술이 정치예술로서 국가가 독점하는 운영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서는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이라는 새로운 공연예술의 장르가 탄생하였다.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은 1999년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기존의 집단체조에 예술적 공연을 배합하여 파생되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은 무용, 음악, 교예 등이 어우러지는 총체공연 장르의 성격을 지니며 피바다가극단, 만수대예술단, 국립민족예술단, 평양교예단 등 북한 최고 공연단체의 중심 멤버들이 창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은 특히 외부 관람객을 통한 경제적 효과를 거두기 위하여 다른 관광 상품과 연계하여 기획되었고, 대표작품인 <아리랑>은 세계 최대 규모의 집단체조로 인정되어 2007년 기네스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이런 현상은 북한 사회의 외부 개방 신호로 기대되기도 하였으나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함으로 인해 김정은 집권체제 수립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게 되면서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집권이후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상호 예술단 방문 교류가 성사되었고, 가을에는 또다시 북한예술단의 방남공연이 예고되었다. 이에 다각적인 남북문화예술교류가 기대되며 무용의 교류 또한 예견되고 있다.

한경자_강원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강원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무용역사기록학회장, 강원무용연구회장, 무형문화재위원, 국립무용센터건립 추진위원, 춘천인형극제 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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