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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인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8.13 조회 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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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한 예술을 이야기한다는 것
안은미 x 김남수 대담

김남수_무용평론가

얼마 전, 남북의 교류가 급격히 진전되고 화해의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게 되던 그 시점, 공교롭게도 안은미의 신작 <안은미의 북.한.춤.>이 발표되었다. 남북 상황과 전혀 상관없이 작년부터 준비했던 <안은미의 북.한.춤.>은 극장에 오르자마자 호평을 받았고, ‘안은미적인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춤:in》에서는 안무가 안은미와 무용평론가 김남수를 초청하여, 안은미의 최근 작업과 작업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안은미, 김남수 ⓒ양동민
김남수 : 신작 제목이 <안은미의 북.한.춤.> 이잖아요. 원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처럼 소유격 ‘의’가 붙으면, 겸손인 동시에 자신감이죠. 북한춤을 내가 이렇게 보아낸다. 그때 ‘나’라는 지위는 이중적이에요. 벼랑 끝에 선 한 사람이 역사의 파도를 맞고 있는 걸 뒤에서 그림으로 그리잖아요. 그러면 이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사람의 왜소함과, 혼자서 그 역사의 파도에 맞서는 위대함이 상반되는 힘으로 동시에 보이거든요. 그래서 <안은미의 북.한.춤.>이, 마치 그 벼랑 끝에, 깎아지른 위도의 낭떠러지에 서서 안무를 하셨는데 굉장히 여유로워 보이는 거죠. 사람들의 상상력의 길을 열어주는 그게 저는 가장 와 닿았어요.
안은미 : 제가 춤을 추는 사람이니까 뭔가가 있는 거겠죠. 춤이 가지고 있는 파워, 춤이 가지고 있는 제 3의 언어라든가 일종의 모스 기호처럼. 또는 정확한 언어는 아니지만 뚜뚜 뚜뚜, 이렇게 하면 마음 속 안에 있는 게 해석되는 것처럼. 그런 상황 안에서 이번 안무 작업이 맞닥뜨려진 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어떻게 보면, 북한 작업들은 그 전에도 많이 했죠. 그러나 춤은, 춤 자체는 최승희에서 멈췄어요. 왜냐하면 월북한 이후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빨갱이로 몰려야 가능한 길이었기 때문에. 우리 안에, 63년의 긴 움직임의 DMZ에서 멈췄는데, 지금은 또 아이러니하게 탈북한 사람들은 여기서 북한춤을 춰요. 그러면 그건 보안법의 대상은 아닌 거죠. 그냥 그 사람들이 췄던 걸 그냥 추는 거니까 그건 아무런 법적문제가 없고.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만약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된다는 법적 근거가 없어요. 달리 재미있게 보면, 우리도 이제 보안법 관련해서 통일부에 전화도 하고, 변호사도 사서 정상회담 전에 공연을 해야 했죠. 각오는 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나는 그때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되게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고 그건 내가 감당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도 그랬고. 같이 짊어지고 가야되는데 역설적이게도 거기가 나라에서 하는 공적 기관이잖아요. 그래서 같이 붙은 것도 되게 웃기고. 거기 손혜리 이사장님이 좀 용감한 거죠 사실은.



안은미 ⓒ양동민
김남수 : 과거 정권에서도 북한에 다녀오고 그랬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사실관계, 견문, 정치적인 상황, 문화적인 조건, 이런 것들에 대해 나름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런데 그 북한이라고 하는 무언가 안으로 묶여져 있는 감응과 감흥의 덩어리, 여기에 대해서 플러그를 꽂아서 이렇게 <안은미의 북.한.춤.>을 통해 감전당하는 것처럼, 총체적인 체험을 하는 건 쉽지가 않죠. 통일이 되더라도, 통일이 되는 과정 속에서도 힘들 것 같아요. 그런데 마치 ‘먼저 온 역사’처럼 이 안무적 사건이 벌어진 거죠. 동시에 체험적 사건이. 그래서 이제 점점 생각하게 되고.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하고, 또 바깥에 있는 사람들하고 소통을 하잖아요. 물속에서 파동의 언어를 가지고 소통을 하죠. 그런데 태아가, 되게 영리해요. 제법 머리를 쓰고, 액션도 하고. 태어나면 약간 무능해. 아이가 태어나면 의외로 무능한 거죠. 마치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가 역사에 말을 거는 것처럼, 무언가 메시지 중심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걸 초월하는 초-메시지의 맥락에서 이번 북한춤 공연이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을 총체적으로 주는 거죠. 이것저것 따져봐야겠지만, 제가 종합적으로 인상을 말씀드리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안은미 : 최승희 이후로 보면, 최승희 이후 끊어진 이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저는 늘 궁금했었으니까 평생.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했고. 또 하나는 그냥 통일이 되는 게 사실은 우리가 살 길이다, 라고 늘 생각했지만 제가 뭐 파워가 있는 정치인도 아니고, 통일을 합시다, 라고 하는 건 할 수 있는 분들이 해야 되는데. 부드러우면서 강렬하게 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게 뭔가 생각해 보니까 춤인 거예요. 춤은 여러 메타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실상은 정치적이지 않은 언어를 갖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되게 인류학적인 정치적 코드를 다 갖고 있거든요. 요즘에는 유튜브도 나와 있고 그래서, 내가 굳이 그곳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소스도, 조총련 쪽에 있었던 교포들이 이제 한국으로 귀화했던 사람들도 있고 해서. 그리고 연변에도 좀 가려고 했었는데 연변은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변질되었다고 해서 연변은 제가 포기하고. 그냥 유튜브하고 기본춤, 성애순 선생님 통해서 배우고. 무용수가 실체는 좀 알아야 되겠다, 뭘 알아야 학습을 하는데. 그게 기본 베이직이니까.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의 기초가 어떻게 전달되어지고 발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아야 제가 베리에이션을 가질 수 있겠다 싶어가지고. 며칠 애들이 정말 힘들게 배웠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 선생님이, 자기가 태어나서 남한에 와서 이걸 가르칠 줄은 몰랐다는 거지. 그래서 그냥 배우고, 그 와중에 베리에이션을 해 가면서 작업을 했는데, 닮은 점도 되게 많고.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김남수 ⓒ양동민
김남수 : 남북이 엄연히 분단되어있고. 아직까지는 휴전 상태죠 저희가. 종전선언, 평화체제로 전환된 게 아직 아니죠. 역사의 대전환기 앞에 지금 있는데. 갑자기 안은미의 북한춤이 뚝 떨어진 거예요. 아마 잘 모르는 사람은, 갑자기 만들어서 하나보다, 이렇게 생각될 정도로 타이밍 상. 그런데 막상 춤을 보니까 굉장히 무르익어서. 그리고 이제 북한, 남한 사이에 두 가지 힘이 있잖아요. 하나는 밀어내는 힘이 있고, 또 때가 되면 끌어당기는 힘이 있죠. 그 두 가지 힘이, 내부에서 묶여서 응축이 된다고 하는 게 뭘까. 그런 힘들의 관계를 움직임의 DMZ라고 아까 표현하신, 그런 대목에서 우리가 역사와 현실을 계속 생각하면서 안무를 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역사와 현실이라는 건 얼마나 무거운 건데. 한국의 많은 브레인들이 판문점을 통해서 넘기도 하고, 또 되돌아와서 감옥에 가기도 하고, 고초를 겪었죠. 또 그런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예술에서의 어떤 검열이라든가, 블랙리스트, 이런 것도 겪었죠. 남북 사이의 관계라고 하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모든 모순을 압축하고 있죠. 그런데 갑자기 안은미의 북한춤이 사람들 앞에 펼쳐진 거예요. 검열도 없이. 그래서 이제 역사 앞에 개인이, 마치 벼랑 끝에 선 것처럼. 그런데 그게 굉장히 제가 여유로워 보였다라고 말씀드린 건, 환경적으로도 바뀌었죠 물론.
안은미 : 그러니까 몰래 잡혀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은 제거된 상태죠. 그러나 북한 사람들, 그들이 갖고 있는 매스 게임의 파워라든가, 줄을 맞춘다는 어떤 권력 안의, 사회적 스트럭쳐 같은 것도 되게 재밌었고. 아무튼 이 작품 아니면 안 봐야 될 것들을 보면서 무용수들이 새로운 경험을 했고. 저도 정말 새로운 바다에, 태평양을 한번 건너서 수영을 막. 구명조끼도 없이 대서양, 태평양을 막 헤엄치는 것 같은 그 기분은, 아마 그것 때문에 작품 자체가 제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두뇌의 결하고는 좀 다른 걸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안은미 ⓒ양동민
김남수 : 안은미 선생님이 북한 땅을 가보지 않은 채로, 북한에서 나오는 움직임의 소스들, 레퍼런스들을 가지고 충분히 피드백을 하고 학습을 했다는 게 저는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직접 북한을 밟고 경험의 예술, 사랑하는 체험을 통해서 작업하면 그게 옳을 것 같지만 또 틀릴 수도 있죠.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프레임이 짜여 있는 것들을 가지고서 두 가지 힘의 길항 관계를 가지고 안무를 했다는 게 역력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태평양을 건너셨다고 얘기하신 건, 제가 생각할 때는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그리고 남에도 북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우리가 통상 DMZ라든가 가끔 열리는 판문점의 새로운 공간성, 지금까지 없었던 제 3지대가 나타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안은미 선생님이 그걸 태평양이라고 표현하신 거예요. 새로운 너울성 파도가 막 치면서 파도를 타고 가는 것이죠. 거기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 알아봐야 할 것이고. 여전히 미지의 공간으로 남을 수도 있죠.
안은미 : 그러니까, 제가 작업을 시작할 때 아주 단순한 의제를 가지고 시작했어요. 그냥, 몸이라는 구조를 그 사람들이 춤이라는 영역 안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느냐. 그들이 춤이라는 영역 안에서 몸을 어떤 구조로 이용하고 있느냐. 단순하게 말하면 그 사람들은 허리를 안 구부려요. 허리가 늘 서 있단 말이죠. 손도 되게 가볍고. 우리의 춤이 안으로 당기는 춤이면 거기는 자꾸 내보내는 춤이에요. 우리는 안으로 응축해서, 힘을 말아서, 보이지 않지만 정중동의 춤을 추죠. 우리는 이런 것들이 복잡한데 거기는 날아다니는 거죠. 물론 거기는 북방 기질이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고 고구려도 있고 러시아도 있고 그렇지만. 그냥 아주 객관적으로 얘기하면 체제가 영향을 미치는 거죠. 슬픔이나 어두움이 아니라 주체사상을 위한 체제죠. 춤이 앞으로만 있고 뒤가 없어요. 그럴 거 아녜요, 춤이 어떻게 뒤가 있어. 후회라는 게 없어 거기는. 모든 인민들 안에서는, 대외적으로 당이 컨트롤하고 당의 허락을 받아야하는 거잖아요. 컨트롤 타워가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나와서 춤을 추면, 몸이 멈춰 있지를 않아.



안은미 ⓒ양동민
김남수 : 어떤 의미에서는 명쾌한 부분이 있겠군요. 몸의 수렴, 몸의 펼쳐짐이 복잡성의 사회적 정서 같은 영역을 신경 써야 하는 사회의 춤과는 확연히 다르겠어요. 그런데 북한춤의 무용수들이 상당히 뛰어난 데가 있나 봐요.
안은미 : 되게 우수한 종자들만 뽑잖아요.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무용해야 되는 사람은 이렇게 나눠서 키우기 때문에. 우리랑은 구조가 다르지.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자유로운 국가 안에서. 그래서 아주 단순하게, 몸이 달라지는 걸 바라보자. 그리고 춤이라는 카테고리를 그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관찰하고 공부하자. 옛날에는 “어머 북한이네” 이렇게 봤다고 하면, 이번에는 내가 공연을 해야 되니까 돋보기를 가지고 바라보니까 디테일도 보이고. 옛날에는 ‘옷이 왜 아직도 저런가’ 했는데, 그 옷이 왜 저런지, 색깔이나, 이런 것도 다 바라봐야 되는 시각이 됐는데. 아마 내 마음 속에, 암암리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듣고는 전체 껍질에 하나를 더 씌운 게 있다면, 만약 우리가 통일이 되면 미래에는 어떤 춤을 춰야 될까 하는 것. 우리가 전통적으로는 비슷한 움직임을 갖고 있어요. 발 걸음걸이나. 전통은 왕정 시대기 때문에, 기록적으로 남아있는 전근대의 춤이 1세기를 이어왔다는 거지. 2차 세계대전 이후나, 아니 그 전에 이미. 우리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춤을 추고 있는 거야, 기술적으로는. 그걸 한국춤이라고 불러 우리가. 남한하고 북한하고 약간 다른데, 어쨌든 최승희의 영향 때문에 좀 변질됐지. 우리는, 해보니까 인기가 없으면 이렇게 바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바꾸고 또 이렇게 바꾸고. 그런데 거기는 그 안에서 쳇바퀴 돌 듯이 계속 도니까 그게 남아 있어. 자기네 걸로만. 기본이 완벽하게 남아있으니까.
김남수 : 문화인류학에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떠난 사람은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길을 떠나버리면, 자기가 가지고가는 것, 어릴 때 자기가 경험했던 것, 굿판 본 것, 어릴 때 먹었던 것, 겪었던 문화, 사람들이 근대라고 이야기하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가죠. 여기서 떠난 자가 누구고, 남아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제 북한이 계속 그렇게 촌스러운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기면 굉장한 것이 남아있다라는 거죠. 북한은 근대라는, 우리가 끊임없이 괴물처럼 대결을 해도 계속 백전백패를 하게 되는 그 대상하고 조금 다른 전투를 해온 것 같아요. 다른 전투를 해오면서, 자기네들이 만들어갈 수 있는 길, 지그재그의 길을 따라서 어떤 에센스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또 떠난 자인지 남아있는 자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단절이 되어 있다가 북한의 춤을 봤을 때, 그 춤에서 우리가 당연히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상실한 것 같은 에센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죠. 거기에는 최승희라는 안무가가 위대한 매개자로 자리를 잡고 있고요.



김남수 ⓒ양동민
안은미 : 지금도 우리는 ‘신무용’이라는 걸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재미있는 얘기하더라. 여기는 이제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한 가지 색깔을 갖고 있는데, 여기는 막, 근대라는 개념을 어떻게 벗어야 될지 모르는 것으로 맴돌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세요? 우리끼리 얘기하자면. 이 사람들은 자기네 것 하나로 걸러내면서 엑기스만 딱 가지고 어쨌든 자기 것인데, 여기는 막 우후죽순해서 뭐가 진짜인지도 모르는, 그래서 이들보다 더 촌스러운. 이들도 어떻게 보면 촌스러운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어떻게 저런 사고를 하지’라고 하잖아. 근대를 거치고 21세기에 개방된 사회의 인포메이션을 가지고 우리가 보면서 너무 촌스럽다고 얘기하는 거지. 옷도 촌스럽고. 그런데 여기는 사실 더 촌스러운 거야. 그러니까 이 화두를 던지면서 나는 무용계에 많은 질문들이 가야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제가 무음악을 기본을 했던 건, 그게 북한 기본이지만 남한에 갖고 와서 완전히 북한 것도 아니고 남한 것도 아니야. 안은미 거겠지. 아니면 우리 무용수들의 신체가 하는 제한된 어떤. 그들의 능력에 따라 제한된 거지만. 그 깊은, 해저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느낌. 무음악으로 관절이 그렇게 디테일하게 쓰이는 나라는 별로 없어. 그렇잖아. 예를 들어 발과 손과 머리만 있어 북한춤이. 뻣뻣해. 발은 이렇게 가고 있고, 손은 이렇게 사인을 보내고. 얼굴은 이렇게, 똑같은 얼굴을 계속 하는데 너무 재밌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S자로 긋거나 꺾기, 감기, 이런 게 우리도 있는데. 한국이라는, 한반도 땅에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언어가 얼마나, 비어있지만 섹시하고 아방가르드한가를 보여주고 싶었어. 그거는 한반도 기본일 거야 아마.



안은미 ⓒ양동민
김남수 : 저는 이제 최승희하고 연결지어서 부득이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최승희가 만든 춤의 세계를 근대무용이라고 하든, 신무용이라고 하든 그때 한번 ‘연결된 종합’이 거대하게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춤 안에는 당연히 남한춤도 있고 북한춤, 일체로서의 한반도춤도 있었지만, 발레도 있었고, 인도무용이라든가 중국 소수민족의 무용이라든가, 마치 춤으로 춤을 통해서 제국을 경유하는 것처럼 창대했죠. 즉 최승희는 자신의 춤을 그냥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 종합해서 문화의 용광로에 넣어서 새롭게 담금질하고 불림 했죠. 그 최승희 춤이 남한에 있었잖아요. 남한에 있었고, 세계를 한 번 돌고, 그러다 역사가 다시 천천히 격랑으로 회전하기 시작하니까 북한에 들어갔었는데. 북한에 남아있다고 해서 최승희 춤의 상속권이 거기에 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각자가 다 있는 것인데. 그렇게 최승희가 썼던 수법을 조감을 해보면, 어쨌든 종합을 하는 형식이죠. ‘종합’이란 하나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오는 형식이죠. 그리고 안은미 선생이 한반도라고 하는, 지금까지는 우리가 일체의 장소로 생각하지 않았죠. 왜냐하면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남한은 아무래도 섬에서 비행기타고 세계를 도는 기형적인 형태의 경험을, 마치 대륙이랑 연결되어있는 걸로 굉장한 역사의 착각 상태에서 진행이 되었었죠. 그럴 때 그때의 움직임은 다르거든요. 비행기를 탔는데 대지에 발을 딛고 있는 걸로 착각을 하는 움직임하고, 자기가 섬이거나 대륙이라고 생각할 때의 몸의 움직임하고 다르죠. 우리는 그래서 이제, 아까 흔들리는 얘기도 하셨는데. 그런 부분에서 민족주의하고는 결이 다른 형태로, 예를 들면 북한은 굉장히 표현을 많이 한다. 안에서 바깥으로 펼쳐지고, 표현을 많이 한다. 남한은 무언가 바깥에서 안으로 응축을 하고, 또 정중동이라고 표현하신 전-표현적인 것. 또 미발, 아직 드러나지 않는 것, 이런 것을 굉장히 중시해 왔죠. 그렇게 보면 이 ‘가로막’, 이렇게 내려갔을 때 날숨, 표현이 되고 다시 올라올 때 들숨이 만들어지고. 지금까지는 이 사회적 가로막 자체가 많이 덜그럭거렸죠. 그랬는데 그걸 마치, 충만한 몸의 이미지로, 충만한 몸이 뭔가 종합이 일어날 때는 항상 덩어리째로 굴러 들어오는 충만한 몸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어떤 강렬한 신경상태도 있고. 또 무엇으로 형태화될지 모르는 긴장된 순간이 있죠. 그것이 이제 역사에서는 일어나고 있는데. 무대에서 안은미 선생이 최승희가 했던 그런 감응적인 상태, 감흥적인 상태를 지금 불러오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굉장히 여유롭다. 또 지금이 21세기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한테 그런 충만한 몸의 이미지를 단순히 전신이 경직되는 상태가 아니라 풀어주는 형식으로, 풀어주는 분위기로 펼쳐지는 것이 굉장히 이채롭다는 거죠. 우리는 항상 북한에서 액션을 취하면 긴장했다 풀어졌다 긴장했다 풀어졌는데, 어느덧 그게 사라져가는 역사적 전환의 끝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또 받는다는 거죠.



김남수 ⓒ양동민
안은미 : 우리 기본이라는 게 음악을 빼고 들으면 엄청 미니멀하고 엄청 존재론적이고 비어있고, 그렇지만 존재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엄청나게 멋진 춤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추면 늘 봤던 것, 어디서 봤던 것. 지겨운 거지. 저는 사실 이걸 하면서 한국인의 기본적 움직임을 만든 조상님들의 성찰, 그 기호를 표면에 책처럼 펼쳐놓고 ‘보라’고 말하고 싶었어. 우리가 데코레이티브한 음악과 레파토리에 쌓여서 보지 못했던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미래이고 같이 춰야 할 춤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지. 사실 그게 주제였어요. 나머지는 그냥, 또 다른 얘기지만. 무음악 부분이 좋았다고 했던 사람들, 나도 그 장면이 제일 좋거든. 근데 어떤 음악가는 또 와서, 자기는 장단이 다 보였다는 거야. 되게 재밌지 않아? 속으로 장단을 노래하고. 그렇게, 안은미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내 것을 주입하지 않는 담대함이 제게는 있죠. 왜? 모든 게 내 것이기 때문에, 굳이 내 것이라고 말을 안 해도 다 내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보통 안무자들은 ‘내 거야!’라고 하면서 이걸 쪼그라뜨려 놔. 그때는 그게 그럴싸한데, 멀리서 보면 이게 촌스럽고 버릴 수도 없고. 그래서 저는 늘 판이 좀 큰 상태에서 뜀뛰기를 하죠. 그래서 이게 아마, 기자회견을 하다가 툭 튀어나온 건데. ‘이것이 바로 ‘한반도 춤’이다.’ 남한 무용수가 북한의 기술을 가져다가 이런 역량들이, 바람들이 일어날 것이다. 통일이 되거나,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그러나 어떨 땐 되게 얄궂은 모양으로 피어날 거야. 어떤 사람은 둥글둥글하게 만들 거고. 일단 내가 본 것은, LED 판타지, 모든 게 반짝반짝 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만화영화 보는 것 같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왠지 “미래의 테크놀로지인데 돈이 없어서 이런 LED 의상으로 저렇게 만든(것 아니냐).” 기계는 하나도 없었어. 그냥 옷이 반짝거렸는데, 약간 LED를 본 거 같았다는 거야. 여러 레이어들이 겹쳐지고 있는데. 그래서, ‘북한춤이 이런 거다’라는 완성도는 이 작품의 시작이 아니야. ‘이 땅에서 내가 과연 북한춤을 출 수 있을까?’ 사실 이게 처음에 어프로치였거든. 이걸 과연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이게 나 자신에 대한 검열같은 것으로. 어떻게 해체할 수 있을까. 저걸 어떻게 넘어가지? 이런 것들. 그래서 유튜브로 넘어갔다 온 거지.



왼쪽부터 김남수, 안은미 ⓒ양동민
김남수 : 안은미 선생이 이제 <안은미의 북한춤> 공연을 올렸을 때. 일종의 최승희 현상 같은 게 다시 나타났다고 보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근대 시기에 최승희가 했던 것을 재현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원래의 재료, 질료로부터 떠나버린 것도 아닌, 어떤 상태. 하지만 그 안에서는 수많은 조산운동, 주름운동이 계속 되어서 뭔가 주름이 많이 져 있는 거죠. 그리고 그 부분에 관해서 최승희가, 1940년대에 썼었나요? <조선민족무용기본>이라는 책자가 있죠.
안은미 : 네, 46년인가.
김남수 : 46년인가, 해방공간에서 쓴 책이 있고. 사실은 최승희가 춤의 사상가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림과 짧은 설명, 제목, 이런 최소한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과거의 무예도보통지라든가, 조선왕조의궤도 사실은 그런 대범한 그림과 함께 미니멀한 기술방식으로 되어있으니까 큰 오류는 없죠. 그런 식으로 자신의 베이직한 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안은미 선생은 제가 이렇게 보면, 이전의 기억을 감아보면. 작품 <Let’s Go> 있지 않습니까. 또 <Let Me Change Your Name>, <Let Me Tell You Something>, 이 ‘Let 시리즈’가 일종의 안은미 선생의 교과서는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주는, 아키 타입을 제공하는 듯한 느낌은 받는단 말이죠.
안은미 : 오뚜기처럼 두드려 맞으면 계속 일어나야 되잖아. 그게 어떻게 보면 정말 생존의 춤이기도 하고.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내게 춤은 테크니컬한 것이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자기가 자기 목소리를 논의하되, 그게 어떤 움직임으로 힘을 가지고 앞으로 갈 거냐. 이게 저는 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서양애들이 생각하는 몸의 형식, 꺾이는 춤, 뭐 이런 건 내 작품 안에 이미 다 스며들어 있는 거고. 하나만 주장하지 않는 거지. 단순하게 얘기하면 이런 거야. 어릴 때. 좀 아기같은 이야기지만, ‘매일 매일 봐도 지겹지 않은 작품을 해야지.’ 똑같은 작품이어도 만약 내일 봐서 지겨우면 그건 죽은 춤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매일 봐도 재밌고, 10년 뒤에 봐도 새롭고, 100년 뒤에 봐도 이상해야 되겠다. 이게 나의 안무법의 기본이었어. 그러면 자가변형이 일어나야 된다는 거야. 바이러스가. 그러면 내 작품을 내가 볼 때마다 재미있어야 되는 거야. 그런데 진짜, 내 작품들은 30년 지나서 지금 봐도 되게 이상해요. 왜냐하면 작품들이 다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옛날 영상 찍은 거 보면, “뭐야, 완전 미친 소리 하고 있네.” 그런데 그 안에서 눈은 완전 지글지글 타고 있고. 보통 말하는 운동성이라는 게 그 당시에는 진짜 없지. 지금도 없지만.
김남수 : 이번에 <안은미의 북.한.춤.>에서 무용수 자랑을 많이 해요. 저랑 같이 있었던 지인들은 대부분 작품이 너무나 유쾌하고 자신에게 맺혀있는 걸 풀어준다, 침 맞은 것 같다, 뭔가 마사지 받은 것 같다고들 이야기하는데. 뭐냐 하면, 공진동이 막 일어나는 거예요. 춤을 막 추더라고. 이런 게 있어요. 사실 예전에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TV에 나오는 엑소나 방탄소년단을 보면서 따라서 춤을 추는데, 무대에서 안은미 안무의 춤을 무용단이 추는 걸 보면서는 추지 않는다. 그 문제를 화두로 제시하신 적이 있어요.
안은미 : 연습할 때 리허설을 보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연습복 입고 봤을 때도 단순하게 그냥 춤추는 것만 봐도, 북한춤을 떠나서 봐도 뭔가 이렇게 척추가 움직이잖아요. 아까도 내가 얘기했지만, 안무가는 늘 이게 내 것이지만 세상에 내놓는 순간 내 것이 아닌 것이 되는 거죠. 누군가와, 어떤 공기와 접촉해서 바이러스를 길러내야 되기 때문에. 그런데 누가, 아니 왜 이런 춤에게 박수를 쳐줄까? 저도 놀란 게, 사람들이 막 공연도 시작하기도 전에 박수를 쳐요. 물론 안은미 팬들이 있다고 치지만, 우리가 뭐지? 왜 그러지? 지금 굉장히 심각한 북한춤이 나가고 있는데. 이미 이들의 마음은 북한에 갔다 오신 거 같아요. 그래서 막 박수를 치고, 중간에 음악으로 평양 가야금을 쳤는데 처음 들어보는 노래인데도 뭔지 다 받아들일 것 같고. 참 안 보이던 태도가 아닌가. 저는 오히려 관객의 반응이 훨씬 더 연구하고 싶은 반응이 되어버렸어요. 이게 뭐지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까. 물론 휘파람 파트 할 때 “선생님 너무 멋있었어요” 그러는데. 아니 나 멋있는 거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거의 경기 일으키는 수준으로 막 그러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반응이지, 싶었는데. 이 남북정상이 가져다 준 저수지, 근간, 구멍 하나가 남한 전체의 뇌를 흔들고 있다는 게 저희가 추면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서 오는 피드백 때문에 우리가 오히려 멀리 북한에서 춤추는 그런 느낌을 받기도 했죠.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던 거죠. 우리가 본 게 정말 안은미 개인 안무가, 혹은 어떤 무용단의 창작 작품이 아니라 마치 사람들이 이걸 타고 북한의 금강산에 갔다 온 느낌으로 바라보는 게 너무 재밌었어.
김남수 : 그 부분에 정말 이번 작품의 특이성이 있어요. 보통 우리가 생각하면, 북한춤스럽다라고 하는 것. 북한춤답다라고 하는 건 재현적인 부분이 있거든요. 재현적이라고 하는 건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반복 소비하는 이미지들이죠. 그러니까 뭐, 동작을 하면서 일사분란하게. 상대방에게는 공포심을 자아내고 체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긍심, 자부심으로. 그런 것도 있고. 또 최승희라고 하는 안무가가 한 춤도 보면 유튜브에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게 근 80년 전, 약 100년 전의 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전통이죠. 그리고 그 안에서 불씨를 헤집어서 그 이전, 전근대에도 그렇게 췄을 것이다, 감응과 무의식의 기나긴 여행을 해서 최승희를 통해 한 번 더 종합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게 사실 가정법이거든요. 정말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는 거죠. 다만 이제 계속 그런 식으로 뒤로 가는 운동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곡선, 역사의 곡선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김남수, 안은미 ⓒ양동민


김남수_무용평론가 무용평론가. <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무용계 메타비평을 시도했고, 백남준아트센터, 국립극단 연구원으로 무용뿐만 아니라 미술, 연극, 다원예술, 학술 등 폭넓게 활동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아시아 문화 연구를 하였으며, 현재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콜렉티브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안은미 안은미 컴퍼니 예술감독, 안무가, 무용가, 파리 Thratre de la Villl associated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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