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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6.14 조회 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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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_무엇이 진짜 핸디캡인가?

허영균_웹진 <춤:in> 편집부

ⓒ양동민

지난 4월부터 《춤:in》에서 다루고 있는 ‘Barrier-free Arts’의 마지막 좌담은 신체적 장애를 지닌 예술가들과 함께 했다. 참여한 예술가는 고아라, 강성국, 김용우로 각각 발레, 퍼포먼스와 현대무용, 휠체어 댄스 분야에서 활발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모더레이터 김형희 안무가와 김태웅 문자통역사가 함께 자리하여, 대화와 소통을 원활히 이끌어주었다. 이 세분의 작업은 이미 장애라는 장벽을 스스로 넘어서 있다. 예술가로서 그들에게 진짜 ‘핸디캡’이 되었던 것은 무엇인지, 이들의 예술과 작업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길 나누어보았다.

나는 어떻게 춤을 추게 되었는가

김형희: 안녕하세요. 지난달에 저는 안무가로 좌담에 참여해서, 그동안 장애와 무용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이야기 했었는데요. 오늘은 실제로 열심히 활약하는 예술가들을 모시고, 개인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다 준비되셨나요? 그럼 간단하게 서로 자기 소개할까요?

김용우: 저는 지금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고 있고요. 휠체어 무용, 댄스라는 분야에 좀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2002년 댄스스포츠를 처음 시작했고, 중간에 현대 무용을 접하게 되어서 그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무용으로 옮겨왔는데, 춤의 영역이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야여서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작년까지는 친구들과 단체를 함께 운영했고, 지금은 개인적으로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싶어서, K-wheel Dance Project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장애인 무용 당사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한 방법과 기반을 만들고 싶은 것이 제 목표입니다.

김용우 ⓒ양동민

김형희: 처음에는 댄스스포츠를 시작했는데,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을 접하면서 나에게 춤이 어떻게 다가오고, 변화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용우: 댄스스포츠는 예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스포츠의 영역 안에 있잖아요. 그래서 규정도 있고, 시간도 정해져있고, 할 수 있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이 있어요. 그 안에서도 물론 충분히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지만요. 제가 처음 장애인 무용을 제대로 보았던 것은 중국의 장애인 기예단과 함께 공연할 기회가 생기면서 부터인데요. 무용을 잘 모르지만, 멋진 팀이라고 생각하고 부러워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 한국에서 캔두코댄스의 공연을 보았는데,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댄스팀이거든요. 굉장히 신선했어요. 댄스스포츠는 폭발적인 에너지, 기술적인 부분, 스피드, 열정을 필요로 하지만 한 종목당 시간은 1분 30초에 불과해요. 1분 30초 안에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를 다 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대신 무용은 몸의 움직임도 다양하지만, 그 안에 시간도 자유롭고, 파트너뿐만 아니라 많은 무용수와 스태프가 함께 작업하니까요. 이야기도 더욱 다양하고, 자유롭게 느껴졌어요. 현대무용과 휠체어 댄스가 닮은 점이 꽤 많아요. 휠체어를 탄다고 하면 상체의 움직임만 생각하기 쉬운데, 모든 무용이 그렇듯 하체의 안정이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휠체어는 상당히 불안정하니까요.

김형희: 바퀴니까요.

김용우: 그렇죠. 휠체어를 내 몸처럼 움직이기 위해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한국무용을 통해 좀 더 깊이 그런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고요.

김형희: 이번에는 강성국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강성국: 저는 행위예술을 먼저 시작했어요. 계기는 2003년도 한국실험예술제를 통해서인데요. 그 축제 프로그램으로 전문가, 비전문가가 함께 하는 예술치료워크숍이 있었어요. 그 워크숍에 참가자를 모으는 공고를 봤는데, 이상하게 끌리더라고요. 행위예술이 뭔지도 모르고, 예술치료가 뭔지도 몰랐는데도 공고를 보고 한 시간 동안 고민했어요. 이걸 내가 경험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하고요. 한 시간 고민 끝에 ‘에라 모르겠다, 한번 해보자!’하고 한 달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수업을 하게 됐어요. 미술치료, 음악치료 그리고 움직임치료. 그리고 마지막 수업은 홍대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거였어요. 공연을 경험하고 나서 한 마디로 신세계를 만나게 됐어요. 몸을 오브제로 이용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그 재미에 빠져서 행위예술에 미치게 됐어요. 2005년도에는 실험예술제를 통해 작가로 데뷔하게 됐고요. 1년 뒤에는 무용수 양길호라는 친구를 알게 되어, 그 친구하고 술을 마시면서 대학로에서 무용공연을 해보자고 한 것에 의기투합해서 CJ영페스티벌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어요. 운 좋게 세 팀 공동 최우수상을 받게 됐고요. 그때부터 무용 작업에도 힘을 얻어서 작업하고 있어요.

강성국 ⓒ양동민

고아라: 굉장히 어릴 때부터 대학교, 대학원까지 무용을 해왔어요. 어머니께서 어린애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시면서 피아노, 서예, 무용, 컴퓨터 등 온갖 학원을 다 보내셨는데, 그 중에 가장 흥미를 보였던 게 무용이었어요. 제가 강원도 홍천 출신인데요. 시골이다 보니,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고 어머니가 무용잡지에서 발견한 상명대학교 박재근 교수님에게 연락해서 상담을 하게 됐어요. 당시 ‘한·러 수교제’가 있어서 한국 학생 대표 중에 한 명으로 러시아 발레 학교에서 짧게 워크숍을 하게 됐고요. 그 이후에 서울을 오가면서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금요일에 서울에 가서 일요일까지 레슨을 받으면서 예고를 나오고, 경희대학교로 진학하게 됐어요. 원래는 학교에 계속 남아있을 생각이었어요. 저는 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그렇게 살다보니까 질린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정해진 대로, 주어진 대로 열심히만 살다 보니까 제가 제 인생을 결정하는 결정력이 없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대학원에 있었는데, 그렇게 열심히 하던 제가 무용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됐어요. 그래서 완전히 다른 방향인 미인대회나 봉사 활동 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세상에 참 재미있는 것이 많더라고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원을 졸업할 쯤에, 바로 몽골로 도망갔어요. 한 달 동안. 한국에 있으면 계속 연락이 오니까요.

고아라 ⓒ양동민

김형희: 저도 몽골에 살았어요. 몽골은 전화 안 터지잖아요. 몽골에서 뭐 했어요?

고아라: 저처럼 청각장애인인 몽골인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저처럼 구화도 하고, 수화도 해요. 영상통화를 하는데 ‘오라’는 손짓을 했고, 그거 하나 보고 저는 훌쩍 가버린 거죠. 몽골은 다 초원이잖아요? 사막도 있고요. 그걸 보고 있으니까 정해진 길이란 건 없는데, 제가 너무 하나의 길만 보고 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무한차선이 있구나 싶었어요. 다시 한국에 와서 1년 조금 넘는 공백기가 있었고, 우연한 기회로 지금은 종영된 tv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하게 되면서 방송이나 신문 등에 나오고, 작은 행사나 공연도 하다보니까 다시 공연할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최근에는 강성국 선배랑도 듀엣도 해보고, 장애인 무용팀과도 작업하고요. 비장애인 사회에서 쭉 무용을 해오다가, 이제 막 장애인 무용을 경험하고 있어요.

새로운 시작점

김형희: 한국에서 장애인 무용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지 10년, 15년 정도 됐어요. 오늘 모이신 세 분도 그렇고, 기존 단체들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이에요. 김용우 선생님의 경우는 창단멤버였다가 지금은 독립 단체를 만들어서 시작하는 단계고요. 그동안 해왔던 장애예술가들이 독립적인 힘을 가지고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더 발전하려면 그 안에 아픔도 있을 거고,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시작점이 있을 텐데,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이 각자에게 그때가 아닌가 싶어요.

김형희 ⓒ양동민

김용우: 무용교육이나 치료 목적으로 발달장애나 지체장애인 분들이 복지관 등에서 춤을 배우고 춰오긴 했지만, 무대 위에 무용수로서 본격적으로 장애 무용수가 활약하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아요. 김형희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저 나름대로 중요한 시기에 와 있고요. 강성국 씨도 춤이 너무 좋아서, 춤에 미쳤다고 하셨지만 저도 그랬거든요. 춤추는 게 좋으니까 함께 모여서 춤추는 것만으로 좋았어요. 댄스스포츠도, 휠체어 무용도 제가 처음 시작을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선봉에 선 느낌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미래나 후배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 같은 걸 갖게 되었고요. 연맹이나 구조를 만들어야 하나? 등의 고민도 했고요. 저도 조금씩 창작을 시작하고 있는데요. 장애인 무용수가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특히 부족해요. 이런 환경에서 장애인 무용수, 안무가가 성장할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거든요. 춤에 대한 목표성이 저와 같은 사람들을 모아서, 같은 목표를 가진 팀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K-Wheel Dance Project)를 만들게 됐어요. 장애라는 것에 의지해서, 기대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장애와 상관없이 독립적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장애인 무용수는 부족한 편이거든요. 비장애인 무용수와 함께 조화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요. 무용이 풍성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장애 무용도 함께 성장해야 하고, 그것을 모색하고 기회를 많이 찾아서 다른 장애 무용수와 나누고자 하고 있어요.

김형희: 이제 또 다시 시작이네요.

김용우: 이제는 운영, 기획도 해야 하고 무용수 케어도 해야 해서 배울 게 많아요.

강성국: 사실 제일 큰 문제는 생계유지가 안 된다는 것이에요. 일반 무용수들이라면 학생을 가르치거나 레슨을 할 수도 있고, 비장애인이라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겠죠. 우리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게 아예 안 되지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공연을 해서 공연비를 어마어마하게 받는 게 아니고요. 편하게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도 되게 큰 문제라고 봐요. 지금 혜화동에 ‘이음’ 센터가 있긴 생겼지만, 그곳 하나뿐이고요. 지원하려면 또 굉장히 어렵거든요. 장애 무용가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런 측면에서 만약에 어디 연습실 하나 운영을 하려고 한다면 이건 어마어마하게 타격이 크겠죠. 세 번째 문제는, 제가 너무 문제만 얘기 하나요? (웃음) 12년 전부터 작년까지 국가예술지원금을 받았어요. 그걸 매년 받아서 한국에서 공연도 하고, 외국에도 나가고, 그런데 제일 큰 문제가 뭐냐면 마지막 정산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제가 그걸 혼자 다 해야 해요. 이게 거의 한 달이 걸려서, 공연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게다가 작년부터 시스템이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아예 올해는 안 해버렸어요. 너무 힘들어서요, 기가 다 빠져요. 제가 처음에 퍼포먼스 워크숍에 참여한 것처럼 장애 가진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면 좋겠어요. 많이 경험을 해봐야 자기가 좋아할 수 있는지, 포기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있으니까요.

김형희: 그건 비장애 무용수도 마찬가지에요. 일하면서 우울증 올 것 같아요. 아침에 메일을 못 열어요. 방법은 그것을 빨리 받아들이는 거예요.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더라고요. 다음 단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봐요. 지원금의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우리가 독립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고, 시스템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거고요. 게다가 강성국 선생님은 혼자 다 하잖아요. 이게 혼자하기에 참 어렵거든요. 팀이 있다면 서로의 역량을 조금씩 나눠서 분담할 수 있는데, 혼자 다 하려면 정작 작업을 못할 걸요?

고아라: 저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팀을 꾸려서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요. 이야길 듣다보니 쉽지 않겠네요. 저도 혼자 활동하느라 행정이나 운영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예산을 정하고, 기획서 쓰고, 하는 일이 꽤 어렵잖아요. 일시적으로나마 임시로 팀을 꾸려서 프로젝트를 하거나, 가능한 여기저기 기회를 잡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저 혹은 다른 장애 예술가를 보고 장애인도 무용을 비롯한 예술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조금씩 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제 최소한의 역할이 아닐까 해요.

무엇이 진짜 핸디캡인가

김형희: 이 자리에서 장애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지만, 사실 세 분 다 정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발달 장애나 지적장애를 비롯해서, 소통이 어려운 장애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그런 예술가를 여기에 모시진 못하지만, 각자 경험하신 바가 있다면 생각을 나눠주세요.

김용우: 저는 지체장애 중에 척수장애인데요. 발달장애 쪽으로 가면 또 미지의 영역이에요. 척수장애는 저는 요추가 문제지만, 흉추가 문제인 장애 무용수는 어떻게 될 것 같긴 하거든요. 그런데 경추를 넘어가면 저도 손대기 어려운 상황이더라고요. 춤을 추려면 아주 좁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요. 발달장애도 마찬가지 일 거예요. 지적장애도 있고, 뇌병변도 있고요. 이런 영역에서 해나가야 할 연구도, 교육도 아직 많다고 생각해요. 이제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조금씩 움직이는 시기가 아닐까요? 제가 지체 2급이니까, 2급에 해당하는 사람들 위주로 함께 작업해볼 수 있을 거예요. 혹은 아라 씨처럼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청각장애이거나요. 왜냐하면 저도 스스로 케어하기 힘든 상황이라 다른 사람을 케어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파트너에게 계속 부담을 안기는 것도 힘든 일이고요. 장애인 무용수도 많아져야 하고, 장애인 무용단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부분도 세분화되고, 많아져야 해요. 재활, 치료, 사회복지 측면에서의 교육이나 프로그램 위주라면, 이제 취미 아닌 전문 예술 교육에도 눈을 돌려야 하고요.

김형희: 성국 씨 생각은 어때요?

강성국: 독일 베를린에서 티크아라팀의 공연을 보고 직접 보고 왔어요. 기괴하면서 발달된 공연이었는데요. 한 시간이나 하는데도 너무나 재미있고 좋더라고요. 나중에 꼭 한국에 데려오고 싶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이 팀이 꾸려져서 운영되는지, 유지하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팀 자체를 국가가 지원한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생활비 지원을 해주고 공연활동을 할 수 있게 해서 일주일에 5일씩 매일 연습을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한국은 언제쯤 지체장애나 발달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계속 연습을 해서 공연할 수 있게 할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형희: 자체 극장도 가지고 있는 무용단이죠.

강성국: 네 25년 정도 됐다고 해요. 다운증후군, 뇌병변 장애인들 모여서 공연도 하고, 협업도 한다고 하고, 일본인 무용수도 있더라고요. 참 부럽더라고요. 단지 지원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말이죠. 우리나라도 지원제도가 있지만, 한계가 분명해요.

김형희: 기초생활수급이라는 제도가 있잖아요?

김용우: 그 제도가 참 모순적인게요. 외국의 경우에 실직수당이 있잖아요. 물론 우리도 있지만, 그들은 일을 얻게 되면 실직수당을 멈추고, 다시 일이 끝나면 몇 주 후에 다시 신청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기초생활수급자 조건에 맞추기도 어렵고, 과정도 엄격하고, 무엇보다 선정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한번 취업을 하거나, 수입이 발생하게 되면 1, 2년이나 후에 다시 신청할 수 있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족쇄 역할을 하는 거죠.

강성국: 나와서 활동을 하거나 외부적으로 일정 금액 이상 벌면 못 받는 거죠.

김형희: 지금 안 받고 계셔요?

강성국: 받고는 있는데, 공연하기가 무섭죠. 공연 페이를 받아서 80만 원이 초과되면 또 지급이 안 되거든요.

김용우: 매달은 아니고, 1년으로 통합해서 몇 백만 원이라는 한계가 있어요. 그걸 넘으면 안 되는 거죠.

강성국: 작년에 100만 원 넘겼더니 바로 구청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러면 남아있는 액수가 얼마인지 물어보는 거죠.

김용우: 그 분들은 공연 페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스포츠 분야에서는 메달을 따면 체육 상금 같은 걸 받는데, 그건 기초생활수급에 포함이 안 된대요.

강성국: 공연 쪽은 상금이 아니라 페이니까…. 그게 좀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김형희: 그러면 지원은 어떻게 해요? 만약에 지원금을 받으면요.

김용우: 그건 상관이 없어요. 지출되니까요.

김형희: 수입으로 인정이 안 되는군요?

김용우: 지원금을 받아도 자기 자신에게 비용을 줄 수 없잖아요. 그러니 사실 생활에는 도움이 안 돼요.

고아라: 저는 장애인 3급이거든요. 저도 이제 막 기초생활수급이라든지 장애수당 등을 알아보는데,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더라고요. 지역마다 지원할 수 있는 장애인 수가 정해져 있다고 하고요. 저 같은 경우는 지원을 못 받고 있기도 하고요. 공연비, 외부 활동비로 받는 걸로 생활하고 있어요. 중복 장애나 2급 이상만 지원을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문자통역사 김태웅 씨의 키보드 ⓒ양동민

김형희: 시스템이 바뀌면서 10년 이상 해왔던 예술도 지원이나 제도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네요. 그리고 사실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예술가 전체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고요. 국가에서 직업적으로 보장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니까요. 장애 분야에 할당된 국가의 지원금이 없는 게 아니에요. 많은 양의 재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 장애 인구가 잘 가야 그 다음 세대도 잘 정착하고 작업할 수 있는데 말이죠.

강성국: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해서 목소리를 높여줘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다 아예 할 수가 없어서 저는 지금 지원금을 포기한 상태지만.

김형희: 지원을요?

강성국: 네, 올해에 한해서는요. 내년에는 또 해보겠지만, 이 마음을 갖게 된 것도 계속 참여하면서 개선되길 바라는 심정에서요.

나의 작업, 나의 방식

김형희: 지금부터는 앞으로 계획 중인 작업 이야길 듣고 싶어요.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는 상반기에 공연을 하셨나요?

김용우: 아직 하진 않았고, 예정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이랑 다른 문화예술재단 두 곳에서 펀드를 받아서 준비하고 있어요. 6월 27일에 용산아트홀 소극장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제목이 <방황하는 몸>인데요. 장애인의 몸이라는 것이 안정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잖아요. 불안정한 상태죠. 작품 부제를 ‘몸에 대한 연구’라 달았어요. 우리 몸에 대해서 그리고 휠체어의 움직임을 연구하고자 하는 공연이고요.

김용우 ⓒ양동민

김형희: 안무는 직접 하시나요?

김용우: 안무를 제가 하고요. 부족한 부분은 연출을 붙여서 준비하고 있어요. 이 작품은 스토리나 화려한 움직임보다는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방법과 원리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해요. 그리고 11월이나 12월 쯤, 창단 공연을 준비할 생각이고요. 계속 훈련을 해나가다 보면 원하는 스토리에 맞는 움직임을 찾아가겠죠.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예술 전반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서 이제까지의 경험가 연계되어 아이디어가 막 도출되더라고요. 전혀 다른 분야 이야기를 들어도, 그게 제가 가진 것과 매칭되기도 하고요.

김형희: 작업자에서 안무가로 향하는 중이신 것 같아요.

김용우: 그런 거죠.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고, 새로운 과정이고요. 이걸 함께 하는 무용수들에게 전달해주고, 그들도 스스로 움직임을 찾는 과정을 연구하도록 하는 노력을 하려고요. 제가 아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연출가가 와서 연출과 움직임을 도와주고 있고요.

김형희: 안무가를 섭외해서 무용수와 작업을 하고 나서, 그 안무가가 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떠나게 되니, 안무자와의 애착이 부재했었다고 말씀하셨죠. 언젠가 또 끝이 있는 만남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안에서 안무자가 나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 같아요. 같은 팀 안에 안무자가 생기고, 그 안에서 지속적인 탐구로 지속적인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한 거죠. 그래야 쌓이니까요.

김용우: 맞아요.

김형희: 그 안에서 무용수로, 리더로 활약하다가 지금은 새로운 팀을 만들고 또 안무자로써 나아가는 김용우 선생님을 보니까 응원하고 싶어요. 박수쳐주고 싶네요.

김용우: 항상 무대 안에 있었지, 무대 밖에서 바라본 적이 없었거든요. 모든 과정을 밖에서 바라보는 입장이 새로워요. 그 안에서는 발견해내지 못한 시스템을 생각해 볼 수 있더라고요. 새로운 안무가가 와서 가르쳐주는 동작을 익히고, 그 너머를 하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능력이 있는데도요. 10년 가까이 무용을 했는데, 스스로 창작하려는 의도와 방법을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러도 장애인 무용수들의 성장이 더딘 거예요.

김형희: 조직은 커져가는데도요.

김용우: 그래서 새로운 팀을 꾸리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어요. 창작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스스로 도출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부재해서는 안 되니까요.

김형희: 아라 씨도 하고 있는 작업이나 하려고 하는 작업이 있으면 이야기 해주세요.

고아라: 제 작품을 보러오는 관객들 중에 장애인도 많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공연을 보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예술을 보게 하고 싶거든요. 가끔 솔로 공연을 하고 무대 밖으로 나오면,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가 오셔서 “너무 잘 봤습니다.”하고 인사하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 아이도 청각장애인인데, 무용을 취미로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고아라 씨처럼 될 수 있을까요?”하고 질문도 하고요. 저로 인해 사람들의 편협한 생각, 고정관념이 풀려나가는구나 싶어서 기쁘고, 그런 가능성을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크게 바라기 보다는 천천히, 조금씩 인식이 바뀌는 데 기여하는 작업을 이어가려 해요.

고아라 ⓒ양동민

김형희: 아라 씨는 공연할 때, 와우를 끼고 하세요, 아니면 빼고 하세요?

고아라: 비트가 확실한 음악은 박자를 느끼긴 하는데, 멜로딕한 음악은 (빼면)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음악을 처음 들을 때 도움을 많이 받고, 음악 편집기를 보면 증폭이 있잖아요. 그걸 보면서 시각적으로 박자를 외워요. 리듬이나 변화의 시점을요.

김형희: 공연할 때도 끼고 하는 거죠?

고아라: 네, 빼면 비행기 소리만 들려서.

김형희: 우리 팀 무용수한테 공연 때는 와우(보청기)를 빼라고 시켰거든요. 말로 설명할 때만, 와우를 끼게 하고 그 다음엔 빼게 했어요. 그런데 처음엔 너무 힘들어 하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보청기 없이 맞춰서 공연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와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거기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움직임에도 제한이 생기고요. 늘 하던 것을 없이 해냈을 때, 스스로 발견해내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아라 씨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어요.

고아라: 여태까지는 끼고 했어요. 음악을 못 들으면 따라할 수가 없어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음악은 꼭 들어야 하는 게 있었어요. 클래식 발레 전공이고, 정해진 음악에 동작을 맞춰 해야 하는 춤을 췄기 때문인 것 같아요. 주로 그런 춤을 춰와서 다른 생각은 못해본 것 같아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김형희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무용수 분이 2년 전에 하신 공연을 봤어요. 그때 노래를 부르셨었는데, 그때 와우를 안 낀 상태이셨던 거예요?

김형희: 맞아요.

고아라: 언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는 어떻게 안 거예요?

김형희: 다른 무용수들과의 싸인이 있었죠. 노래 음은 안 맞는데, 그래도 감동이 있어요. 왜냐하면 진짜로 하는 거거든요.

고아라: 그런 부분이 신기하다기 보다 저에게는 충격적이었어요. 청각장애인들은 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못 듣거든요. 그런데 특히 노래를 와우 없이 불렀다고 하니까요.

김형희: 매일 노래 연습을 해요. 그런데 할 때마다 노래가 달라지거든요. 음악 없이 할 때 훨씬 더 감각이 살아난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불편한 것이지, 감각이 죽은 게 아니니까요. 그 감각을 끄집어 낼 노력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요.

고아라: 어쩌면 그 분이 저보다 훨씬 더 편안한 춤을 추신 것 같아요. 되게 부럽네요.

김형희: 청각장애인들만의 예민함이 있어요. 아라 씨도 무척 미인이지만, 청각장애인은 겉으로는 장애가 드러나지 않거든요. 그 차이에서 오는 예민함이 또 있더라고요. 성국 씨의 경우는 몸이 불편한 게 눈으로 보이니 또 다른 지점이 있고요. 장애인 무용수 안에서 참 복잡한 레이어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춤으로 다 발산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뭐가 장애일까요? 성국 씨의 몸이 불편하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사람만의 캐릭터가 중요한 거고, 그것이 살아있어야 현대무용이고, 개성인 거죠. 몸이 불편한 사람 나름의 메서드가 있거든요. 비장애인이 따라할 수 없는 호흡이 있고요.

강성국: 제가 지금까지 안무한 작품은 대부분 일반 무용수들이었거든요. 일반 무용수를 데리고 안무를 하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아까 김용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워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용수한테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이해시킬지, 설명해야 하는지 혼란이 오더라고요. 제가 언어장애가 있기 때문에 잘 설명할 수도 없고, 제가 쓰는 방법은 한 가지 예를 들어 주고, 그걸 가지고 움직여 보게끔 하는 거예요. 제가 이산가족에 대해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자기 어머니가 북에 계시다고 생각하고, 그 인상을 가지고 움직여보라는 제안을 했었어요. 모르겠어요. 아직까지 내가 정말 메서드라고 자신 있게 예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아직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강성국, 김용우 ⓒ양동민

김형희: 작업을 할 때는 한 주제를 두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 무용교육에는 이런 과정이 부재했으니까요. 춤 교육도 따라하기 식의, 그러니까 동작을 따라하고 테크닉을 익히는 방법 위주였지, 한 사람 사람이 각자 어떤 생각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도 방법도 없었어요. 예전에 안무 작업을 할 때도, 동작이나 동선을 설명할 땐 문제가 없는데, 이것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아무도 답이 없었어요. 이들에게는 지금까지 자기 생각을 말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성국 씨는 즉흥을 통해 느끼게 하고, 감각에 대해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방법을 쓰거든요. 언어의 불편함 때문에 인지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건 성국 씨만의 메서드라 생각해요. 이산가족이라는 주제로, 출연자들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드러낼 수 있게 하니까요. 이건 그냥 예술가로서의 메서드지, 장애인 예술가라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 그분을 필요없게 하는 것이죠.

강성국: 언어로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해서, 구성을 문서화해서 수업이나 연습을 가요. 수업할 때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고요. 시간문제가 있으니까요. 작업도 보통 그렇게 해요. 워크숍은 보조강사가 필요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제가 시범을 보이는 게 낫더라고요. 사람들을 이해시키거나, 그 감정을 끌어올 때 제가 시범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참여자에게 참여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더라고요.

김형희: 고아라 씨는 어때요? 창작 활동을 시작한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자기만의 방법이 발견되고 있나요?

고아라: 저는 안무 경험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아직까지 저만의 메서드는 없고, 가능한 맞춰주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는데요. 저 또한 주입식 무용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꼭두각시라는 느낌을 받았던 적도 있었지만, 팀을 만나서 작업을 할 때는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하고 있어요. 말하는 속도를 천천히 해서 저를 배려해준다던지 하고요. 청각장애인과 작업할 때는 수화를 쓰기도 하고요.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제가 발레를 하다가 지금은 다른 창작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점인데요. 원시시대에는 음성언어보다는 몸짓이 일차적인 언어였다고 하잖아요. 창작 무용의 관점에서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의사소통이 방식이, 인간이 원래 쓰던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아까 와우 없이 노래하고 춤춘 무용수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김형희: 그러면 마지막으로, 본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각자에게 듣고 오늘 자리를 마무리 해볼까요?

김용우: 저의 베이스는 휠체어 댄스스포츠잖아요.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파트너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고, 관객하고도 그래요. 순수 예술보다는 대중 예술과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작품을 짤 때 어느 정도 정형화된 경향이 있어요. 지금 저의 작업은 현대무용에 가깝지만 댄스스포츠와 현대무용의 중간 지점인 것 같아요. 저는 관객과 무용수가 파트너라고 생각하는데요. 주로 극장에서 공연을 하니까요. 일반 관객이 즐거워할 부분을 많이 찾으려고 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몸에 대한 연구도, 아주 심각한 움직임보다는 무용으로서 풀어내되 그것이 대중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함께 즐길 수 있는 움직임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 무용을 시작했을 때부터 관객과 소통하고 같이 즐기는 것이 목표였어요.

강성국: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관객이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작품을 별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알기 쉽고 유치하게 작품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요.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 기준을 잡는 것은 어렵지만. 무엇보다 관객이 즐길 수 있도록 작품성이 있는 작품을 하는 것.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하고 싶고, 아직은 그렇게 하고 있어요.

고아라: 두 분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는 부분은 관객가의 경계를 없애고, 관객도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하시는 건데요. 저는 제가 청각장애인이니까, 수화나 음성통역, 자막 등을 통해 동시통역 공연을 통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청각장애는 특히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어려워요. 제일 대화를 하기 힘든 유형의 장애라고 해요. 사람은 함께 살기 때문에 대화를 해야 하는데, 청각장애인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길 듣지 못하니 우선 가까워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사람과 사람 사이는 복잡해서, 의도와 다르게 오해를 사기도 하고요. 그래서 공연을 통해, 청각장애인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김형희: 모든 무용수들이 자기의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 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기보다는, 예술가 작업자로서 우리들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마련해준 《춤:in》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책임을 가지고, 춤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김형희_안무가 : 1995년 사단법인 트러스트무용단을 창단하여 대표와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함께 나눌 우리들의 이야기를 춤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함께 나누고자 한다. 2017년 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케인 앤 무브먼트 무용단의 예술 감독이기도 하다.

고아라 : 무용수. 덕원예고와 경희대학교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발레연구학회, 최승희 춤축제, 한국미래춤협회, 전국장애인체전 개막식 등에서 공연했다. 러시아, 체코, 중국 여러 해외 공연 경험이 있으며, 평창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에서 주역을 맡았다.

강성국 : 2005년 실험예술제에서 퍼포먼스 작가로 데뷔, 2006년 무용작품 <핏줄>로 CJ YOUNG 페스티벌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까지 국내외 여러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핏줄>, <Keep Going>, <Oh! Baby>, <눈이 가는 길> 등이 있다. 작품 활동과 함께 움직임 워크숍 강사로 활동하며, 일반 몸과 장애의 몸이 어울리는 방식을 공유하고 장애 예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용우 : 무용수, 안무가. K-WHEEL DANCE PROJECT 대표. 제 10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 대상 대통령상 수상.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 공연.


허영균_웹진 <춤:i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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