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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6.12 조회 3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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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

신재_연출가

어떤 사실이 문제로 인식된 순간부터 접근성에 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들어갈 수 있지만 너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 거리와 건물에 셀 수 없이 많은 ‘턱’이 있다는 사실,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이 사실들이 새삼스럽게 인식되면서부터 기존에는 공연을 보거나 제작하는 공간일 뿐이었던 극장도 다르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학로 거리에는 표만 끊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는 듯이 공연 홍보 포스터와 플랜카드가 곳곳에 붙어있다. 하지만 ‘도움 없이’ 휠체어 이용자가 들어갈 수 있는 극장은 소수에 불과하며, 배리어 프리 공연이 정기적으로 편성되는 극장은 없다.1)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 않다. 누군가는 어떤 공연을 보러갈까라는 고민 이전에 극장 건물 입구, 공연장 입구, 화장실 입구에 턱이 있는지, 너비는 얼마나 되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며, 누군가는 문자통역, 화면해설이 제공되는 공연에 한에서만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 비장애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소수의 접근성은 쉽게 누락되거나 애초에 전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에 관한 문제제기 역시 소음이 되어버리거나 ‘맞는 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 금방 잊혀진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너’와 함께 극장에 들어갈 수 없음을 인식한 순간, 이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 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그때부터 극장의 시설 접근성을 다루는 공연을 동료들을 모아 제작하기 시작했다. 공연 제작 과정에서 크게 3가지의 시도들을 이어가고 있다.
1) 0set프로젝트는 2018년 4월 <나는 인간> 공연 사전 워크숍으로 <걷는 인간 ?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조사>를 시행했다. 15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서울문화재단에서 제작해 배포하는 <대학로 공연장 안내도> 상에 명시된 120곳의 대학로 공연장의 접근성을 체크해 본 결과, 휠체어 이용자가 활동 보조 없이 접근이 가능한 공연장은 14곳뿐이었다. 부분적으로 ‘도움’을 받으면 접근이 가능한 공연장까지를 포함할 경우는 21곳이었다.

대학로 공연장 안내도 ⓒ서울문화재단

<걷는 인간 -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조사 결과> ⓒ0set프로젝트
1. 극장 시설 접근성 체험

우선 공연의 일부로 기존과는 다른 관점으로 극장 및 장애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6년 <장애극장>, 2017년 <불편한 입장들>, 2018년 <나는 인간> 공연에 관객들이 직접 줄자와 체크리스트를 들고 극장을 돌아다니면서 턱의 높이를 재보고 공간의 너비와 깊이를 확인하는 워크숍을 포함시켰다. ‘함께’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말로 하면 공동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시설들의 구체적인 현황을 손수 파악하는 시설 접근성 모니터링에 관객을 참여시킨 것이다. 관객들은 워크숍을 통해 정확한 수치로 ‘턱’을 확인했다.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장애인의 몸에 있다고 여겨진 장애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턱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절차로서의 워크숍이었다.

<걷는 인간 -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조사> 2018.4.1 현장 사진 ⓒ0set프로젝트
2. 창작자/감각 접근성 시도
워크숍을 마친 후 객석에 자리한 관객들이 다음으로 마주하길 바랐던 것은 창작자로서의 접근성2)이었다. 한편으로는 대체로 예술가 또는 창작자로 셈해지지 않는 사람들의 신체와 이야기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연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았던 요소들이 공연의 주요한 부분이 될 수 있기를 원했다. 2017년 <연극의 3요소> 공연은 휠체어 이용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가 극장이라는 물리적 시설에서부터 ‘배우’라는 역할 자체, 더 나아가 서로를 향해 접근해 가는 과정을 연기, 다큐멘터리 영상, 움직임 장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창작자로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함께 서로의 이야기와 움직임에 민감하게 접근해가는 공감과 연대의 과정이었다. 또한 공연 전체를 눈으로도 듣고 귀로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귀에 들리는 모든 대사를 문자(스크린 영사) 통역했고3)눈에 보이는 모든 움직임 묘사를 대사화해서 대사의 일부가 곧 화면해설이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나는 인간> 공연에서는 소리의 내용만이 아니라 속도, 크기, 리듬을 반영한 문자통역을 제공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인간>에서는 나는(flying) 인간의 불가능성과 나는(I) 인간의 가능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다른 감각, 신체, 경험을 이해하고 묻고 만나야한다는 주제를 배우들의 나는(flying) 움직임 시도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연극의 3요소> 2017.7.7 ⓒ0set프로젝트

<나는 인간> 2018.4.11 - 4.13 ⓒ0set프로젝트
3. 문제제기
여러 부족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워크숍과 공연의 내용이 관객에게 잘 도달했다면, 공연이 끝나갈 무렵 관객들도 어떤 사실들을 문제로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함께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에 동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연극의 3요소>와 <나는 인간> 공연에서는 관객들에게 “국가인권위원회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대상으로 공연 및 워크숍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 사항이 담긴 대본 또는 글을 진정서로 제출하려고 한다, 공동진정인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4) 공연을 본 관객들 대다수가 공동진정인이 되어주었다.
4. 질문들
2) 앞서 언급한 대학로 극장 시설 접근성을 관객이 아닌 창작자로서 살펴본다면 결과는 더 처참하다. 창작자로서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무대, 백스테이지, 조정실까지 완비되어 있는 극장은 사실 상 없다. 또한 출연자로서 휠체어 이용자가 무대와 백스테이지에 접근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대관이 용이한 극장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센터가 거의 유일하다. 장애인을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은 한, 극장은 장애인을 창작자로 전제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장애인 극단 및 단체, 개인들이 존재한다. 극장 입구의 턱을 넘어갈 경사로를 스스로 만들고 시설 이용의 불편함을 개인이 감수하면서 창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더 많은 장애인 창작자들의 존재, 시도, 이야기가 무대를 통해 관객들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3)청각장애인과 함께 지속가능한 소통과 나눔을 추구하는 AUD사회적협동조합(http://audsc.org)에 문자통역을 신청해서 공연의 실시간 문자통역을 제공했다.
4) 2017년 7월 <연극의 3요소> 공연 대본 자체(진정서)를 공동진정인 74인의 이름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대상으로 제출했다. 당시 장애인의 공연장 시설 접근성 및 문화/인식 개선을 위한 정책 마련을 요청하는 진정서는 최종 각하 되었다. 하지만 “진정 내용이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어 관련실태를 찾아보았으나 이와 관련된 실태조사 조차 없어 당장은 정책적 검토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관련실태를 조사해보자는 생각해서 2018년 4월 <나는 인간> 공연을 앞두고 ‘관련실태’를 조사하는 워크숍 <걷는 인간-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나는 인간> 제작진 및 관객 86명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진정서를 제출했다.
공연을 마친 후 몇몇 관객들은 내게 와서 몰랐던 장애인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며 반드시 시설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동의 의사를 밝혀주기도 했다. 반면 또 다른 관객들은 너무 ‘옳은’ 이야기이고 복지와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져야할 이야기인데 이걸 굳이 공연으로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묻기도 했다. 둘 중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같은 의문이 들었고 그것이 앞으로의 공연에서 붙들고 가야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은 어떤 이미지로, 어떤 경험으로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장애인 접근성의 문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 ‘옳은’ 이야기라고 하기엔 우리는 여전히 ‘틀린’ 현실에 살고 있다. 또한 복지와 정치의 영역을 예술적-감각적 경험과 분리해 사유하고 경험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장애인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은 장애인을 무리지어 있는 추상적인 장애인, 보호와 개선이 필요한 대상으로서의 장애인으로만 인식한다.
뻔한 이야기를 다시 해본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의식은 이미 오래된 혹은 옳은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대놓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대부분의 시설 및 문화는 물론 공연, 예술,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장애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부수적으로 추가되거나 무리지어 추상적으로 다뤄지거나 시혜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마치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구성된 좌석도에 장애인석을 하나 둘 추가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제작할 공연은 이미 오래된, 하지만 언제나 새삼스러운 이 문제제기에 더 정치적이고 더 감각적인 낯섦을 끼워 넣는 시도여야하지 않을까 싶다. 무심코 계단 아래로 내딛는 발이 낯설게 느껴지며 턱이 인식되는 순간,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휠체어 이용자가 ‘장애인’이 아닌, 더도 덜도 아닌 고유한 자기의 리듬과 속도를 가진 낯선 사람으로 느껴지는 순간을 함께 체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신재_연출가 <0set프로젝트>에서 함께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0set프로젝트>는 사회적·문화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명제를 저울위에 놓고 0set 버튼을 눌러 공연의 재료로 새롭게 사용하고자 모인 창작 집단이다. <연극의 3요소(2017)>, <불편한 입장들(2017)>, <나는 인간(2018)> 등을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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