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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3.15 조회 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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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교육은 교육적인가?

글· 정리: 김재리(드라마투르그)

일시: 2018년 3월 3일 토요일 오전 10시-12시

장소: 대학로 씨어터 까페

참석: 김재리(드라마투르그, 모더레이터), 권령은(안무가), 윤정아(안무가), 천샘(안무가)


왼쪽부터 조형빈, 권령은, 윤정아, 김재리, 천샘, 김연임 ⓒ한지훈

새로울 것도 없지만 무용계의 어떤 이슈도 ‘교육’으로부터 벗어나긴 어렵다. 우리는 종종 무용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가열찬 토론 끝에 ‘결국, 교육이 문제다.’라고 결론내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왜 문제이며 우리는 어떤 교육을 기대하는가? 한국에서 50년 이상 지속되어온 근대식 무용 교육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90년대 이후 장르별 구분을 통한 전문 무용수 훈련에 초점을 맞춰온 제도권의 교육과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이고 맥락적인 관점에서 무용교육(제도)에 대한 비판과 분석은 여전히 부족하며, 사려깊은 성찰보다 효율적인 ‘대안’을 강조하는 근대적 습관으로 교육의 본질적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을 간과해왔다. 예컨대, 무용수 훈련이 문제였다면 안무가를 기르는 교육으로 바꾸자는 손바닥 뒤집기 식의 헛헛한 대안이 아닌 지금까지 교육의 장에서 무엇을 나누고 생산해왔는가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담은 한국의 제도권 교육을 통과해 온 주체들의 성찰적 증언을 통해 역사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에서 무용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다만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젊은 세대들이 이전 세대를 향하는 비판이 아니라 (지금의) 춤, 그리고 교육에 대해 근원적으로 묻는 것이며, 앞으로의 무용 교육의 ‘가능성’을 열기 위한 대화라는 것을 밝혀둔다.

교육의 장소

김재리: 이 대담은 <춤in> 지난 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진행되는 ‘무용 교육’ 시리즈이다. 이번에는 제도권 교육 중에서 ‘대학의 무용교육’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대학 과정에서 개인이 겪은 경험이나 사회에 나와서 새롭게 깨달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자. 좀 더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질문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교육이 발생하는 장소, 스튜디오를 포함한 ‘강의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곳에서 무엇을 했나? 무엇을 배웠으며, 가르쳤나? 개인적으로 ‘강의실’을 어떤 곳으로 규정하고 있는가?


김재리 드라마투르그 ⓒ한지훈

권령은: 나에게 스튜디오는 예고에서나 대학에서나 변함없이 ‘땀 흘리는 곳’이었다. 춤의 기술을 연마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곳으로, ‘땀’이 이 모든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대학에서 춤을 가르칠 때에도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토론을 하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 등 땀을 흘리지 않을 때에는 ‘왜 춤을 안 춰요?’라고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에 반해 이론을 배우는 강의실은 ‘시간을 때우는 곳’이었다. 지금은 이론이나 철학과 같은 인문학이 내가 스튜디오에서 하는 행위들에 대한 질문과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학을 다니던 시기에는 강의실과 스튜디오는 완전히 분리된 곳이었다.

윤정아: 나는 다른 대학들을 경험했는데, 특정 장소에 정해진 어떤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장소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했던 것 같다. 분명히 대학 교육이 달라진 것이 별로 없을 텐데 내가 무엇을 얻고 싶고 무엇을 고민하느냐에 따라 그 장소는 전혀 다른 곳이 되었다.

김재리: 각자가 가진 관심이나 수업을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그 태도 자체를 형성해준다거나 관심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교육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예컨대, 교수 뿐 아니라 멘토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관심을 학문적, 예술적 수준에서 확장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 마련되었는가?

윤정아: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커리큘럼 자체가 마음에 들거나 수업의 질과 내용이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숙제를 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탐구의 장소와 분위기가 필요해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했다. 물론 학위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직업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탐구하는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만 생각하기 어려웠다. 다른 대학들을 거치면서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업은 이론이나 무용 실기, 창작 이외에 무용의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의 실천적인 부분에 대한 교육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용과를 졸업하고 모두 무용수, 안무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실제로 대학을 다니면서 부족한 것을 학교 밖에서 배우러 다녔는데, 외부 활동은 학교에서 통제하는 편이라 몰래, 숨어서 배웠다. 지금은 축제 기획도 하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학교 밖에서 배운 것들이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윤정아 안무가 ⓒ한지훈

천샘: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고등학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나왔다. 그곳에서의 경험을 문화적 차이 등으로 한국의 무용교육과 직접 비교하기가 어렵지만, 미국에서 경험한 스튜디오는 ‘열려있는 곳’으로 기억된다. 기본적으로 토론을 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스튜디오 안에서도 춤과 이야기가 함께 한다. 또한, 물리적으로 미국의 스튜디오들은 기본적으로 햇빛이 많이 들고 층고가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한국에 있는 스튜디오들은 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장소적으로 밀폐성이 상징하는 것이 있다고 본다. 서로 간의 열린 대화가 별로 없거나 수행해야하는 테크닉이 고정되어있고, 공기도 순환되지 않는 닫힌 공간으로 느껴졌다. 밀폐된 교육 장소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미 닫힌 공간에 익숙해져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차이나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느낌적 구분, 이런 것들은 어떤 장소에서 오랜 기간 동안에 만들어지는 것 같다.

김재리: 단지 무용계의 특수한 환경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문화와 연관되어있는 것 같다. 가정에서 받은 교육도, 관습적으로 습득되는 것들도 무용의 장소에서 하는 행위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의 닫힌 공간에서 대화가 자유롭게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의 문제점을 모르고 있다가 외국에서 다른 교육을 받았을 때 내 몸에 학습되어있는 것들을 느끼게 된다. 나의 경우에도 교육의 장소는 지식을 누군가로부터 전달받는 것이지 창조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권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을 끊임없이 전달받고 주입받는 것이 내가 받은 교육의 8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적 환경에서 갑자기 창작의 과제를 부여받았을 때의 당혹감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근대식 교육 모델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에도 특정 춤의 스타일을 마스터하는 방식의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동시에 ‘네 것을 만들어라’ 식의 창작을 요구하는데 이 두 가지는 페다고지적으로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교육 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교의 맥락에서 창작은 어떻게 교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윤정아: 한국에서의 교육은 수직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학교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도 그러하다. 무용에서도 나이나 선후배 등으로 서열이 정해지는데 이러한 권위의식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생각과 아이디어 등을 평등하게 공유해야 하는 예술 창작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창작에는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권위를 가진 어떤 그룹에 의해 지배당하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실기 수업뿐 아니라 이론을 배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수업은 권위를 가진 선생님이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것을 이해해야 하는 일방적인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지식을 전달해주는 사람으로서 권위를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책이나 다른 매체로 모든 정보가 열려있고 접근도 쉽다. 지식의 내용보다는 이론과 춤을 대한 태도를 형성해나가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대학원에서 경험한 좋은 수업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면, 이론이나 실천, 지식 등의 구분이 없이 ‘개인’의 관심사와 관점에 따라서 이것을 모두 아우르는 방식으로 접근했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생성하고 스스로 방법을 찾고, 이것을 발표하는 방식까지 학생이 정한다. 학생이 주체가 되는 수업이 내 것을 표현하는 창작의 방식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무용사를 배운다면, 책의 순서대로 선형적인 역사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의 관점에서 역사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방식을 배우고 내가 스스로 역사를 구성하는 수준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령은: 지금까지 학교 교육에서 스튜디오와 강의실은 실기와 이론을 구분하는 것처럼 분리된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이런 이분법적인 관점이 아닌 스튜디오 내부에서 이론과 실천을 모두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안무학교에서 3주간 실기와 이론이 통합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이론을 통해 내 춤의 역사나 배경 등에 대해 탐색하고 또 그것을 근거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창작의 행위를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의 무용 교육의 방식이 이론과 실기가 합쳐진 교육 모델로만 바뀌어도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테크닉 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전달받고 모방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 자체의 문제점보다는 A를 가르치고 왜 C를 만들어내지 못하냐는 추궁을 당할 때 부당함을 느낀다.


권령은 안무가 ⓒ한지훈

천샘: 현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무용의 실천적인 측면을 생각할 때, 강의실이나 스튜디오에서 하는 춤 교육은 그 공간을 넘어 현실로 확장되었을 때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안무가로서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들이 과연 현실에도 적용이 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스타일을 완수하거나 지식을 전달받았다고 해서 이것이 현실에서도 지속될 수 있을까? 문제는 지식에도 트렌드가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계속 나오고 이전의 지식이 죽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이 질문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고 지금 다루고 있는 것들이 나와 사회에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대학들의 모토가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 무용교육에서 어떤 노력들을 하는지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글로벌이라는 것이 단지 영어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지구상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세계의 보편적인 이야기와 감성을 다룰 수 있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은 한 번에 길러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예술교육은 곧 입시교육이자 도제식 교육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이러한 교육만 10년 이상을 지속할 때 몸에 체화되고 체득되는 것들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내 몸에 쌓여있는 것들이 내가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려고 할 때 걸림돌이 된다고 본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는 창작의 토양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권령은: 그런데 이러한 창작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A에서 C를 만들었을 때에도 문제가 된다. 속된 말로 또라이 취급을 받거나 아웃사이더로 규정되어버린다. 자신들이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올린 구조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에는 국제적으로 훌륭한 무용수는 많지만 아직 안무가는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고, 지금까지의 예술 교육에서 ‘작가 만들기’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위험군’으로 분류한다. 단지 무용계에서만의 문제는 아니고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군대식 계급문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내가 ‘한국 현대무용 내부에서의 몸의 정치성’과 관련해 리서치하면서 인터뷰 한 내용이기도 한데, 학교에서도 군대식으로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눈을 마주치거나 자기 발언을 할 수 없고, 전통이라는 이름의 얼차려와 같은 폭력을 감내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율에 동의해왔다. 이러한 무용 학교 내부에서의 체험들은 내가 사회와 예술에서 발생하는 상황과 이슈들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습관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용교육의 주체들

김재리: 물론 학교와 같은 제도권에서는 하나의 시스템이 구축되어있고 개인이 이상적인 페다고지를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시스템을 벗어나기란 어렵다. 하지만 그 시스템을 추동하는 수많은 주체들이 있다. 각자의 역할을 무엇이며, 무용 교육의 장에서 그들이(우리가) 해 온 것과 하지 않은 것들은 무엇이 있나?

권령은: 학교라는 곳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현재의 커리큘럼이 과연 학생들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하나의 교육과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인식론이나 방법론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학생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어떤 교육적 목적과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한국의 대학은 대부분 장르별로 교수진이 구성되는데, 그런 구분이 더 이상 의미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상적인 수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졸업을 하고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다보니, 당시 학교의 환경에서 제공되는 수업 이외에 왜 조금 더 자발적으로 질문을 만들고 다양한 것들을 더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반성도 종종 들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다른 시도는 어려울 것 같다. 남자들은 콩클을 준비해서 군대도 면제받아야하고, 여자들도 무용단을 목적으로 한다면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용교육의 문제점들이 단순히 무용교육 커리큘럼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전방위적인 문제점들 안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윤정아: 나는 약간 다른 경험을 했는데, 여대를 다녀서 군대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했고 오히려 학교에 기대를 하기 보다는 학교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었다. 학교에서 실기 수업은 거의 그 학교 졸업생들로 이루어진 무용단 출신들의 강사들이 주로 했었는데, 예고부터 받아온 수업을 대학에서도 지속하는 방식이었다. 한번은 학교와 전혀 관계없는 강사가 와서 실기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오히려 그때 받았던 한 학기의 수업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천샘: 교수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국내에서 무용과 학부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적 상황에 대해 어떤 비판을 가하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다. 미국에서의 예를 들어보면, 교수가 항상 ‘나는 너를 도와주기 위해서 여기 있는 거야’라고 얘기했는데 여기에 교수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데?’라는 질문을 받았지 ‘이것을 해야 해’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 예술 대학에서는 평가도 학생이 pass/fail을 받을 것인지 A-D의 학점을 받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예술 대학의 특성상, 좀 더 자유로운 경험과 또 실패할 수 있는 경험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의 제도가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예술가가 오로지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과 끼로만 만들어진다고 가정하면 무용에서의 교육을 얘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대학이라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사유의 시간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샘 안무가 ⓒ한지훈

김재리: 몇몇 교수들은 지금은 학생들이 갑이라고 불평하지만 여전히 한국 무용계에서 교수가 가지는 권위는 흔들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교수가 예술가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하면 직업적으로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맥락상으로는 대학에서 교수에게 창작 활동 실적을 요구하고 개인 무용단을 운영하지 않으면 이를 충족시킬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리고 한국의 무용계의 구조상 대학과 교수들이 운영하는 무용단이 정점에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졸업생)은 무용수, 교수는 안무가가 되는 구조가 생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안무가와 무용수간의 권력 구조도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권령은: 한국에서는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어느 정도 경력이 되면 자연스럽게 안무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같은 경로를 통해 지금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 무용수들이 교수의 작품에 학생(제자)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무가가 갖는 권위는 무용수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무용수는 안무가에게 선택받고 그가 원하는 것들을 열심히 수행해야 하는 구조이다. 유럽에 갔을 때 이런 권력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어느 무용학교에서 워크숍을 받은 경험이 있는데, 안무가와 무용수의 역할을 전복하는 작업에 참여했었다. 학생들이 무용수, 안무가 중에서 스스로 역할을 정하고 무용수가 안무가를 선택하는 그런 방식의 수업이었는데, 이미 동등한 상태에서, 무용수-안무가의 위계 구조가 깨진 상황에서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천샘: 나는 2013년도부터 단체를 조직해서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는데, 아직 이탈자가 없다. 이 단체에서 작업과는 별로도 스터디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것이 소통의 창구가 되는 역할을 한다. 서로 고민들과 관심의 대상들을 풀어놓고 토론하고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장이 마련이 되어있어서 작업을 할 때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다. 안무자가 자기의 관심분야에 대해서 발제를 하면 무용수들과 다 같이 그것에 관한 토론을 한다. 작품이 올라가기 전에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용수들도 안무가와 동등한 위치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김재리: 학생들과 교수가 서로 수평적인 관계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학생의 입장에서 교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무엇인가?

윤정아: 지금은 대학원에서 학위 과정을 하는 중인데, 개별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거나 논문을 쓸 때 교수가 학생에게 좀 더 밀착되어서 지도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교수가 수업이외에 행정적인 일이나 개별 연구와 창작 활동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약 교수가 물리적으로 도와주기 어렵다면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교수가 학교에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학교에서 창작이나 연구를 할 때 혼자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가진 주제에 함께 관심을 가져주고 나의 부끄러운 글에도 성의껏 조언을 해주는 멘토나 어드바이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런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사회학이나 인류학과 연결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지식의 차원뿐 아니라 ‘생각만 하지 말고 여행을 가는 게 어때?’ 하는 정서적 측면까지 살펴주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문제설정의 단계부터 과정을 함께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서로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항상 과정에서는 혼자 헤매다가 결과물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평가를 받는 기분이 든다.

확장된 무용 교육

김재리: 최근에는 무용 현장에서의 다학제나 융합, 멀티미디어 등의 개념들을 중심으로 예술 창작의 미학과 형식이 변화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이 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무용교육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켜보면, 예술에서도 글로벌이라는 부분이 강조되고 지엽적인 예술의 영역이 아닌 보편적 예술로서의 가치도 새롭게 갱신되고 있는 것 같다.

천샘: 현재 안무가로 활동하면서 깨어있는 세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어떤 이슈가 생기면 내가 무용수로서, 또 안무가로서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데 이런 것들이 작품의 어떤 소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까 이야기가 나왔던 ‘이론을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그 배움은 결국 실천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이 되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용분야에서 이러한 실천들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여전히 무용은 자기 안에서 자아를 아름답게 하는 것에 급급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를 내기 위한 연대도 부족하다. 연대라는 것이 반드시 정치적인 입장 뿐 아니라 작은 부분에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능력으로 꾸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들은 어떤 이론을 학습하고 무용의 테크닉 훈련을 했다고 키워질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속한 스터디 그룹에서 이론적인 부분도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가 배운 것들을 사회적 차원에서 무용의 실천으로 연결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이전에 세월호 1주기에 참여한 공연이 있었고, 지금은 유기견들의 상황이나 생태주의에 관한 리서치를 하면서 동물권에 관련한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우리의 관심을 토대로 모두 일상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이론을 배우는 것도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모두 일상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실천하는가에 대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재리: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이 결국에는 일상의 감각을 회복하고 문제의식을 실천으로 확장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사회와의 상호 관계를 고민하기보다는 무용계에서 이미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다 보니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사건과 같은 것들을 작업에서 다룰 때 어려움을 느끼며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라며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부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와는 단절된, 우리끼리만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무용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공유되는 언어와 말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특권 의식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에 무용이 문화예술 향유나 복지의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커뮤니티 댄스나 문화예술로서의 춤 등과 같이 사회적 차원에서의 무용에 대한 지원금이 늘어나면서 무용과를 졸업하고 이런 분야에서 활동하는 안무가들이 많아졌다. 실제로 이러한 안무가들의 활동들을 보면 무용이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아마추어 무용수들과 함께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학교의 커리큘럼에서 문화예술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문제들에 어떻게 접근하고 지식과 예술로 구성해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권령은: 내가 무용의 장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언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으면서 깊게 터치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경험한 사적인 사건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 세월호를 떠올릴 수도 있다. 직접적이지 않지만 관객의 개입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직접적인 사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무용의 매체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직접적이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관객이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다양하고 포괄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용가가 사회를 인식하고 정치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 단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담론에 밝은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무용의 본질적인 매체적 특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인식하는 것들을 공연의 메커니즘과 무용에 내재되어있는 요소들로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은 무용의 실천과 이론의 교육적 접근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안무가나 무용수를 위한 교육이라기보다 무용과 공연을 아우르는 전 영역의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서도 공통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받은 어떤 교육적 모델에 대한 실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차원에서 무용교육은 필요하고 학교가 이것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재리: 지금은 춤을 훈련하거나 만들고, 이론을 배우는 방식의 좁은 의미에서의 교육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 예술 등의 전 영역으로 확장된 차원에서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을 다루는 이상적이고 독점적인 페다고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관점과 입장에서 접근하는가에 따라 교육의 형태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 대담에서 처음 제시되었던 ‘무용교육은 교육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완벽하게 불가능하다. 대담을 통해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중심으로 무용교육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무엇’과 그것이 이루는 구조를 들여다보고자 한 것은 단지 무용교육의 가능성을 열기 위한 시작점일 뿐이다. 학교를 학교답게 만드는 이상적인 교육 모델은 없다. 그래서 학교는 여전히 열려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김재리 : 2011년 안무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13-2014년 국립현대무용단 드라마투르그를 역임했다. 현재 독립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면서 안무가 및 시각예술 작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실천들을 이론으로 확장시키는 것에 관심을 갖고 개인 연구를 진행 중이며, 컨템퍼러리 댄스와 안무에 관한 몇몇 논문을 발표했다.

권령은 : 현대무용과 안무를 공부했고, 현재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현대무용가다. 다양한 매체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움직임과 몸의 다양한 관점들을 실험하고 있다.

윤정아 : 플랫폼 A 입주 안무가로 안무, 축제기획, 무용교육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서로 다른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수료까지 마쳤으며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한 무용계 종사자로서 지금의 위치와 향후의 방향성에 대한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

천샘 : 춤을 좋아하는 여자 사람. 마포구에서 태어나 십여 년을 살았고, 그 다음 십여 년은 미국에서 살았다. 다시 마포구로 돌아와 우연처럼 시험 본 예술학교에 붙었는데,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춤이 밥벌이가 되었다. 춤과 우리 사회가 만나는 지점을 고민하며 시작된 <감성충만 + 지식저렴 예술가들을 위한 초경량 지식투척 프로젝트!>, <감성 스터디 살롱: 오후의 예술공방>을 이끌고 있고, 현대무용의 움직임 놀이터 <어반 무브먼트 살롱: 댄서스 라운지>에서 똘기어린 움직임 실험들을 모의하고 있다.


글· 정리: 김재리(드라마투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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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과예술2018-03-16

    이곳에서 쓸수있는 글이 한계가 아쉽다 ㅜㅜ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좀더 이쉬화하고 사회가 마을에 함께 할수있는 그런 사회적인 문제로 내놓지 않는다면 영원히 해결할수없는 문제라고 본다

  • 마을과예술2018-03-16

    한국 무용교육은 당연이 도퇴될수밖에 없다. 음악과 미술은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교과서적으로 학교에서 배우고 있으나 무용은 학교 교육에서 배제되면서 아이들에게는 무용을 배울수 있는 부분이 다른 예술가치보다 적은 현실이고 많은 무용가들 또한 자기들끼리만 서로 소통하고있으며 전문성만을 생각하고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