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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1.25 조회 3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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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교육, 자기 스스로를 세우는 과정
독일의 경우

손옥주_공연학자

바야흐로 춤을 통한 생의 전환을 꿈꾸는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삶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비전에 맞춰 2022년까지 추진되는 ‘문화예술교육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중장년층을 위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가 전국 6곳에 설립되고 시민예술가 양성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학생들의 예술교육을 담당해온 학교 예술강사들의 처우개선 방안도 보다 구체적으로 마련될 계획이라고 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 댄스(를 표방하는) 프로젝트들이 예술가 개개인을 넘어서서 정부나 지자체 단위에서 적극 장려되는 동시에 오랜 시간 도외시되어온 전문 무용수/무용 강사의 재교육/재취업이 주요 화두로 부각되고 있는 무용계의 오늘을 반추해볼 때, 일반인과 전문 무용가들의 (재)교육에 대한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지원 방안이 검토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창작 작업이나 예술교육 활동의 이면, 즉 무용인들의 생활 및 작업 기반(여기에는 물론 재정적 요소도 포함된다)에 대한 관심이 보다 높아졌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복과 재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이루어지는 고유한 공간성이 무용의 미학을 규정한다고 할 때, 그와 같은 시공간의 조건들이 구축되기 위한 실제 작업 환경에 대한 고려는 오랜 기간 공론의 장에서 배제되어왔다. 오늘날 어린이나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교내외 무용 교육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대학에서의 무용 교육은 이론과 작업 현장을 어떠한 방식으로 매개하고 있는가? 무용을 전공한 학생들은 졸업 후에 어떠한 방식으로 무용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오랜 기간 활동을 이어온 중년의 무용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몸/움직임과 대면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숙고는 비단 작금의 우리 무용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근대 시기 이래 세계 무용교육을 선도해온 독일의 경우, 통일 직후인 1990년대 이래로 독일 국내 무용교육과 관련하여 제도적인 개선 요구에 지속적으로 직면해왔다. 탄츠테아터의 산실로 여겨지는 에센의 폴크방 학교 (현 폴크방 예술대학Folkwang Universitat der Kunste)나 독일 근대 무용사를 대표하는 드레스덴의 팔루카 학교 (현 팔루카 무용대학Palucca Hochschule fur Tanz) 등 1920년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유명 교육기관의 다소 고착화된 교육 방식을 뛰어넘어, 전문 무용인으로서의 실질적인 창작 작업과 이론 연구, 그리고 활동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 확립 등이 효율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모델이 본격적으로 요청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2005년 독일 연방문화재단(Die Kulturstiftung des Bundes)은 젊은 무용가들의 활동을 장려하고 새로운 형태의 무용 교육과정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5년간 약 1250만 유로 가량의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탄츠플란 도이칠란트(Tanzplan Deutschland)’(이하 ‘탄츠플란’)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로 결정한다. 이 같은 결정은 특히 직업 무용단에 속하지 않은 채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무용가들, 그리고 학업과 동시에 자신만의 안무 작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무용 전공생들에게 보다 많은 작업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존의 무용 기관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대안적 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전의 독일 무용교육이 학교나 기관에서 시행하는 특정 교수법에 의존하는 바가 컸던 반면, ‘탄츠플란’의 일환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들은 이론과 실제를 연결 짓는 방법이나 무용 강사 교육에 대한 대안을 고안해내고자 하는, 다시 말해 무용이라는 표제 하에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담론들을 보다 실질적인 눈높이에서 조명해보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다.

일례로, 가장 성공한 ‘탄츠플란’ 프로젝트로 손꼽히는 '베를린 인터-유니버시티 무용센터(Hochschulubergreifendes Zentrum Tanz, 약칭 HZT)'의 경우, 그 출발점부터가 베를린 예술계를 대표하는 교육 기관인 '베를린 예술대학(Universitat der Kunste Berlin)'과 '에른스트 부쉬 연극학교(Hochschule fur Schauspielkunst Ernst Busch)'가 결합된 형태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실험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단일한 학사 과정의 공식 명칭이 ‘댄스, 콘텍스트, 안무(BA Dance, Context, Choreography)’이며, 두 종류로 나뉘어지는 석사 과정의 명칭은 각각 ‘솔로/댄스/저작(MA Solo/Dance/Authorship)’과 ‘안무(maChoreography)’라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재학생들로 하여금 입학하는 순간부터 일방향적 교육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작가로서의 역량 강화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교육의 경험을 전유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센터의 궁극적인 설립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지향점을 학업의 영역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업의 성격을 새로이 규정함으로써 기존 무용 교육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재고하게 했던 셈이다. 그 결과, 센터의 존립을 결정하는 5년간의 파일럿 프로젝트 기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베를린 인터유니버시티 무용센터’에는 매해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지원자들이 몸의 움직임을 사유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독일 무용 교육의 현주소를 짐작케 하는 또 다른 예로는 베를린 슈타츠발레(Staatsballett Berlin)의 무용 교육 프로그램 ‘무용은 대단해!(Tanz ist KLASSE!)’를 들 수 있다. 독일어 단어 ‘klasse’의 이중적 의미(‘class’와 ‘great’)를 포착해낸 명칭에서도 나타나듯, 이 프로그램은 슈타츠발레 소속 무용수들이 발레에 관심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학생들과 함께 무용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실제 무용 교육 현장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한다. 뿐만 아니라 발레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일상적인 가정생활 안에서도 지속될 수 있도록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하는 워크숍이 기획되기도 한다. 특히 ‘무용은 대단해!’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탄츠탄츠(TanzTanz)’ 프로그램은 발레 경험이 있는 15세에서 45세 사이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오랜 기간 슈타츠발레 소속 무용수로 활동한 뒤 은퇴한 발레리나/발레리노들을 강사로 적극 섭외한다는 점에서 그 특이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발레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상대적으로 이른 은퇴시기에 직면한 발레 무용수들에게 다시금 활동의 기회를 부여해준다는 점에서 ‘나이 드는 몸(Aging Body)’에 대한 담론이 주목 받고 있는 현 세계 무용계에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베를린 인터-유니버시티 무용센터’와 베를린 슈타츠발레의 ‘무용은 대단해!’ 프로그램의 예를 통해 살펴본 독일의 무용교육(Tanzausbildung)은 궁극적으로 ‘빌둥(Bildung)'에 대한 독일인들의 철학적 정서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빌둥’이라는 개념은 본래 자기 스스로를 인격적으로 계발하는 자기 수양의 과정 혹은 그와 같은 수양이 이루어진 상태와 관련이 있는데, 이것이 제도권 안에서 효율적으로 구축된 과정을 통해 실현될 때 비로소 ‘아우스빌둥’, 즉 ‘교육’의 이상은 완성된다. 무용 교육의 성공 정도를 단순히 특정 정책의 시행 여부로만 가늠해온 기존의 관습적 이해를 넘어서서 이처럼 ‘빌둥’이 갖는 본래적 의미의 장 안에서 ‘무용’, 그리고 ‘교육’에 대해 사유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서두에서 제기되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손옥주 공연학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무용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연구 지원을 받아 <무용 오리엔탈리즘: 근대 독일어권 무용계에 나타난 한국 재현>이라는 제목의 포스트닥터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학술 연구와 동시에 리서치 파트너와 드라마터그로 무용 현장에서의 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다. ‘춤의 감수성과 문학적 상상력은 서로 맞닿아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춤을 닮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손옥주_공연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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