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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1.25 조회 9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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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 사람의 무용수/안무가가 탄생하기까지

지금 여기의 무용 교육 ;

글, 정리_조형빈

일시: 2018년 1월 18일 금요일 오후 9시-12시
장소: 서울무용센터 내 커뮤니티룸
참석: 모더레이터 홍혜전, 유재미, 조현상, 김남건, 유회웅



줌인 조형빈 관련 사진

왼쪽부터 유재미, 홍혜전, 조현상, 김남건, 유회웅 ⓒ문경록


한국의 무용 교육은 특수한 지형 속에 위치해 있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로 구분되는 장르의 구분이 그러하고, ‘입시’라는 한국적 교육 시스템 안에서 이것이 예술 교육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 또한 독특하다. 한국의 예술계와 무용계는 제도권 교육을 통해 이미 숱한 무용수/안무가들을 배출해 왔고, 그 과정을 몸소 겪어내며 성장해 온 세대는 이제 예술계 여러 곳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무용 교육’은 어디쯤 와 있을까? 세대가 바뀌면서 흐름에 따라 무용 교육은 조금씩 변해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변하지 않은 부분들도 존재한다. 무용계 전반, 혹은 예술계 이곳저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지금 여기, 이 땅의 무용 교육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이들이 직접 경험해왔던 무용 교육의 모습을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의 무용 교육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다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홍혜전 : 안녕하세요. 오늘은 ‘무용 교육’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볼 텐데요. 먼저 간단하게 자기를 소개하는 섹션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지금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저부터 시작할게요. 저는 현대무용을 전공한 안무가로, 안무 메소드를 움직임에서부터 텍스트, 교육, 기획에 이르기까지 안무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줌인 조형빈 관련 사진

홍혜전 ⓒ문경록


유재미 : 유재미라고 합니다. 저도 현대무용을 전공하였고, 제도권 교육 안에서 예고를 나오고 안무를 주된 관심사로 두고 대학에 진학했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안무에 대해서 감도 없고 그게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몰랐지만, 제가 뭔가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입학을 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제가 계속 해왔던 안무 작업의 방법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몸과 움직임의 확장이라는 부분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서 작업을 시도해 보는 중입니다.

유회웅 : 저는 외모와는 다르게 발레를 전공했고요. (웃음) 고등학교 때 예고로 전학을 와서 대학을 거쳐 국립발레단에서 활동을 하다가, 이후에는 뮤지컬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안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좀 독특하게 다들 클래식 발레를 할 때 창작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작품을 멋있게 짜는 데에 집중을 하다가, 경험이 좀 많아지니까 사회적인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대중음악 가수들의 안무나 오페라 안무 등을 다양하게 하고 있는데,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컨템포러리 발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유롭고 재밌는, 새로운 작업들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김남건 : 저는 연극을 하고 있고요. 원래 전공은 한국무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굽은 등을 펴기 위해 한국무용을 시작해서 대학에까지 진학을 했는데, 한국무용의 프로그램에 만족을 못했던 것 같아요. 더 배우고, 뻗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중퇴를 하고 드라마에 대한 공부를 좀 해 보자는 생각으로 연출과를 다시 진학해서 졸업했습니다. 연출 작업도 즐거운 일이었는데, 하고 싶은 말을 찾는 게 어려웠어요. 그런 딜레마 속에 있다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연기를 해 보자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정쩡한 경계에 계속 있는 것이 싫어서 춤은 멈추고, 연기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조현상 : 저는 다크써클즈 컨템포러리 댄스라는 단체명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제가 고민을 하는 것이, 우리 팀의 장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인데요. 저는 현대무용 전공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저희가 발레 작업을 한다고 알고 계세요.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컨템포러리 발레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나라를 조금만 벗어나도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이런 구분들이 무의미해 지거든요. 그런 작업들을 하고 있는 팀입니다.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


홍혜전 : 다들 현재 작업하고 계신 분야는 다양하지만, 어쨌든 무용 교육이라는 제도권 교육을 통해 무용을 전공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네요. 어떻게 춤을 시작했는지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요?

유회웅 : 저는 원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예고로 전학을 했어요. 원래 브레이크 댄스를 췄는데 이러다가는 대학을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용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친구의 딸이 무용을 했는데, 무용을 추천해 주셨죠. 사실 추천을 받고 처음 무용 연습실에 갔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들 레오타드를 입고 있는데, 저도 그걸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충격이었던 거죠. 나중에 선생님께서 남자들이 출연하는 <해적> 작품의 비디오를 보여주셨는데, 거기에 나온 남자 무용수의 역동적인 모습과 의상 때문에 무용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전 쪽에는 워낙 남자 무용수들이 없어서, 제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많이 배려를 해 주셨어요. 대부분 남자들은 다 비슷한 과정으로 무용을 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있을 때는 신체적인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그래서 현대무용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다행히 교수님이 저를 잡아주셔서 발레 쪽에 계속 남아있었고, 덕분에 창작의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줌인 조형빈 관련 사진

유회웅 ⓒ문경록


조현상 : 저는 원래 중학교 때 태권도를 했었어요. 체육 고등학교를 준비하다가 사정이 있어서 태권도를 그만두고, 몸 쓰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무용을 추천받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 무용학원에 끌려갔을 때, 레오타드, 타이즈, 서포트를 보고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참 사춘기였던 중학생이 뒷부분이 줄로만 되어있는 속옷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어요. 처음에는 저도 흥미를 못 느끼다가, 선생님이 보여주신 공연을 보고 남자 무용수들도 무대 위에서 멋지게 활약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걸 보고 현대무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홍혜전 : 왜 현대무용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 공연을 보고?

조현상 : 사실은 무용 장르의 구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무용학원을 가게 되었는데, 저를 처음 맡아주신 선생님이 현대무용을 전공하셨어요. 무용을 전공하던 사촌누나가 소개시켜준 선생님이었는데요. 예고를 준비해야 하니까 발레도 하고 한국무용도 다 하기는 했는데, 그렇게 흥미가 가지는 않았어요. 우리 때는 또 남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잖아요. 대학 때도 별 생각없이 현대무용을 전공하다가, 졸업하고 나서 무용단의 무용수로 활동을 하게 되면서 발레 쪽으로도 생각을 많이 해 보게 된 것 같습니다.

홍혜전 : 김남건씨는 굽은 등을 펴기 위해 무용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다른 장르를 할 수도 있었는데 왜 한국무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김남건 : 저는 처음에 자세교정을 이유로 집안에서 보내주셨어요. 무용학원이 있는데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을 모두 배웠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 전통 음악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무용 자체는 집에서 보내주셨지만 음악이 좋아서 한국무용을 선택하게 됐어요.

홍혜전 : 유재미씨는 어떻게 무용을 시작하셨나요?

유재미 : 저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냥 춤이 좋았어요. 중학교 때 체육선생님이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본인이 무용반을 겸하고 계셨어요. 그 선생님께서 저에게서 가능성을 보셨나 봐요. 그래서 그 분이 알아봐 주신 무용학원을 가게 되면서 예고를 준비하고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집에서도 예술에 대해서 모두 문외한이셨고, 그냥 춤에 대한 정보가 딱히 없이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유 없이 끌린 기분으로 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홍혜전 : 저도 그냥 무용이 좋아서 시작했어요. 다섯 살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윤복희씨가 했던 피터팬 공연을 보고 펑펑 울었어요. 그때부터 우리 집에 매일 친구들을 불러놓고, 거실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엄마 스카프와 하이힐을 신고 춤을 췄었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UBC의 지젤을 보게 되었는데 또 한 번 펑펑 울고, 그 때 무용을 하겠다고 결심했죠. 사실 어머니가 농구선수셨어요. 무용도 운동이라는 생각으로 반대가 굉장히 심하셨는데, 긴 투쟁 끝에 무용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저의 무용 활동은 현재, 생애 마지막 공연을 보는 사람과 생애 처음 공연을 보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게 나의 숙제라고 생각하면서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의 콩쿨 문화와 입시 교육


홍혜전 : 콩쿨에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콩쿨 참가 빈도가 높은 나라죠? 외국도 우리나라만큼은 아닌데 콩쿨에 열성을 가지는 친구들이 있기는 하죠. 우리에게 콩쿨은 어떤 의미일까요?

유회웅 : 요즘 군 면제가 없어진 이후로 콩쿨의 존재감이 많이 떨어졌죠. 남자들한테는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군 면제가 있었을 때에는 남자들이 정말 목숨 걸고 했었거든요. 외국 콩쿨에 나가보면, 한국 친구들이 제일 열심히 해요. 외국 친구들은 즐기는 분위기라서 끝나고 들어오면 수고했어, 이렇게 인사도 건네고 하는데 우리는 실수하고 나오면 분위기가 굉장히 험악하죠. 개인적으로는 콩쿨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던 좌절로 다가옵니다. 콩쿨을 한 번 나가서 인대 세 개가 한꺼번에 나갔던 기억 때문에 콩쿨은 저에게는 다시 떠올리기 힘든 기억입니다. 제가 춤을 정말 즐기는 스타일인데, 콩쿨은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았네요.

김남건 : 콩쿨 문화가 자리만 잘 잡으면 정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쇼팽 콩쿨의 경우 정말 아름답잖아요. 기량의 최 정점에 있을 때, 마치 콜로세움에 들어간 투사들처럼 서로의 힘을 겨뤄보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군 면제 혜택 같은 것들이 콩쿨이 갖는 좋은 부분들을 흐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군대 문제는 비단 무용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전체가 가지고 있는 뿌리깊은 문제가 예술 안으로 흘러들어온 것이기도 하니까요. 지금 젊은 세대들이 더 즐겁게 콩쿨을 즐길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서 기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줌인 조형빈 관련 사진

김남건 ⓒ문경록


조현상 : 저는 신검을 받고 바로 공익판정을 받게 되어서, 콩쿨을 나갈 이유가 특별히 없었어요. 당시에는 무용도 열심히 안 했던 시기라서, 콩쿨을 나가야겠다고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예고 시절에는 대학 콩쿨은 다 나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희가 사전에 받았던 주제들 중에 콩쿨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서 포함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콩쿨에는 보상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고 때는 대학 콩쿨을 통해 입시의 발판이 다져지고, 동아콩쿨이나 신인콩쿨에서 남자는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고 여자는 무용단에 들어가기 더 쉬워지는 보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유회웅 : 그래서 즐길 수 없는 것 같아요. 발레하는 친구들의 경우 해외 콩쿨에서 수상을 하게 되면 자신이 꿈꾸던 해외 컴퍼니에 캐스팅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즐기기보다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와 다르게 현대무용을 하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직업 무용단이 발레단에 비해 적다보니, 콩쿨 수상을 하게 되면 입시작품의 컨택이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의 위치로 자리매김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조현상 : 그래서 대학과 많이 연결이 되어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문화가 대학을 꼭 가야만 하는 분위기가 퍼져있고, 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대학을 꼭 가야하니까 그걸 위해서 입시를 좋은 선생님에게 받으려고 하죠. 그리고 또 그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콩쿨을 나가고.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분위기가 이런 콩쿨 문화를 만들어낸 것 같아요.

김남건 : 아까 제 얘기에 조금 덧붙여 보자면, 우리의 콩쿨 문화는 우리 사회 전반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어요. 수능을 위해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고액 과외를 받으면서 성적을 올리는 입시 교육의 문제와 동일한 거죠. 저는 사실 예술 교육, 무용 교육은 아까 말씀하셨던 어린 시절에 엄마의 스카프를 두르고 힐을 신고 마음껏 춤을 추고 싶었던 그 마음을 지켜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춤을 추는 인간의 에로스잖아요. 춤을 추고 싶다는 바로 그 충동, 이걸 지켜주는 상태에서 교육이 이어져 나가서 한 인간이 오랫동안 춤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해야 해요. 그런데 예술중학교 같은 곳을 가 보면, 이미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로 나뉘어져 있는 전문교육이라는 잣대가 그걸 불가능하게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춤도 있고, 저런 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춤을 추는 즐거움이 유지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우리가 이 땅의 입시교육을 전부 바꿔버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린 친구들에게는 좀 더 다양한 장르, 다양한 문화의 춤을 가르쳐 주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 교육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유재미 : 고등학교 때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으면서, 춤이 기쁨이라고 할까 무언가 배움을 얻었을 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계속 없었던 것 같아요. 압박 속에서,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그런 상태에 계속 내몰려 있으니까 몸은 확장이 되는데 감정은 점점 닫혀만 가는 거죠. 제가 졸업 후 작업을 해 오면서 그것을 깨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표현하는 자유로움이 춤을 처음 배웠을 때부터 함께 장려되고 격려받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렸을 적 춤을 배우고 알아가던 그 경험이 기뻤더라면, 내가 춤을 훨씬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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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미 ⓒ문경록


유회웅 : 사실 클래식 발레는 조금 다른 것도 같아요. 전 앞서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우리에게 몸에 대한 자유로움이 있었나?’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 부분에서는 전혀 그런 것들이 없었어요. 물론 프로 무용수가 된 이후에는 많이 자유로워지지만, 학생 때는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거든요. 발레는 정확한 포지션과 섬세한 테크닉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예술이다 보니 수없이 많은 반복 트레이닝과 정해진 규칙 속에 있어야 합니다.

김남건 : 사람에 따라, 성향 상 100점 맞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러면 다른 춤을 배우다가도, 나는 발레가 잘 맞는 것 같아, 라고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좀 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대학 교육까지 받고 난 이후에 자기가 다시 자기 자신을 재교육하지 않는 이상 더 나은 예술가가 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을 두 번 해야 하는 바보같은 상황인거죠.



몸부림, 학교 교육 안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


홍혜전 :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러분 모두 문제점이 많은 교육을 받아왔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창의성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학교 교육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얻기 위해서 했던 노력들이 있다면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좀 듣고 싶네요.

김남건 : 환멸과 혐오를 느끼고, 기존에 있었던 좋지 않았던 경험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도했던 몸부림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저는 무용을 그만뒀죠. 어쩌면 춤을 추지 않는 것도 하나의 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테마로 얼마 전에 공연을 하기도 했고요. 저는 사실 한국무용, 발레, 연극, 영화, 이런 경계들이 허물어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통섭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죠. 그런데 이게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통섭 교육이 잘 되어있으면 무용을 하다가도 저기 가서 연극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다양한 장르들도 같이 해볼 수 있어요. 단순히 다른 학과의 수업을 듣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무용에도 관심이 있고 연극에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들을 일종의 연구소처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필요합니다. 계속 경계만 부여잡고 있으면 결국 이 바닥에 있는 우리에게도 독이 될 거에요.

유재미 : 두 번 교육한다는 느낌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이제 와서 창작 작업을 하려고 보니까, 결여되고 궁핍한 부분들이 많이 느껴집니다. 이론적으로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이 학교 안에서 병행이 되면 참 좋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사회학, 철학 같은 것들로 시작해서, 다른 예술 분야들까지 아우르는 예술사 전반에 대한 이론, 동시대 작품들의 이야기까지 다 같이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나중에 자기 작업을 할 때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신체적인 단련을 넘어서요.

김남건 : 인문학 교육을 대학에서 많이 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어렵기도 한 것이, 어렸을 때부터 춤을 추면 몸을 쓰는 방법 자체를 끊임없이 트레이닝 하기를 강요받는데 정치, 사회, 경제 같은 것들을 같이 공부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유재미 : 그런데 움직임이랑 같이 공부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게 너무 아쉽죠. 학교 교육이 다 끝난 후, 이제 와서 매칭 시키려다보니 어렵고, 아쉽게 느껴집니다.

김남건 : 또 그런 필요성들을 분명히 느끼고 있고, 그것들을 알았을 때 더 좋은 무용수나 더 좋은 안무가가 만들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리큘럼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게 안타깝죠.

홍혜전 : 여러분이 받아왔던 교육 과정에서, 인상 깊게 남았던 선생님이 있었을까요? 무용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 잡아준 선생님이나, 혹은 무용을 하고 싶은 마음을 꺾어버렸던 선생님, 어떤 의미에서든 상관없이요.

유회웅 : 저는 사실 대학 입학 후 행복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남들보다 못한 신체적 단점 때문에 좌절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때는 참 많이 억울하고 힘들었죠. 정말 누구보다 춤을 즐기면서 열심히 췄지만, 체격조건이 좋은 친구들에게 밀리면서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많이 지치고 방황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러던 와중에 창작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이 탈출구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관심을 끌기 위한 하나의 기회였죠. 바로 그런 기회와 장을 열어주신 교수님 생각이 납니다. 처음엔 그저 모방하는 데에 그쳤던 것들이 이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제 자신을 이야기하는 수단이 되었어요. 이런 것들을 세상과 공유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지금은 행복합니다.

유재미 : 최근에 자주 찾아뵙는 선생님이 한 분 계세요. 제가 유일하게 찾아가서 얘기를 듣고 싶었던 선생님이에요. 학교 다닐 때 만났던 선생님들은 제가 선택할 수 없는 분들이었잖아요. 그런데 요즘 뵙는 이 선생님은 대화를 통해서 계속 예술가로서 작업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부분이 있어요.

조현상 : 예전에 제가 무용을 열심히 하지 않았을 때, 발레에 흥미를 갖게 해 주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현대무용을 전공한, 학교 특강으로 오신 선생님이셨는데 그 분과 공연 작품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버릇처럼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얘들아, 재밌게 해. 즐겁게 하자. 왜 이렇게 얼어있어?’ 그 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공연 연습을 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더 많이 차고, 더 빨리 구르고, 더 높이 뛰는 것만 생각해야 했죠. 그런데 이 선생님은 왜 이렇게 얼어있냐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공연 연습 때는 선생님과 학생이 아니라, 진짜 같이 연습하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공연할 때 무용수들에게 카드를 써서 주는데, ‘즐거운 무용시간!’이라고 적어서 줍니다. 조금 유치하기도 하지만, 춤을 추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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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상 ⓒ문경록


김남건 : 저는 일단 권위에 대해 저항감이 있어서, 선생님이 저에게 권위를 내비칠 때 권위에 걸맞은 것을 당신이 갖고 있는지를 항상 셈해요. 고등학교 때 저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계신데, 그때 선생님 나이가 20대 후반, 저랑 열한 살 차이 밖에 안 났었죠. 그 분은 사랑으로 저를 많이 가르쳐주셨던 것 같아요. 돈을 많이 드리고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을 다해서 가르쳐 주셨고, 주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저는 그걸 운이 되게 좋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선생님한테 배웠을 때 선생님도 결코 권위적이지 않으셨고, 저도 배움에 대해서 열렬했거든요. 아침 일찍도 수업을 해 주시고, 끝나고도 수업을 해 주시고, 계속 뭔가 이렇게 가르치면 얘가 좀 더 잘 움직일 수 있겠다는 것을 보셨나 봐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르치신 당신이 즐거움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그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항상 하신 말씀이 ‘맛있게, 맛있게 춰라’라는 것이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맛과 춤이 감각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들


홍혜전 :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작업을 하면서, 아니면 배우로 넘어가면서, 어떤 교육이나 훈련 방법이 나를 변화하게 했는지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선생님에 대한 기억과 연결되는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 경우는 제롬 벨의 공연이었어요. 비엔나 페스티벌에 가서 직접 봤는데, 단순히 예쁘게 움직이는 것만 무용 공연이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일상적인 움직임들이 무대 위에서 공연화되는 것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죠. 저에게 있어 안무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게 된 계기였어요.

김남건 : 우리가 지금까지 받았던 무용 교육을 긍정적으로 끌고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떠올리려고 하니까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좋았던 수업이 하나 기억나는데요. 안무법 수업이었는데, 그 때 배웠던 동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동작을 쭉 제시하고, 파트별로 구분지은 다음에 그것들을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질감, 속도로 변화시키는 방식을 통해 이성적으로 안무 전체를 요리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안무법 수업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편집기술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시나리오를 생각할 때 씬을 분할한다든지, 연기를 할 때 내가 가진 수많은 단위들을 변형시키는 데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조현상 : 저는 대학교 때는 창작 수업이 정말 힘들었어요. 동그라미를 보여주고 안무를 해 봐, 네모를 보여주면서 안무를 해 봐, 정말 잘 모르겠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런데 창작과에서 커리큘럼을 새롭게 접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가질 수 있었어요. 사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작업에 그 커리큘럼에서 배웠던 것들을 적용시키고 있지는 않아요. 저는 즉흥작업 보다는 고정된 움직임에서 조금씩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까. 또 요즘에는 일반인들이 보았을 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계기가 있었어요. 예술의전당에서 했던 가을 축제가 있었는데, 특별히 공연으로 이루어진 축제가 아니고 분수대 있는 곳에서 천막 같은 것을 치고 하는 가족 페스티벌이었어요. 거기에 야외 공연을 하나 맡게 되어서 별 생각 없이 재미있는 작품을 했는데, 보고 계시는 관객분들, 가족 단위로 오신 일반분들이 다 웃고 계시더라고요. 이분들이 이걸 다 이해하고 보시는 건 아닐 텐데, 굉장히 즐겁게 보시는 게 힘이 나서 공연을 예정보다 20분이나 더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무용 공연을 접하지 않으신 분들이 무용 공연을 처음 봤을 때 재밌게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는 제 방향성이 정해진 것 같아요.

유재미 : 안무법이라는 게 실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잖아요. 연출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고. 제가 교육 과정에서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해 보면, 안무 커리큘럼 안의 안무원리, 공연예술현장체험 같은 것들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다양한 안무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분석하고, 이야기하면서 자기 자신의 고유한 시각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때 봤던 희귀한 영상들이 저로 하여금 질문거리들을 계속 생산해 낼 수 있게 하고 제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그런 것들이 커리큘럼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실제로 그 과정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홍혜전 : 안무가로서 학교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김남건 : 십 년 전, 이십 대 중반에 지방 학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특강을 해 달라고 연락이 왔었어요. 콩쿨에서 상을 받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왔는데, 들어온 특강들의 레슨비를 다 계산해 보니까 엄청난 액수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다 거절을 했어요. 그걸 다 받으면 독이 될 것 같았거든요. 또 저는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춤을 잘 추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곳에서 특강 연락이 와서, 당연히 거절을 했어요. 나는 이쪽에는 소질이 없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대학에 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쪽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정말 내 마음대로 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포항에 내려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때 당시 굉장히 멋지게 보았던 작품이 미하일 마르마리노스라는 연출가의 <애국가>라는 작품이었어요. 배우들이 ‘애국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이었는데 이게 교육적으로 굉장히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빌려 오라고 하고, 그룹을 나누고 거리에 나가서 춤이 무엇인지, 기억에 남는 춤이 있는지에 관련된 질문을 인터뷰하게 시켰어요. 아이들도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대중들은 춤을 췄던 경험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가능성을 접할 기회가 없는 것뿐이죠. 그런 춤의 가능성들에 대해서 교육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재미 : 그런 것들이 많이 벌어지고, 기획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2008년에 유럽에서 열리는 컨택 임프로비제이션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프라이부르크를 갔었거든요.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 큰 체육관에서 몇백 명이 다 같이 잠을 자고 방에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였어요. 그 사람들이 모두 한 몸이 되는 건데, 거기에 가족들이 왔더라고요. 갓난아기까지 함께 말이죠. 저렇게 자연스럽게 놀이 중의 하나로 춤이 들어가 있고, 어렸을 때부터 저 자유로움, 춤의 맛을 느끼면서 자라면 춤을 전공하고 이런 차원을 떠나서 삶 자체가 굉장히 풍요로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회웅 : 그렇게 되면 아이들의 감각도 발달하고 좋은 영향이 많을 거라고 봐요. 그런데 제가 지금 배우고 있는 유아무용 쪽을 보면,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방식을 미디어가 절대적으로 차지하고 있거든요. 영상이 나오면 아이들이 따라하고, 터치를 통해 다음 영상으로 전환하면 또 그걸 따라하는 형태죠. 사실 이처럼 단순히 영상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혜전 : 선생님이 된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싶으세요?

유재미 : 저는 몸을 움직일 때 신체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움직여지는지 구조적인 원리를 자세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들이 움직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어떤 상태인지, 어떤 기분인지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회웅 : 제가 항상 수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즐기라’는 말입니다. 즐기라는 말은 곧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이죠. 사실 발레는 정확한 포지션 안에서 움직이는 예술이라 실수를 하게 되면 다른 무용에 비해서 티가 많이 나거든요. 수많은 연습을 통해서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그럴 때 무대 위에서는 기계적인 느낌보다 자신감을 통한 감정 전달이 관객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신체적 조건이 불리한 친구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기는 사람은 못 따라간다고들 하잖아요.

김남건 : 아까 학원 아이들 이야기도 했지만, 기존에 있었던 좋지 않은 교육들을 수정하고 보완해 나가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제가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것을 확장시켰다면 지금쯤 무용교육가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경험은 운이 좋았던 특이한 사례였다고 생각해요.

유재미 : 그런데 그런 교육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모두에게 있기는 한 것 같아요.

김남건 : 아마 선한 의지에서 오는 감각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이 좀 더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입시는 내가 생각하는 잘 됨과 거리가 있다는 감각에서부터 오는 거니까.

조현상 : 저는 전공하는 분들 수업을 하나도 안 하고, 취미로 하는 분들 수업만 계속 해 오고 있어요. 그분들은 기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이죠. 그런데 그런 분들도 수업을 하다보면 점차 욕심이 생겨서, 어느 순간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으면 재미를 못 느끼는 지경에 이르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말씀드리곤 합니다. 즐거워지기 위해서 취미생활로 오신 건데,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고.



인간에게 무용 교육은 필요한가


홍혜전 :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조금 황당한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인간에게는 무용 교육이 필요할까요?

김남건 : 얼마 전에 제가 만든 공연의 한 꼭지인데요. 한국 춤을 출 때 오른쪽, 왼쪽, 돌면, 감기고, 올라가면, 내려가고, 땅, 하늘, 나, 너, 가다 힘들면 쉬었다 가고, 어르고, 밀면 당기고. 이 춤이 갖고 있는 것이 굉장히 클래식한 것들이에요. 저는 이것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거든요. 억눌리면 왜 비뚤어지는지, 선생님은 왜 있고 나는 왜 학생인지, 이런 고전적인 프레임을 사유할 수 있었어요. 이것을 교육으로 잘 승화시킨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초석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책을 통해서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몸을 통해서 이해하면 더 명료하게,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재미 : 춤이라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은 굉장히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체라는 건 그 안에서 지위고하가 없잖아요. 흔히 수직적으로 생각해서 머리는 좋은 것이고 발은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발도 굉장히 중요하고 모든 신체가 정확하게 민주적이에요.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 사회성, 모두 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죠.

홍혜전 : 이 무한한 가능성과 긍정적인 요소들을 많이 알릴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학교 교육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것 같고요.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계시지만,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남건 : 사실 영어나 수학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건 어렵잖아요. 꼭 무용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예술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다른 학문과는 다르게 표현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회웅 : 제가 지금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면서 정말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야기 들으면서 얻는 게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발레라는 장르 자체가 보이는 것에 좀 더 집중을 하는 특성이 있어서, 그런 점에서 제가 배우고 가르쳤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도, 단지 아이들을 예쁘게 입히고 단순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감각을 살리고 에너지를 느끼는 교육이 이루어져야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교육에 있어서 첫 시발점이 되는 것이니까,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이 조금 더 감각적으로 배울 수 있게, 조금 더 춤을 출 수 있게 하는 무용 교육적 방법들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김남건 김남건은 무용가, 배우, 연출 등 경계없는 예술활동을 추구하는 아티스트이다. 현재 백석광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며 극단 아어의 단원이다.

유재미 현재 열혈예술청년단의 대표이며 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몸과 움직임의 가능성 확장' 을 주제로 2012년부터 SYNCH 시리즈를 창작해 오고 있다. 주요작으로 “SYNCH02 ? 생포된 풍경"(2013), "SYNCH03 ? 원자의 정원"(2014), "SYNCH04 ? BODY GRADATION"(2016), "SYNCH05 ? TRACKING"(2017) 등이 있다

유회웅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 중이며 발레, 현대무용, 뮤지컬, 오페라, K팝, CF 등 장르불문 안무가로 재밌게 활동 중이다.

조현상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10년 부터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를 창단하여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대무용과 컨템포러리 발레의 장르를 넘나들며 안무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안무작은 “댄스 위드 쿵짝”(2012), “몸의 협주곡”(2013) 그리고 “평범한 남자들”(2014) 등이 있다.

홍혜전 행복하고 창의적인 삶을 위한 무용예술의 적용과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하여 다양한 세대를 대상으로 한 독창적인 프로그램 개발 및 커뮤니티 댄스 매개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치매, 뇌졸중 환자 및 발달장애인을 위한 예술교육에도 매진하고 있다.

조형빈 대학에서 사회학과 문화학을 전공하고, 무용에 관한 문화연구를 해오고 있다.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서 기획 업무를 맡았고, 무용월간지 몸에서 기자와 칼럼니스트로 글을 실었다. 현재는 창작과 비평에 대한 글을 쓰는 중이다.



글, 정리_조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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