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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11.30 조회 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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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속에서 몸과 몸 사이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타인의 몸을 안내하는 사람_ 움직임 디자이너

남인우_연출가,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연극과 몸 그리고 이미지


연극이라고 하면 보통 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서사적 구조를 많이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연극은 문학과는 달리, 그런 서사를 움직이는 배우들의 말하기를 포함한 다양한 행동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특히 현대 연극은 문학의 구조를 탈피하고 물성 자체, 즉 몸에 더 많이 의지하거나 몸과 몸을 통한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공연은 서사에 기반하고 있다 하더라도 종종 대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로부터 서사성을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점차 타인의 몸을 안내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바로 안무, 혹은 움직임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몸의 안내자, 안무가


전통적 의미에서 안무자들은 주로 연극의 어떤 장면에서 안무적 움직임이 필요한 부분에 투입되어 배우들의 안무적 움직임 혹은 구체화된 움직임을 조직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말했듯 오늘날은 다양한 방식의 안무가와 연출가 혹은 배우간의 협업관계가 생겨나고 있다. 필자의 경우,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안무가, 즉 움직임 디자이너를 만나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안무가와 협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 5명 정도의 개성 넘치고 열정 가득한 안무가 겸 무용수들과의 작업이 있었다. 작품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안무자들에게 공동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 이다. 첫째, 장면 전체의 움직임 크게는 행동선 등의 리듬감을 함께 살펴줄 것. 둘째, 배우들의 자유롭고 명확한 연기를 위해 기본 훈련을 가이드 해줄 것. 셋째, 장면의 이미지를 함께 탐구해줄 것이다.
예를 들어 <소년이 그랬다>1) 국립극단 어린이 청소년극 연구소의 첫 번째 작품으로 청소년 관객들의 특성상 감각적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했으며, 배우들이 1인 2역을 맡아서 연기해야했으므로 각 캐릭터를 연기할 때 몸의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도 필요했다. 이런 모든 부분을 안무가와 상의하고 기초적인 훈련을 같이 설계했다. 안무가는 외형적인 모습을 정확하게 만들어내기 위해서 배우의 몸을 어떻게 안내해야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안무가가 만든 외형을 연출가인 내가 읽어내고 배우들에게 그 외형으로 가기 위한 감정 상태 혹은 서사적 이유를 안내해주기도 했다. 또한 상징적인 장면을 위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안무가와 상의하였는데 예를 들어, 두 배우가 검찰에게 쫒기면서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는 아주 작은 사방 1미터정도의 정사각형 공간 안에서 움직이면서 독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안무가에게 아주 작은 공간에서 배우들이 움직이면서 불안감을 드러낼 수 있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안무가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걷기, 멈추기, 앉기, 시선의 처리 그리고 대사의 빠르기 등을 함께 고려하여 언어와 행동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장면 안에서 안무가 함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안무가가 배우들과 기초적인 훈련을 시작하고 그 훈련을 통해서 거꾸로 장면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러브>, <오디세우스_길을 찾는자>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먼저 <러브>2)의 경우에는 거리로 내 몰린 청년· 청소년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특성상 성적인 장면, 환각장면 등이 많았다. 연출가인 필자는 이러한 장면의 대사들이나 행동들을 축약시키고 추상적인 움직임으로 전환하기를 원했고, 안무가는 이를 위해서 접촉즉흥 훈련을 오랜 시간 배우들과 진행했다. 이런 기본적인 훈련을 통해 안무가가 계획적으로 움직임을 배열하지 않아도 배우들 스스로 그 장면의 움직임들을 찾아갈 수 있었고,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다른 장면에서도 움직임을 제안하게 되었다. <오디세우스_길을 찾는자>3) 또한 비슷한 유형이었다. 청소년들과의 작업이라는 창작과정의 특성상 전문배우들과는 다른 방식의 움직임 접근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청소년의 특징을 잘 아는 안무가이며 청소년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고려하여 안무자를 섭외하였다. 같이 작업한 안무가는 청소년의 몸의 리듬, 놀이성, 그리고 다양한 몸의 억압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하는 지를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장면의 구체적인 안무를 계획하거나 조직하지 않았다. 실제 공연에 있어서도 그렇다. 움직임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배우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수업들이 많았고 그것을 토대로 배우들이 장면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이런 작업은 배우들이 스스로 창작자의 입장을 더 갖게 해주어 공동의 협업작업이 더욱 활발해지며 적극적인 팀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연극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중 80%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공간, 그 공간의 끊임없는 변형 즉 행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흔히 연극은 대사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은 20%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말 이전에 작은 몸짓, 행동선, 공간속의 배치 등이 더 많은 언어들을 발생시킨다. 그러니 연출가의 영역과 안무가의 영역은 같은 곳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연출가들은 배우들의 몸을 어떻게 안내해야하는지 그 구체화된 언어를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안무가들은 몸을 직접 움직여보고 타인의 몸을 안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것이 폭력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안내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무용수들도 그렇듯 배우들도 섬세한 감정들을 몸을 통해 연기하는 사람들로, 그들의 몸을 움직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워크숍을 통한 안무가의 활동이 배우들에게도 연출가에도 더 많은 영감을 제공하는 것 같다.



함께 작업을 만들어 가기 위하여


물론, 좋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작업이 좋기 위해서 나도 안무가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안무가도 연극의 언어, 희곡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희곡을 같이 읽어줄 수 있는 안무가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하면 희곡 속에 숨겨진 행동과 이미지들을 같이 찾아내고 희곡의 흐름을 같이 설계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안무가들은 연극 연출가와 만나 가장 먼저, 전체적이고 미학적인 콘셉트와 전반적인 리허설 진행과정을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행동선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는지, 이런 진행과정이 녹아있는 마스터 플렌4)을 읽으며 안무가가 어느 시기에 어떤 식으로 참여해야하는지를 읽어낸다. 그리고 그 시기엔 다른 영역들의 작업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작회의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한다. 일부 안무가들은 스텝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제작 회의에는 각 영역의 작가들이 거친 아이디어를 서로 꺼내 톤을 맞추거나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이때 안무가들도 시청각적인 리듬을 다른 영역(조명, 무대, 대사, 음악)들을 같이 상상하고 그 안에서 몸이 가지는 다양한 이미지를 같이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연극은 다른 장르들이 합을 이루어 공연을 만들어낸다. 어떤 장면은 조명이나 음악이 무대 공간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울 수 있고 어떤 장면은 다른 장치들로 이미지의 과잉이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안무가도 대사, 조명, 무대 등의 다양한 무대 언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연출가도 안무가의 탁월한 능력 혹은 차원이 다른 능력에 대한 상호간의 이해가 없다면 연출과 안무가는 주종적인 관계가 되기 쉽다. 처음에는 나도 안무가의 언어를(실제 사용하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종종 이렇게 말했다. ‘이 장면에서 이런 느낌을 만들어주세요’, ‘여기 배우 움직임 어떻게 좀 해주세요’, ‘배우 몸 좀 고쳐주세요’등 협업 작가로 생각하기 보다는 기능적 결합만을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처음 희곡을 읽을 때부터 배우들의 몸 형태, 목소리 특징, 정서적 특징 등을 안무가와 함께 의논하고 다양한 몸의 톤과 정서적 형태를 어떤 형식의 합을 이뤄야 할지 함께 토론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가장 중요한 창작의 동료로 만나고, 그런 만남이 더 많은 영감과 좋은 작업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말과 몸 사이의 공간에서 서로의 언어를 갖고 있는 연출가와 안무가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면서 특별하고 흥미로운 언어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1) 각색. 한현주/연출. 남인우 /움직임. 이윤정/ 2011년 국립극단 백성희 장민호 극장 초연/국립극단 제작
2) 작. 패트리샤 코넬리어스/ 번역. 마정화 / 움직임. 이윤정 2015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초연/ 극단 북새통 제작 기획
3) 원작.호메로스 / 각색·연출. 남인우/움직임 밝넝쿨 2016년 산울림 소극장 초연/LG아트센터기획/극단 북새통 제작
4) Master Pland 마스터 플랜 프로덕션 무대감독 혹은 연출부에서 작성하는 전체 일정표로 각각의 제작일정 기획일정, 디자인 시점등이 상세히 기재되어있다.




남인우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가믄장아기>, <사천가>, <억척가>, <소년이 그랬다> 등 어린이·청소년 연극부터 창작극, 번역극, 심지어 창극, 판소리공연 등으로 한국의 음악적 미학과 연극적 형식을 확장하며 작업하고 있다. 또한 미적체험 예술교육 활동을 활발히 실행 중이다. 또한 문학, 관현악, 현대무용, 시각미술, 전통예술 분야와의 접점에서 다양한 활동을 시도 중이며, 여러 예술가 철학자들과 <미적체험과 예술교육>, <예술이 교육이다_유럽에서 본 예술교육>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남인우_연출가,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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