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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8.31 조회 6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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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기획(자), 매니지먼트(저), 프로듀싱(서), (들)

글, 정리_ 곽아람(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모더레이터: 곽아람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좌담: 김서령 (이오공감 공동대표, 프로듀서), 박정수((주)컬처앤유 대표, 기획자), 전은지 (모던테이블 프로듀서)



줌인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곽아람 관련 사진

왼쪽부터 박정수, 김서령, 곽아람, 전은지 ⓒ박호상


무용기획자로서의 시작


곽아람: 무용기획의 범주에 많은 다양한 포지션들이 있습니다. 기획PD, 제작PD 등으로 세부화 되어 있는 프로듀서, 프로모터, 프리젠터, 매니저, 기타 등등. 오늘은 우리 무용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세 분, 기획자들을 모시고 <무용기획, 프로듀싱(서), 매니지먼트(저)>를 주제로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줌인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곽아람 관련 사진

곽아람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박호상


전은지: 모던테이블에서 올해로 4년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김재덕 안무가 외에 다른 안무가와 작업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모던테이블’이 ‘프로젝트’에서 ‘컴퍼니’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제가 합류했고, 그러다보니 단체를 꾸리는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직함은 ‘책임 프로듀서’인데 사실 저도 헷갈리는 게 프로듀서지만 어떤 때는 매니저, 어떤 때는 무대감독, 1대 다(多) 포지션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줌인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곽아람 관련 사진

전은지 (모던테이블 프로듀서) ⓒ박호상


박정수: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무용수로서 인천시립무용단에서 직업 무용수로써, 그리고 안무가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제 길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철밥통을 박차고 나와 ‘댄스팩토리’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프로듀싱’에 대한 개념, ‘프로듀서’ 타이틀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단순히 제가 좋아하는 무용으로 돈도 벌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게 좋은 공연을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컬처앤유(Culture & You)’라고 단체명을 바꾸고 6명의 직원을 월급을 주며 지금까지 5년간 활동 해왔습니다. 무용 공연보다는 공공기관, 문화부, 외교부 등이 주최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관련 이벤트와 행사 등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줌인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곽아람 관련 사진

박정수((주)컬처앤유 대표, 기획자) ⓒ박호상


김서령: 공연/문화예술분야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의 공동대표(공동대표: 이동민)를 맡고 있습니다. 최초의 민간 기획자 양성과정인 다음아카데미 2기로 1999년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곧바로 공연예술기획 이일공이라는 기획사에 취업이 되었고 주로 무용 기획을 전담했습니다. 운 좋게도 첫 직장이 신생기획사로, 저돌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을 하는 분위기여서 짧은 시간 동안 공연 기획의 다양한 일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故 이매방, 김매자, 국수호 선생님 등 원로 예술가들부터 중견/신진 독립안무가들의 개인공연, 다양한 형식과 대상의 기획공연, 극장 운영, 축제, 단체 매니지먼트, 행사 운영, 공연 유통 등을 경험했고 무용뿐만 아니라 연극, 뮤지컬, 악극, 음악, 문화행사 등 여러 분야에서 타이트하게 훈련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2003년 퇴사 후 2004년부터 이동민 대표와 함께 지금의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을 시작했는데 주로 공연 기획과 축제기획,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기획, 예술가 양성 프로그램 기획 등 전 방위적으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2014년에는 문화역서울284에서 공연/다원예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할 수 있었고, 2015년에는 국립국악원 풍류 사랑방 ’금요공감‘ 예술감독을 맡아 매주 금요일마다 국악과 타 장르 간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남산국악당에서 ‘남산 컨템포러리-전통, 길을 묻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총 6개의 작품의 기획, 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미술관, 극장, 축제 프로그래밍을 비롯하여 서울시청년예술단 무용분야 멘토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공연 기획자, 프로듀서, 프로그래머, 문화기획자, 예술감독, 상황마다 다른 역할을 하고 있고 활동하고 있는 장르도 무용, 전통, 거리예술, 다원예술 등 다양해서 스스로도 제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제 일 자체가 여러 경계에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서 역할 하고자 합니다.



줌인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곽아람 관련 사진

김서령 (이오공감 공동대표, 프로듀서) ⓒ박호상


곽아람: 저는 2017년 1월부터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안성수)의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무용단 바로 전에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꼬박 10년을 근무했습니다. 2002년, 연극 극단의 조연출, 기획자로 2년간 일하다가 2004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마케팅 단기 인력으로 무용계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대학로에서 일하기는 했으나 ‘기획’이 뭔지 몰랐고 주먹구구식으로 혼자서 일을 찾아 했던 터라 저에게는 ‘시댄스’가 제대로 된 첫 조직 경험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획팀과 국제교류팀, 두 개의 부서가 있었고 저는 기획팀에서 협찬업무 보조, 업체 제휴, 워크숍 운영, 인쇄물 제작, 홍보영상물 제작 등 주로 ‘홍보마케팅’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 현재 남산예술센터의 극장장으로 계신 우연 실장님과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김신아 팀장, 두 분이 시댄스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계셨고, 지금 보면 시댄스 축제 자체가 매우 큰 조직은 아니었지만, 일과 업무 분장이 체계적이고 전문화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연극과 뮤지컬계를 왔다 갔다 하다 2007년부터 시댄스에서 다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무용에 대한 애정이 강해서라기보다는 ‘축제’라는 포맷이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축제의 가장 중심이 되는 프로그래밍은 예술감독과 국제교류팀에서 담당을 했고, 시댄스의 기획팀은 홍보마케팅 업무가 주가 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기획팀은 회사 운영을 위한 수익사업을 반드시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상반기에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외교부에서 주최하는 문화행사를 도맡아서 했습니다. 아프리카문화축제, 아랍문화축제, 흑해문화축제 등등 (당시) 김신아 국장님이 3년간 이 행사들을 A부터 Z까지 통으로 맡겨주셨습니다. 예산 집행 및 정산, 공연팀 관리, 언론홍보, 마케팅, 전시 기획 및 운영, 축제 운영 등 3~4년간의 이러한 실무 경험이 저를 기획자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시댄스 내에서 부서를 국제교류팀으로 옮겼습니다. ‘국제교류팀 팀장’ 포지션이었고 물론 프로그래밍은 이종호 예술감독이 하시지만 축제의 뼈대를 만드는 일정, 레퍼토리, 공연료 협상, 워크숍 등 기타 프로그램 등등 축제의 어시스턴트 프로그래머의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예술감독을 대신하여 국제적인 무용마켓이나 공연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더불어 제가 국제교류팀으로 옮겼을 시점부터, (물론 그 이전부터였겠지만) 2010년, 2011년, 2012년 이 시기는 한국 무용계에서 국제교류가 크게 확장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전에도 시댄스에서는 유럽이나 중남미, 아시아 등등과 꾸준히 교류 사업들을 진행했으나 어느 이 시점부터는 (서울아트마켓 등을 통해 체계적인 교류와 지원이 가능해지면서) 횟수도 대상도 빠르게 증가했고, 저도 무용가들과 집중적이고 전략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주로 일했던 안무가 분들은 이인수, 김보라, 이재영, 안수영, 이경은, 안성수, 고블린파티, 제이제이브로, 김재승, 전미숙 등 이 분들이 제가 중점적으로 일을 했던 분입니다. 특정 안무가의 매니지먼트(국제교류)를 전담한 것은 아니고 해외 무대에 소개할 만한 콘텐츠라고 생각되는 작품들을 시댄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꾸준히 소개를 했습니다. 러시아한국현대무용특집, 아프리카한국무용특집,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렉페스티벌(2년 연속 한국 단체 소개), 독일탄츠메쎄 한국무용특집, 한국-포르투갈 안무교류 프로젝트, 프랑스 샤요국립극장 포커스 코리아 등을 비롯하여 제가 시댄스를 떠나기 전까지 1년에 평균 10회 이상의 크고 작은 국제교류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습니다. 해외 네트워크를 개발하고 저희 무용가들을 소개하고 해외 무용계와 교류하는 기회들이 많아지면서 보람과 재미를 많이 얻었습니다. 이 때 저의 역할은 프로모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 투어를 나가서는 투어매니저 역할을 했습니다. 2012년부터 2016년 4년간, 주로 비교적 젊은 무용가들과 세계 다양한 축제와 극장, 마켓 등을 상대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안무가들이 국제교류를 하기 위해서, 해외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그 틀을 만들고 실무적인 계약, 공연료 협상, 자료 준비, 사후 네트워크 관리 등의 기준과 형식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한명의 안무가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안무가들과 그들의 여러 작품들을 프로모션하고 세일즈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시장을 상대로 일을 하면서 저 역시 기획자로서, 프로모터로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안무가와 관객들을 이해하기, 이해시키기, 행복하게 만들기


곽아람: 시댄스에서 해외 파트너들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해지고, 교류 영역, 교류 밀도를 확장하고 싶다고, 또 해야 한다고 느꼈을 시점에서는 작품 자체에 대한, ‘무용 콘텐츠’에 대한 한계를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댄스는 프로덕션을 하는 축제가 아니었고 국내 안무가 분들과의 작품 제작에 관여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고요. 여러 안무가들과 동시에 일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마음이 맞고, 작품을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안무가들과 집중적으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프로덕션 자체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각자의 포지션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사실 우리는 무용기획자, 프로듀서, 프로모터, 매니저 등 구분을 하지만 실제로 업무 자체를 한 두 사람이 중첩해서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각자 프로듀서로서, 프로모터로서 그 역할과 기능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내 일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전은지: 아무래도 제가, 예술가와 가장 가까이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체의 브랜드 이미지와 정체성을 만드는 것, 단체 매니지먼트 자체도 저의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고민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술감독과의 소통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예술감독/안무가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첫 스탭이었습니다. 실례를 들어, 단체에 대한 설명, 공연에 대한 설명은 제가 직접 쓰는데 ‘모던테이블’만의 개성. 무엇이 모던테이블다운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글을 쓰기 위해 예술감독와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레퍼토리간의 연결성을 고민하고 공통된 뉘앙스와 각 작품마다의 적당한 변주를 찾아내고 그것을 활자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무용은 어쨌든 몸으로 보여주는 거잖아요. 스토리텔링, 캐릭터 이런 거 집어던지고 딱 움직임 특징 그 하나만을 포커스로 잡아서 작품 설명을 쓰자고 제안했고 움직임의 원초성을 강조하고 음악과 움직임 사이의 시너지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단체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것. 이런 맥락을 잡고 방향을 잡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또한, 모던테이블은 레퍼토리 무용단을 지향하기 때문에 신작이 계속 개발되어야 하고 만들어진 작품은 계속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야 했습니다. 적어도 2년에 한 작품의 신작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들 중 가장 제 역할을 컸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안산거리극축제에 지원해서 선정되고 이를 통해 <맨오브스틸>이 탄생한 것입니다. 저는 거리예술 공연으로서의 무용을 제대로 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나름 블루 오션이라는 생각에 우리 단체에도 거리극축제에 어울릴만한 작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안무가에게 제안했습니다. 김재덕 안무가도 공간맞춤형 공연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가 선정이 되고 해야 되는 상황이 되자 열의를 보여주셨고요. 보통 예술가들은 호불호가 명확하고 본인이 미처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굉장한 거부감이 있는데 막상 해보면 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잖아요. <맨오브스틸>은 결과적으로 기대 이상으로 작품이 잘 나와서 저희 무용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도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프로듀서로서도 큰 보람이 있었던 작업이었습니다. 또 해외 공연을 가면 단발성으로 끝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다음 프로젝트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 중에서 제가 해야 하는 일들이 다 정해지는 것 같아요. 현재 저희 단체는 11명의 무용수들이 있고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2013년 단체가 시작될 때부터 쭉 함께 해와 호흡이 잘 맞습니다. 레퍼토리 무용단으로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용수 훈련이 잘 되어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매우 행운이죠. 아직까지 어렵지만 월급제로 가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홍보 마케팅 면에서는 사실 좀 약합니다. 홍보마케팅은 결국 돈이 중요한 무기인데, 돈을 들이지 않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최근에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운영해봤습니다. ‘무용수들 몸풀이 영상’을 비롯해서 해외 공연, 지방 공연 영상을 송출해서 공개했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고요. 러시아 투어를 갔을 때는 어떻게든 인터뷰를 잡으려고 노력했고 다행히 KBS 뉴스에까지 나가서 단체의 인지도 면에서 효과가 컸다고 생각을 합니다.
현재 모던테이블은 2년 단위로 연간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첫 해를 무사히 넘기고 올해는 뭐하지 라는 생각으로 멍했습니다. 작년처럼 공연이 잘 될까? 라는 걱정과 부담. 다행스럽게 전년도 보다 많고, 또 전년도 보다 많고,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축제에서 신작을 발표하는 것으로 2018년을 시작될 것 같습니다.

김서령: 돌아보면 자연스럽게, 상황과 흐름에 따라 일을 해온 것 같습니다. 저는 창무회, 김은희무용단, 정혜진무용단, 국은미숨무브먼트, 홍댄스컴퍼니 등 20개 이상의 독립무용단체들과 오랫동안 일을 했습니다. 단체마다 업무 영역이나 기여도는 편차가 있지만 보통 기획 단계부터 재원조성, 제작, 홍보, 마케팅, 대관, 공연 진행, 각종 지원 서류 작성 등의 관련 행정업무, 그리고 단체 및 개인 예술가의 매니지먼트까지 기획자에게 요구되는 모든 일을 최대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이후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인 문화역서울284로 소속을 옮기면서 그동안 해왔던 개인단체, 예술가, 민간축제와의 작업과는 매우 다른 형식의 업무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서서히 일의 범위와 성격이 변해 기획자로서의 업무 역시 변화를 거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프로듀서나 프로그래머로서의 역할이 더 많아지고 심의나 자문, 평가 등에 참여할 일이 많아지다 보니 이전보다는 직접적으로 기획하는 단체들은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최근에는 극장이나 축제에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 간 협업 형태의 작품제작과 프로그래밍에 주력하고 있고 문화공간 기획과 공간특정형 콘텐츠 제작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작업들의 경우 기획에 적합한 메인 아티스트나 단체를 섭외하고 협업 아티스트들을 연결하고 제작진 구성에 관여하기도 하며 창작자들과 작품 콘셉트와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제작 과정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형태로 업무 영역이 변화하기 때문에 매번 유연하게 접근하는 편입니다.

박정수: 무용하시는 분들에게 전화가 많이 옵니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최근 어려워진 e-나라 도움시스템 때문에 호소를 하시고 정산만 따로 도와줄 수 있는지도 여쭤보시고. 어떻게 운영을 해야 하는지 문의하세요. 그런데 저희 회사는 기획사나 결과보고서 등의 페이퍼워크를 하는 회사가 아니라서. 만나서 말씀을 나눠보면, 많은 안무가 분들이 자신의 컴퍼니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어떤 차별성과 개성을 가진 단체인지, 혹은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모르시고 계실 때가 많습니다. 많이 안타까웠고 실제로 그렇게 헤어진 후 2개월쯤 뒤에 고민을 하고 오셔서 얘기를 해주세요. 제 역할은 그런 고민들을 들어주고 조언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컴퍼니가 색깔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곽아람: 프로듀서로서 국립현대무용단에서의 일을 말씀드리기 전에, 시댄스에서 매니지먼트와 프로모터 역할을 했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무용기획자’로서의 보람을 처음 느낀 것은, 안무가 이인수 씨와 일을 할 때였습니다. 시댄스의 국내팀 담당자로, 인수 씨는 당시 <힙합의 진화>라는 프로그램 참가 안무가로, 그렇게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첫 해외 투어도 함께 했습니다. 제가 이인수 안무가와 함께했던 이유는 우선 작품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시댄스를 하면서 다양한 현대무용을 봤었는데, 어려운 거, 이상한 거, 좋은 거, 싫은 거 등이요. 무엇보다 인수 씨의 작품을 보면서 이 안무가를 조금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 이 사람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해외투어는 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으로 참가했던 링컨센터 아웃오브도어즈페스티벌이었습니다. 처음이다 보니 정말 고생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만, 당시 인수 씨와 함께 뉴욕의 무용극장 프로그래머를 만나 제가 단체의 매니저로 함께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가 정말 떨리고 설레던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제대로 말을 하고 있는지,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한 단체의 매니저 역할로, 단체와 공연을 소개하는데, 큰 보람,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후 돌아와서 인수 씨가 독립 단체를 만드는데 같이 머리를 보태었습니다. EDx2 무용단이라는 이름을 같이 고민해서 만들었고 이 단체가 제대로 된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 무엇이 어떻게 있어야 할지를 함께 논의를 했고요. 인수 씨의 아이디어, 단체에 대한 비전 등을 어떻게 구현시킬 수 있을지를, 매우 신나게 고민했습니다. 전은지 프로듀서처럼 단체소개, 작품 소개 이런 것들은 기본으로 필요했고 안무가의 어린 시절, 사적인 얘기 등등을 통해 좀 더 이해가 높아지면서 단체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시댄스에 소속되어 의견을 주거나 자문을 하거나, ‘도움’이라는 범위 내에서 일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요. 의욕이나 열정만 가지고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깊은 관여를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국제교류 쪽은 회사 업무 범위 내에서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한국의 무용단체와 안무가들과 함께 서울아트마켓의 팸스초이스에 선정되기 위해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들, 선정 된 후 마켓에서의 프로모션, 해외 공연에서의 매니지먼트, 이를 위한 재원 조성, 등을 함께했고 그들의 국제교류 매니지먼트와 프로모션에 힘을 쏟았습니다. 한국 무용단체가 국제교류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팸스초이스 선정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 년 동안 작품을 보고 될 만 하다는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안무가에게 대시를 하기도 했고요. 팸스 외에도 탄츠메쎄, 캐나다 시나르 등 국제적인 마켓 참가를 위해서 작업도 했습니다.

현재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팀에는 저를 포함하여 5명의 기획/제작 PD들이 있습니다. 저의 가장 중요한 일은 무용단에서 기획하는 모든 공연, 프로그램의 예산을 세우고 예산을 집행하는 일입니다. 예술감독이 제시하는 전체적인 방향성을 구체화시키는 일, 그게 가장 중요하고, 어떤 안무가를 선택해서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한국 안무가와 해외 안무가, 안무가뿐만 아니고 작품을 함께 만들어갈 협업 파트너들을 찾는 것, 이것이 저의 가장 큰 업무입니다. 물론 국립단체로서 우리 무용계에서 국립현대무용단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실행해나가는 것 역시 큰 과제이구요.
5명의 기획/제작 PD들 중, 4년차 PD가 제일 오래됐고 다른 분들은 2년 미만의 경력을 가지신 분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저희 PD들의 역할은 아직은 안무가들의 창작 과정에 깊이 개입하거나,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역할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프로젝트의 방향성은 제시를 하지만, 창작 과정은 안무가에게 전권을 주고 있고요. 그렇다보니, 현재 저의 역할은, 마치 맛있는 음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인 것처럼, 어떤 안무가를 선택할 것인가? 어떤 안무가와 일할 것인가를 리서치하고, 발견해내는 일입니다. 해외 안무가의 경우는 그 동안 축제에서, 국제적인 무용 마켓이나 현장에서 일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고요. 국내 안무가의 경우는 좀 더 부지런하게 작품들을 보고 안무가들을 알고 발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재 단계에서, 좋은 무용 작품, 무용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일단 선택을 하면 그 안무가가 작품을 잘 만들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작업 여건을 조성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피디로써의 역할이겠지요. 언젠가 프로듀서가 뭐에요? 라고 물었을 때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누군가 했습니다. 조금 개념적인 얘기이지만, 안무가가, 일하는 제작진들이, 그리고 관객들을 모두 행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프로듀서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 수평적 협업, ‘그리고 다음’에 대한 호기심


곽아람: 다른 분들은 프로듀서로서 안무가의 작업에 어느 정도 관여를 하고 있나요?

전은지: 저는 과감하게 얘기하는 편입니다. 지적 아닌 지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안무가가 자기 복제를 하려고 할 때는 대놓고 물어볼 때도 있어요. 제가 간혹 아이디어를 던져줄 때도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파는 경향이 있어서. 연극이나 콘서트 등 다른 장르의 공연이나 전시를 많이 보는 편이라, 그런 것에서 받은 영감을 안무가에게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 관련한 페스티벌에서 재덕 씨가 만들 작품에서 이 아이디어가 역할을 할 것 같아요. 안무가가 직접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음악에 관련한 이야기도 많이 나눕니다. 뭘 하고 싶나, 뭘 어떻게 쓸 생각인지를 집요하게 물어봅니다. 확률적으로 반은 튕겨 나오고 반은 흡수되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프로듀서와 안무가가 서로 간의 인격적인 손상이 없는 수준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무용단이 수직적 분위기가 없어서 단원들도 자유롭게 의견들을 얘기하고요. 이런 것들이 영감이 되어 작품 창작에도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박정수: 저는 안무가들의 작품 창작에 개입하거나 많은 얘기를 하지 못합니다. 제가 하는 중요한 일은 콘셉트를 잡고 키워드를 뽑는 건데, 그런 행사에 맞는 적합한 단체, 작품을 찾아내는 것, 그렇게 프로그래밍하는 것입니다. 저희 회사는 월급을 주는 직원이 6명이 있어요. 그래서 재미없는 국가행사도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이 정말 힘들었던 메르스 사태나 세월호 시기에는 5개월간 매출이 0원 이었고요. 저희 직원들은 제일 하위로 받는 직원이 월급이 200만원이고 최대한 직원들에게 호봉, 연차, 휴가 등의 정상적인 권리와 혜택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것, 그래서 행사 유치를 하는 것이 사실 가장 현실적인 제 일이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무용수였고 안무가였어요. 지원금도 받아봤고요. 그런데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벤트 행사, 소위 오부리라고 하죠. 우리은행, 국민은행 이런 깃발 들고 춤추는 그런 행사를 엄청 많이 했습니다. 그 때마다 선생님들이 5만원, 10만원을 주셨어요. 제가 직접 해보니깐 저한테도 많이 남고 후배들에게도 30만원, 50만원 이렇게 줄 수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행사도 무용예술로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입찰을 시작했고요. 무용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들, 퓨전 국악이든, 비보이, 태권도 등과 많이 섞이고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행사를 주최하는 문화부에서는 비보이는 다 똑 같은 비보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스트리트 댄스 전반을 포괄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해서 좀 더 다양화시켰습니다. 오부리라는 행사 자체가 주가 되면 안 되겠지만, 이것이 어느 정도 예술가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제 후배가 저한테, ‘형 딱 3분만 제 영혼을 팔게요’ 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정말 하기 싫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쌓이다 보면 생활 자체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으니깐.

김서령: 박정수 대표님이 짧은 기간 이런 국가 행사, 기관 행사들을 많이 해오셨는데, 저는 대표님이 무용수, 안무가로서 자신의 경험과 자산들을 지금의 일과 잘 매칭 시키면 굉장히 차별화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 몇 년간은 무용보다 다른 장르의 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그 동안 무용기획을 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무용기획을 하면서의 경험들을 토대로 다른 장르에 눈을 돌릴 수 있었고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게 저의 정체성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제 나름대로의 방식을 선택한 것처럼. 사실 국가 행사의 프로그램 구성이 뻔하고 상당히 획일적인데 그런 시장에서 박 대표님이 순수예술분야에서 쌓아 온 경험을 무기로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하면 조금 더 행사의 퀼리티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본인이 갖고 있는 인맥과 자산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프로듀서로서의 개입 정도로 돌아가서 말씀드리자면 단체와 일할 때 작품을 계획하고 재원조성을 위해 각종 지원신청서를 쓰고 공연을 진행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작업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고 그 다음에는 향후 몇 년간의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기획자의 역할이 더 늘어나고 작품에 더 깊이 개입하게 되고… 이렇게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단체는 10년을 넘게 일을 해도 작품 제작에는 전혀 개입을 못했던 단체도 있었고, 짧게 작업을 해도 기획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좀 더 확장될 수 있고, 안무가와 연출가가 수용할 수 있다면 작품 제작 과정에서 프로듀서의 개입은 상당히 확장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역284에서 했던 몇몇 작업의 경우는 공간기획, 프로그램 기획, 아티스트 섭외, 스태프 구성 등 프로듀서로서의 영역을 넘어서서 연출의 영역까지 넓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이전의 경험이 토대가 되어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의 새로운 작업들이, 기획자로서의 다양한 역할들이 확장되고 연결되는 것 같아요.

곽아람: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혹시 일을 해오면서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인상적인 프로듀서가 있었나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프로듀서는 테로 사리넨의 기획자 이리스 아우티오입니다. 지금은 테로 사리넨이 북유럽을 대표하는 안무가로 명성이 높지만 제가 처음 이리스를 만났던 2005년, 그리고 2008년 저의 첫 해외 출장지, 풀문댄스페스티벌에서 만났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테로 신작의 공동제작자를 찾기 위해 일본을 비롯한 다양한 공동제작 파트너를 찾기 위해 일을 했던 모습이 기억이 나고요. 당시 테로 사리넨이 헬싱키에서 8회 공연을 시도했는데 무용으로 8회라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를 준비하면서 상당히 고무적이기도 했고 부담감을 많이 표현했었던 이리스의 열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컴퍼니 몸집이 많이 커졌지만 지금도 역시 함께 하고 있다고 하네요.

김서령: 저는 일하면서 만난 예술가나 선배 기획자로부터 감동을 받을 때가 가끔 있어요. 민간에서 독립 안무가들, 독립 단체들과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 판에서 생존하는 것 자체,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겠죠.
저는 제가 이전에 오랫동안 함께 일했었던 김매자 선생님을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기획자로서도 존경합니다. 창무춤터와 포스트극장을 통해 무용 소극장 운동을 선도하면서 차세대춤꾼전, 드림앤비전댄스페스티벌, 내일을 여는 춤, 유-댄스 페스티벌(U-Dance Festival) 등의 기획공연과 창무국제공연예술제를 탄생시키셨어요. 무용계의 원로이시지만 여전히 세대를 막론하고 아티스트, 기획자, 스태프들과의 대화를 즐기시고 협업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것을 본인의 창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계신 것은 기획자로서 본받고 싶은 부분입니다. 또한 창무회라는 단체를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단원들과 함께 40년 동안 이끌어 왔을 뿐만 아니라 단체의 국제교류 활동에도 여전히 적극적으로 직접 관여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해외 시장을 위해 도전하고 시도하는 에너지가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분은 무용기획자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장승헌 대표님인데 그분의 무용가 무용인들에 대한 무한애정과 사심 없는 동행을 보면서도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특히 생전에 가깝게 지내셨던 故 최현선생님의 서거 15주기와 故 김영태 선생님의 10주기가 겹치는 해였어요. 함께 세월을 보낸 예술가, 평론가에 대한 진심이 담긴 마음으로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묵묵히 자료를 찾아서 최현 사진집과 김영태 선생님의 마지막 유고집 <초개일기>를 발간하고 두 분을 위한 전시 <무용가 최현 회고 사진전> <초개와의 동행>을 기획하고 추모행사를 묵묵히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런 순수한 마음으로 문화계에 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무용계의 기획자로 생존하기


곽아람: 기획자를 원하는 무용가는 굉장히 많은데, 어떻게 기획자를 만나야 하는지 모르잖아요. 단발적인으로만 스쳐가는 젊은 기획자들도 많고.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일을 하는 기획자도 드물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서령: 수요와 공급의 문제도 있는데, 사실은 기대치의 문제도 있어요. 젊은 무용가들도 사실 노련한 기획자를 원해요. 신진 기획자가 경험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기획자로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안 되어 있고, 그래서 준비된 사람들이 없게 되는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해도 현실을 막막한데, 신진 안무가들은 제가 하면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아주 신생 기획자와는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자기들이 못하는 것을 기획자가 해주기를 원하니까. 이런 과정의 갭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해요. 제가 예경이나 재단에 바라는 것은 부디 이제 그만 문화기획자, 공연기획자 양성 과정 이런 강의식 교육들 제발 그만하고 이제 그런 과정은 대학원, 대학, 심지어 구청에서도 하고 다 해요. 이런 거 아무리 해도 소용없고요. 실무를 할 수 있는 단계를 만들어줘야 해요. 예산을 거기에 써야 합니다. 막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지원을 받아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단체와 매칭을 시켜주고, 그들이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전은지: 저는 쭉 일하고 있지만 제 부사수는 계속 바뀝니다. ‘어떤 사수가 되어야 하나’도 고민이지만 부사수의 경우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안 만들어지니까 단체를 운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어요. 저는 4년째 계속 이 일의 반복적인 흐름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 1년 루틴을 경험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많은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 연수단원이나 인턴들이나 9개월, 11개월 다 이렇게 와서 일하니까 메뚜기 뛰듯 직장을 옮기고 경력은 안 쌓이고. 계속 악순환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곽아람: 공연은 경험이 전문성인데, 젊은 기획자들이 선배기획자와 함께 일을 하면서 멘토링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할 거 같아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는 것. 그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공공지원이 있지 않으면 개선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김서령: 제 주변의 기획사, 기획자들은 늘 사람을 구하고 있어요. 업무의 피로도가 높고 기대치와 현장의 갭이 크고 경제적 보상은 만족스럽지 않으니 못 버티고 다른 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거죠. 저도 일하면서 사람을 많이 채용하지 못했어요. 매달 월급을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굉장한 스트레스였고, 그마저도 늘 만족스럽지 않아 미안한 마음으로 직원들을 대해야 했고요. 박정수 대표님이 6명의 직원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지금은 프로젝트 별로, 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가 행사나 기관 용역사업 등은 업무 성격상 잘 맞지 않아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었고 민간축제, 독립예술가들과 주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수익 구조 때문에 항상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후배 기획자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더 재미있게 일을 했으면 좋겠고, 민간에서의 기획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는데,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무용기획 분야는 아직도 활동하는 전문 인력들이 많지 않고, 아직 해나가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진입하는 신진 인력들이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영역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기회가 열려있다는 것이기도 하지요. 특히 무용을 전공했던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였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 오든지 적응력이 굉장히 빨라요. 또 무대나 극장에 대한 이해가 높고, 연습이나 작품 참여를 통해 공동 작업이나 협업에 대한 훈련이 이미 되어있기 때문에 글쓰기나 오피스 프로그램 활용능력 등 기본적인 업무 소양만 좀 갖춘다면 기획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됩니다. 힘이 드는 만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도전 의식과 호기심이 많은 친구들에게는 흥미로운 직업일 거예요. 게다가 점점 무용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미술관뿐만 아니라 기관, 행사들에서도 무용이 들어가는 여지가 많아지고 있고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다른 장르에서도 무용과의 협업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기획자들이 이런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문화예술의 판도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획자로서 활동하기에는 호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곽아람: 각자의 고민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획자로, 프로듀서로, 또 여러 이름으로, 각자의 계획들을 듣고 싶습니다.

전은지: ‘민간단체는 공공기금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파룩이 한국에 왔을 때 참가했던 세미나에서 좋은 자극을 받았던 거 같아요. 10년을 바라보고 시작했으니, 한국에 모던 테이블이라는 단체가 있고 그 팀이 해외 공연도 많이 하고 작품도 좋다더라. 라는 평가와 평판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이구요. 가까운 소망으로는 3년 뒤에 나에게 직원 2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웃음) 오랫동안 우리 단체가 잘 나아가는 것입니다.

박정수: 저는 편의점에서 문화를 사먹을 수 있게 제조업을 하고 싶어요. 문화 제조업과 유통을 하고 싶은데, 사실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또 다른 꿈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것 외에도 문화예술만큼은 형평성 있게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하고 싶어요. 한국 시장만으로는 힘들고요. 한국무용, 현대무용, 음악, 미술 등 각각의 포지셔닝을 잘 해서 해외 무대를 겨냥해 한국 아티스트들의 매니지먼트를 하는 게 제 꿈입니다.

김서령: 예전부터 제가 기획자로서 일을 하는데 있어서의 기준은 ‘재미’ 입니다. 나도 재미있고, 나와 작업하는 아티스트들과 동료기획자, 스태프들도 작업의 과정, 창작의 과정이 재미있으면 관객들에게도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달될 거라는 믿음이 항상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돈이나 명성보다는 재미있는 작업을 찾아다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 하나는 제가 좋아하는 예술계 동료들과 서로 신뢰하면서 즐겁게, 의미 있게,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동료 무용인들과 함께 ‘무용인희망연대 오롯’도 시작하게 되었던 거구요. 이 시대에 무용인으로서 또 사회인으로서 갖는 다양한 고민에서부터 춤 생태계의 건강한 변화를 위한 행동, 직업 예술인으로서 우리의 삶에 대한 고충들을 나누는 일까지 ‘함께’의 힘을 믿고 서로 토닥이며 즐겁고 건강하게 저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는 민간프로듀서들과 아티스트들을 위한 창작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얼마 전부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프로듀서들과 공간을 나눠서 쓰고 있는데, 프로듀서들이 모이고 그 프로듀서와 작업하는 아티스트들도 모이고, 그렇게 만나서 회의하고, 놀고, 각자의 지식과 에너지를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또 새로운 자극과 창작적 영감을 얻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곽아람: 한국이라는 환경이, 우리 창작자들이 지속적으로 계속 창작할 수 있도록, 실패해도 그 다음에 또 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하잖아요. 기획자들에게도 안무가들에게도 매우 긍정적인 환경은 아니지만, 무용단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흥미로운 안무가들, 아티스트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이 즐거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서포터하고. 유통 면에서도 안정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홍보마케팅이 잘 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 무용 관객의 풀이 토월극장 3회 공연 이상을 가기에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에요. 국립단체도 힘든데 민간은 더 힘들 거고. 무용 관객이 확대가 되려면 관객들의 무용 공연 관람 경험이 확대되고 워크숍이든 어떤 형태로든 무용 체험 기회가 많아지면 좋은데, 이러한 운영 노하우를 국립단체와 민간단체가 어떻게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을까?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들은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기획, 제작 그리고 홍보 마케팅 면에서도 서로가 연대하는 방법들을 그래서 전반적으로 무용 관객 풀이 확대될 수 있도록 실무 기획자들이 고민할 수 있는 창구들이 생겼으면 해요.




곽아람 2012년 극단 조연출로 공연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기획자로 연극 및 뮤지컬 기획 및 제작에 참여했다. 2004년과 2005년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마케팅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기획팀에서 축제의 홍보 마케팅을 담당했다. 또한, 아랍문화축제, 흑해문화축제 등 다수의 문화예술 관련 축제의 기획, 운영을 경험했다. 2012년 국제교류팀으로 옮겨 축제 프로그램 운영과 다수의 한국 무용가들의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기획, 프로모션하며 한국 무용가들의 해외 무대 진출을 도왔다. 현재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서령 1999년 공연예술기획 이일공에서 기획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고 2004년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을 공동 설립하여 무용, 연극, 전통예술, 다원예술, 거리예술, 축제, 기획자/예술가 교육 프로그램 등의 기획, 제작, 컨설팅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부터 2년 간 문화역서울 284 예술기획팀 공연/다원예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5년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금요공감> 예술감독, 2017년 남산국악당 <남산컨템포러리-전통, 길을 묻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으로 활동하며 장르 간 협업을 통한 현대예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박정수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인천시립무용단에서 직업 무용수로도 활동했다. 이후 댄스팩토리를 설립, 무용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행사를 기획, 운영했다. 현재 (주)컬처앤유 대표이사로 있으며 한-부탄 수교 30주년 기념 문화행사, 3.1절 기념식 무용공연, 플로브디브 나이트 뮤지엄 & 갤러리 페스티벌 등 운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전문사 과정,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사회적기업 리더 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무용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전은지 이화여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다 공연이 좋아 기획자로 전향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협동과정 예술경영과를 졸업하고 모던테이블에서 책임프로듀서로 재직하고 있다.


글, 정리_곽아람(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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