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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7.27 조회 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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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과 기록 : 그 모순과 기대

공연예술과 기록 : 그 모순과 기대1)

이호신_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

순간의 예술인 공연예술을 어떻게 보존하고 전승할 것인가는 공연예술계가 당면한 오랜 숙제 가운데 하나이다. 공연은 현재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예술이다. 공연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짧은 순간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이고 찰나적인 것이고, 소멸로서 완성되는 미학적인 행위이다. 공연이라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장소에서, 바로 그 시간에만 존재하는 현재의, 순간의, 찰나의 예술이다. 이것은 공연의 존재론적인 특성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미학적 원리이기도 하다. 공연은 복제를 통한 순환을 허락하지 않는, 소멸로서 스스로를 완성하는 아주 특별한 행위이다. 이런 까닭에 공연을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적지 않은 이들이 상당한 반감과 불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공연을 온전히 어떤 매체에 기록하거나 담아내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연의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노력들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서 지속되고 있다.
문학이나 미술이 본질적으로 기록매체에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고정하는 행위인인 것과는 달리 공연예술은 공연 이후의 세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모든 사람들에게 범용으로 통용될 수 있는 악보나 대본을 갖추고 있지 못한 무용의 경우에는 공연이 끝난 이후에는 그 공연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무용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공연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기록에 대한 관심과 집착을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Derrida)는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이라고 표현하면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이러한 열망을 낳는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남겨진 기록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기록은 어떤 고정된 매체 속에 공연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다. 그 속에는 공연의 구체적인 과정과 순차가 온전하게 담겨 있다. 그렇지만 공연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를, 기록이라는 고형의 매체 속에 가두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이미 순간의, 찰나의 예술인 공연을 존재론적으로 배반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되돌리면서 공연에서의 행위들을 되살려내는 일종의 반역이다. 그 자체를 공연이라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그렇지만 공연에서의 배우나 무용수의 동작과 표정, 등장인물에 관한 정보는 공연을 온전히 이해하고, 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 속에 남겨진 것은 공연이라는 실체를 구성하는 세부적이고 디테일한 정보들, 그래서 공연을 좀 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 기억을 새로운 공연으로 재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보완적인 데이터와 정보들이다.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담아낼 수 있는 것은 고작 공연의 순간에 이루어진 무용수의 동작과 표정이고, 그 사이를 흐르는 음악의 선율일 뿐이다. 그 자체를 공연이라고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코 그 자체를 공연의 온전한 재현이나 복제로 바라볼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용수와 관객 사이의 호흡이나 예술적 감흥을 담아내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한편 기록은 특정한 기록자가 “표명하고 있는 관심의 구현물”일 뿐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남겨진 것들은 공연의 재현이나 복제로서의 성격이라기보다는 공연에 대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은 공연이라는 사건의 전모라기보다는 그 사건에 대한 기록자의 주관적이고, 해석적인 개입이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공연이라는 실체를 온전히 복제하거나 재현하기는 실제로 불가능하며, 카메라 혹은 기자의 시선에 철저하게 갇힌 채로 공연은 해석되고 기록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Lepecki, 2010).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겨진 기록은 사회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산물에 불과한 담론적인 행위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정옥희, 2014).
이런 주장들은 모두 기록을 통한 공연의 온전한 실체를 재현하거나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기록을 통해서 공연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복원하겠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이었다. 기록을 통해서 역사적인 진실에 다가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의 삶을 그대로 빼어 닮은 공연의 입체적인 세계를 기록이라는 평면 속에 온전하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공연예술기록에 대한 논의는 이렇게 남겨지는 기록물들 속에 내재된 근본적인 한계(공연과 기록 사이의 근원적인 간극)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들이 지나치게 확대되거나 과장되어 해석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한계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연예술기록은 공연이라는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특별한 사건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수단으로서 여전히 커다란 의미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보존과 전승의 관점에서 그 실용적인 가능성을 능가하는 것을 발견하기는 실제로 매우 어렵다. 이런 까닭에 공연예술의 기록 과정에서는 어떻게 하면 공연이라는 실체를 보다 근접하게 재현할 수 있을까라는 쉽게 풀리지 않는 질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결국 남겨지는 기록의 특성을 결정짓게 된다. 공연예술 기록의 방법과 과정은 기록 기술의 발달과 함께 변화를 겪고 있다. 인쇄술의 발달로 문학 작품의 대중화가 가능해진 것처럼, 사진술이나 영상기술의 발달은 공연예술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연의 기록에는 글쓰기, 사진 촬영, 영상제작과 같은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지만, 3차원적인 공간 속에서의 인간의 움직임을 기록의 대상으로 하는 공연에서는 무엇보다 영상 기록이 가장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대중화된 기보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한 무용에서는 공연을 대체하고 보존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영상을 주목한 것은 이미 오랜 일이다.
심정민(2010)은 무용의 공감각적 기억과 잔상을 보존하는 대안으로서 영상 기록을 크게 네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첫째, 무대에서의 공연실황을 그대로 녹화한(recording)한 무용 영상, 둘째, 무용가의 창작활동이나 공연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셋째, 극장무대 위에서 공연된 작품을 근거로 하되 그것을 그대로 녹화한 것이 아니라 영상기법을 통해서 재(再)연출한 무용영상, 넷째, 영상을 위한 무용(비디오 댄스)이다. 이런 다양한 활용 양상은 무용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예술행위를 영상이라는 기록매체 속에 담아내기 위한 방법론적 고민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공연의 미학을 어떻게 영상기술과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인가와 관련된 실무적인 고민의 산물로 보여 진다. 특히 공연과 영상의 결합이 실증적인 기록의 차원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예술로, 문화콘텐츠로 스스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연예술기록은 공연예술이라는 행위 그 자체를 기록으로 보존하는 데 무엇보다 커다란 관심을 두고 있다. 공연이라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 이루어진 바로 그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진 일 그 자체를, 공연 그 자체를 보존하는 데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공연이라는 행위와 관련된 역사적인·증거적인·정보적인 가치의 보존은 물론이고, 공연예술이라는 행위 자체의 충실한 재현과 복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기록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연의 충실한 재현과 복제로 연결된다. 충실한 재현과 복제의 개념 속에는 공연에서 이루어지는 배우나 무용수의 구체적인 동작과 표정도 포함이 되지만, 공연이라는 사회적인 행위가 관객들에게 제공하려는 미적인 감흥, 즉 감동에 관한 요소들, 즉 미적 완결성을 가진 기록의 생산이라는 고민이 함께 포함된다(이호신, 2014). 공연을 단순하게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관객들에게 상상력과 여백의 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예술 행위에 대한 기록으로서 고유한 의미를 지닐 수 있으려면, 공연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상상력과 여백의 자리가 기록 그 자체를 통해서도 함께 제공이 될 필요가 있다는 요구이다.
공연예술기록이 담아야 하는 진실은 그 안에 담긴 배우나 무용수의 움직임과 표정이 아니라, 어쩌면 공연 자체가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예술적인 감흥과 울림이고, 공연을 통해서 작가나 안무가, 연출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원초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기록 제작 과정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는 바로 공연이라는 예술적인 객체에 담긴 흥취와 울림, 원초적인 내러티브를 어떻게 기록으로 남기고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공연이 배우의 표정과 동작 그리고 줄거리 등을 활용해서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려는 표현예술 행위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공연의 기록 과정에서 무엇보다 알차게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 울림과 감흥이고, 그 안에 내재하는 내러티브들이다.
그렇지만 공연이 가지고 있는 미적인 감흥과 울림을 기록 속에 담으려는 시도는 또 다른 예술적인 차원으로 스스로 진화하면서, 공연과 기록과의 관계를 기록과 관객 사이의 관계로 변형시킨다. 이것은 단순히 기록된 콘텐츠의 미적인 가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예술기록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 가운데 하나가 공연과 관객 사이의 관계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연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기록과 관객 사이의 관계로 변형시켜서 남겨 놓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 제기이다. 이러한 결과물은 공연에 대한 실증적인 기록과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새로운 차원의 예술로 스스로 진화한다. 과연 어디까지를 공연예술기록으로 바라보고, 어디까지를 기록과 관객의 새로운 관계로 바라볼 것인가는 쉽사리 정리하기 어려운 또 다른 과제가 된다.
정옥희(2014)는 무용계에 널리 퍼진 기록과 보존에 관한 담론과 시각매체에 대한 단편적인 수단화를 비판하면서, 무용에서의 기록 역시 사회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기록은 누구를 위하여,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종의 담론적인 행위에 불과하며, 기록에 대한 절대적인 맹신과 단편적인 수단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각매체의 제작에서의 반성성(reflexivity)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반성성이란 기록이 객관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록제작자의 사회적인 위치와 의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기록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어떤 것이 될 수 없고, 그래서 기록제작자 혹은 연구자 자신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 자리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참여자들과의 관계의 의의와 한계를 밝히는 작업이 기록 매체 제작의 과정에서 함께 고려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지금까지의 공연예술에 대한 기록이 미술적인 모사와 재현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었다는 비판과도 잇닿아 있다. 공연예술에 대한 기록은 사진이나 카메라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복제한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서, 예술행위가 담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정치적인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문화기술지(ethnography)적 방법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사회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는 달리 이야기하면 공연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미학적인 가치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로 확대해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예술의 기록은 공연이라는 예술이 가지는 고유한 미학적 특성을 어떻게 기록으로 옮겨 놓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독특한 문제를 지닌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공연예술기록은 공연 현장에서의 배우와 무용수의 움직임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복제할 수 있을 것인가에 지나치게 경도 되어 왔다. 배우나 무용수의 동작과 표정은 공연에서 가장 핵심적인 표현의 요소임에 틀림이 없지만, 동작과 표정의 시각적인 복제와 재현만으로는 공연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를 온전하게 담아낼 수 없다. 아마도 공연예술의 기록 과정에서 가장 특별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소는 공연이 궁극적으로 목적으로 하는 예술적 감흥과 울림, 그 안에 내재하는 고유한 내러티브를 어떻게 기록 속에 남겨 놓을 것인가에 관한 사항일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때로는 공연과는 완연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예술과 콘텐츠의 탄생으로 연결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공연에 대한 문화기술지적 기록의 생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연의 미학을 어떻게 기록과 접목해서,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공연을 어떻게 현재와 미래로 불러 올 수 있을 것인가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 초혼(招魂)의 과정은 공연과 기록의 올바른 관계 설정에서 출발되어야만 할 것이다. 예술 행위로서 공연의 특성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더불어 기록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1) 이 글은 2016년 무용역사기록학회지에 게재된 <공연예술기록에 관한 제언>의 축약, 수정한 것임.



[참고 자료]
· 심정민(2010). 「무용의 공감각적 기억과 잔상을 보존하는 대안으로서 영상매체」. 『에피스테메』 제4호. 고려대학교 응용문화연구소: 57-75.
· 이호신(2014). 「공연예술아카이브의 존재론적 특성에 관한 연구」. 『무용역사기록학』제33호. 무용역사기록학회: 11-33.
· 정옥희(2014). 「무용학에서의 시각인류학의 쟁점과 의의」. 『무용예술학연구』제51집 제6호. 한국무용예술학회: 25-47.
· Benjamin, Walter. (1992).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서울 : 민음사.
· Derrida, Jacque (1998).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Chicago : Chicago University Press.
· Lepecki, Andre.(2010). “The Body as Archive : Will to Re-Enact ad the Afterlives of Dances”. Dance Research Journal. 42(2): 28-48.




이호신 연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저작권법을 공부하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예술정보관장, 정책홍보부장을 역임하면서 예술 기록의 수집과 보존에 관한 업무를 오랫동안 수행하였다. 도서관과 기록관 운영에 필요한 법률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예술기록을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구술사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무용역사기록학회,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등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호신_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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