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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7.27 조회 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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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레이(Re:play), 일시적 공동체의 구상

김정현_미술비평가·독립큐레이터

줌인 미술비평가·독립큐레이터 김정현 관련 사진

상영회 시즌2 《리플레이 Re:play》
- 일시 및 장소: 2017. 6. 14 - 6. 16,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 다목적실
- 참여작가: 강진안, 공영선, 곽고은, 나연우, 남정현, 송주호, 이은경, 오설영,
임진호, 윤자영, 주현욱, 장홍석, 정세영, 최승윤, 최은진, 황수현
- 기획 및 진행: 상영회 (김정현, 송주호, 박민희, 정세영)
- 포스터 디자인: 장홍석
- 토크: 김재리(드라마터그), 장혜진(안무가·리서처) (모더레이터: 김정현)
- 후원: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 소액다컴


막이 내린 후 공연은 어디로 갈까? 운이 좋다면 또 다른 무대가 펼쳐지겠지만, 대부분의 공연은, 특히 경력이 길지 않은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은 영상으로 기록되어 외장하드에 잠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용수의 신체에서 솟아나는 열기가 디지털 이미지로 차갑게 조각된 결과물을 극장에서처럼 긴장하고 감상할 가능성은 낮다. 그런 와중에, 지난 6월 안무가들이 모여 공연 기록을 함께 꺼내보는 자리가 열렸다. 《리플레이》는 공연예술가들의 소모임 ‘상영회’가 기획한 전시로, 안무가 및 연출가 16인이 참여하여 공연 기록 영상 22편을 상영했다.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 다목적실에서 열린 이 전시는 우선, 국립현대무용단이 실험과 연구를 표방하며 주최했던 안무랩(2014-2016)의 참여 작가를 중심으로 지난 3년간 서울에서 만들어진 공연을 돌아봤다. 단, 이 모임은 개별 작품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토론하는 것보다,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공동체, 또는 공동체 활동의 의미에 관한 생각을 나누는 기회가 됐다. 공연의 제작진과 달리, 목적의식도 결속력도 다소 느슨한 상태로, 한 데 모인 이들은 무엇을 하려는 걸까?



공연을 보는 것과 공연 기록을 보는 것


김정현: 여러 안무가가 드물게 한 자리에 모인 김에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어봤습니다. 드라마투르그 김재리 씨와 안무가이자 리서처인 장혜진 씨를 초대해서 대화 주제를 제안 받았는데, 사전 미팅 내용의 일부를 공유하고 가능하면 다른 분들 말씀을 듣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선, 공연 기록 영상을 이렇게 전시 형태로 본 적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셨는지 두 분 먼저 소감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장혜진: 공연 예술은 대부분 ‘침묵’하는 감상 문화잖아요. 암전되고 공연을 보는 동안에는 아무 말도 못한다던지 작가에게 뭔가를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지금의 [전시] 형식에서는 서로에게 질문할 수 있고, 침묵이 깨졌다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다수의 관람 문화에서, 여전히 불특정 다수이기는 하지만, 침묵 자체가 어색하던지, 아니면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이니까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 달랐어요. 그리고 공연을 실제로 보는 게 아니라 공연 기록물을 관람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연 리뷰보다는 공연 기록물에 대한 리뷰나, 동시 다발적으로 상영되는 경험에 대한 관찰을 많이 하게 됐어요.

김정현: 보통 공연 기록을 많이 남기지만 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는 분들은 드물 것 같아요. 스킵하면서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요. 다른 사람과 본다는 경험도 드문 일이고요. 또 사전 미팅에서 두 분 중 한 분이 지적해주셨는데, 여러 영상이 동시에 상영되니까 한 작품을 보다가 다른 걸 놓칠까봐 고개를 돌려서 보기도 했고요. 공연을 보는 체험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좋은 건가요?

장혜진: 복합적인 감정이 들기는 해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네, 하는 동요가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고요. 어떤 종류의 ‘작가의 죽음(롤랑 바르트)’을 연습하는 것도 아니고, 작품에 응답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감상을 한다는 게, 제가 볼 때 실제 작업의 리뷰는 아닌데, 그렇다면 [이런 감상의] 방향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질문이 생기기도 했어요.

김정현: 사실 이 부분은 패널로 초대받은 분들만 말씀을 나눌 게 아니라, 직접 본인의 작업을 상영한 분들의 말씀을 듣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혹시 틀어놓고 보니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황수현 안무가는 어땠어요?

황수현: 제 작업 중 <저장된 실제>는 영상에서 볼 수 없는 것, 공연을 직접 보는 경험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 지점에서 처음에는 굉장히 많이 망설였어요. 이 작업을 영상으로 공개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영상을 공개할 수 없다면 이 작업은 계속 갈 수 없나, 하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들었어요. 어쩌면 앞으로 한 번 더 [무대에 올리지] 못할 수도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렇다면 내 컨셉을 고수하는 게 맞는 지, 아니면 못 본 분들에게 공유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생각이 있었고요. 작업을 만들고 시간이 좀 지나서 공개를 하기는 했는데, 여전히 영상으로 전달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 있어요. 또 작업의 텍스트를 보신 분들도 그런 지점을 생각하고, 제가 다시 공연을 하게 됐을 때 그 간극을 다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미술관 작업[<I want to cry but I am not sad>]은 실제로 보는 것과 다른 게 영상에 나오더라고요. 공유하는 데 훨씬 긍정적인 생각이 있었고요. 특히 비용을 들여 좋은 퀄리티로 만드는 게 좋다는 걸 느꼈어요. 이 작업은 영상을 찍기 위해 리허설을 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감정적으로 오르내리다 보니 공연과 영상의 느낌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그래도 요약본으로 잘 나오기는 했는데, 마지막 장면은 관객과 함께 있어야 말이 되는 장면인데, 리허설 중이라 관객 없이 우리끼리 해서 좀 아쉬운 것 같아요. 영상용으로 좋은 작업이 있고, 공연용으로 좋은 작업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도 해요.



줌인 미술비평가·독립큐레이터 김정현 관련 사진

상영회 시즌2 《리플레이 Re:play》


민주적인 실험실을 원한다면


김재리: 저는 단지 과거의 기록물을 상영한다면 관심이 없었을 텐데, 안무랩 작업을 한꺼번에 모아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전시에] 더 관심이 갔어요. 제가 초기 2년 동안 안무랩을 주도했기 때문에 당시의 실험 프로그램을 시간이 흐른 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이 자리에서는 안무랩 작품에 대한 비평보다는, 그 당시에 모여서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이제 그런 플랫폼이 없어진 이후에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안무가들에게 다음 스텝을 위한 제안을 들어보고 싶어요.

김정현: 사전 미팅에서 안무랩이라는 기획을 기관이 아니라 기관 밖에서 조직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했는데요.

김재리: 기관이면서 또 국립이었잖아요. 제롬 벨 작품에도 나오잖아요. 답이 정해져 있는 작품을 보고 싶으면 ‘N’자 붙은 극장에 가라고 하잖아요. 국공립 기관에는 생각과 목표가 다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요. 예술감독이 원하는 그림이 있고, 실행하는 사람들, 안무가들의 생각이 다 있죠. 이 사람들이 서로 긴장감을 일으키면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은데, 중간에 긴장이 끊어지고 누군가에게 끌려가며 수동적이 되는 상황들이 보이게 되는 거죠. 기성세대는 어떻게 보면 계몽적으로, 교육을 많이 시키면 좋은 안무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또 젊은 실무자들이나 창작자들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즐기고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어하고요. 그런데 그런 방향이 어긋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죠.

장혜진: 저와는 생각이 좀 다른 부분이 있네요. 국립이 아니라고 그런 문제가 해결됐을까 의문이 들어요. 저는 루마니아국립무용센터에서 다른 사례를 경험했던 적도 있고요. 그곳과 제일 다른 건 ‘안무랩’이라는 타이틀이 없이 실험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컨템포러리 댄스 프렉티스 자체가 실험이고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N 달린 기관이 갖고 있는 불가피한 수동성이라는 게 저한테는 보이지 않았어요. 내부 비판은 있을 수 있겠지만요. 제가 보기에, 정말 민주적인 실험실을 원한다면, 기관 주도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문화 조성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건 저만의 질문이 아니라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해요. 수동성이 기관의 문제인 건지. 이 질문은 열어두고 싶어요.

김정현: 재리 씨가 수동성이라고 말했던 부분이 협업에 관련된 부분인 것 같은데, 여러 안무가들이 각자의 작업을 하지만 서로 교섭되는 형식으로 보여줬다는 차원에서 협업이라는 주제로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기관에서 주도했기 때문에 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수동적이 된다고 말씀했거든요.

김재리: 어떻게 실행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당시의 공동체가 굉장히 인위적이었던 거죠. 서로의 목적이 다르고, 기관에서 안무가와 멘토를 알아서 선별한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거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긴장이 있었거든요. 한쪽의 힘이 너무 세면 끌려가거나, 그런 힘을 받아들이기 싫으면 관계를 끊어버리게 되는 거죠. 창작의 동기 부여 보다는 요구 사항들이 부담을 주는 식이 되지 않았나.

황수현: 그런데 저는 시기적으로 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안무가들에게 그런 것들이 허용된다는 걸, 기관에서 했기 때문에, 가령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메이저에 올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기관에서 그런 걸 해도 된다는 생각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적절했다고 봐요. 현재는 그 여파일 수도 있고요. 이런 자리가 생긴 것도, 만약 이런 흐름이 기관이 아닌 곳에서 시작됐다면, 한국 사회의 맥락 상,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수 없었을 거예요. 다만 이제는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재리: 혜진 씨 이야기처럼, 이렇게 모이거나, 리뷰를 해주거나, 실험을 지지하거나, 공부를 하는 문화가 한국에서는 없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수 있는 거죠.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드러나는 것 같아요. 기관에서 상품화시키고 홍보하는 경우에는 결과물에 대한, 공연예술 생산의 논리 안에서, 잘 만들고 팔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렇지만 수현 씨 말대로 파급력에 대한 생각, 공공 기관이기 때문에, 당장 하나를 팔기 보다는,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도 기획을 할 때는 분명히 있었어요.

황수현: 더 중점적인 게 무엇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사실 파급력의 차원에서 저는 돈을 받고 공연을 하는 데 부정적이었어요. 무료 공연이었다면 더 파급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티켓 값이 책정되면서 결과물 또한 매끄러워야 한다는 의지가 안무가들에게 전달되었던 것 같아요.

김재리: 처음에는 무용단 내부에서 티켓 값을 받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결과보다는 과정 지향적인 작업이었고 안무에 대한 다각적 실험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국립기관에서는 사업의 본질적인 내용 뿐 아니라 재원이나 공공의 부분까지 고려해야 했어요. 또한, 예술기관의 ‘성과’ 차원에서 국내 무용계나 예술에 미칠 파급력이나 영향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작품으로 잘 갖춰진 형태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티켓 값을 책정하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어요. 물론 티켓 값이 높게 책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무료로 오픈한다고 했더라도 무용에서의 실험이나 리서치같은 개념에 관심이 없었다면 극장에 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국립기관이 주도하면서 새로운 안무적 제안 등에 대해 앞서가는 하나의 경향이나 따라가야 할 것으로 여기는 방식의 파급력은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문제는 질문이나 관심이죠. 모던 댄스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작가의 작업을 철저하게 숨기고 혹은 예술가의 고유영역으로만 치부했던 것에 대한 비평적 인식이나 춤의 내용보다는 형식에 대한 관심들, 혹은 움직임이 춤이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통해 발생하는 춤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이요. 공신력 있는 국립기관에서 하는 사업이라서가 아니라 안무랩에서 제안하는 실험, 리서치, 공동작업 등 안무적인 것들에 대한 제안에서 발생하는 것들의 파급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큐레이팅이라는 경제적 응집력


장혜진: 안무랩을 넘어서 확장하고 싶어서 여기 있는 분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데요. 안무가와 함께 공동 기획하는 장에서는, 그러니까 안무가가 단지 지원 사업의 수혜자가 아니었다면, 티켓 값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동시에, 제 질문은 그런 형식의 실험에는 경제적 보상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는지가 궁금해요. 물론 어떤 소비 심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존재하는 건 맞는데, 계속 질문이 생겨요. 그런 실험적인 공연이 티켓 값을 형성할 수 없는 거라고 한다면, 아르코 같은 데서 보여주지도 말았어야 한다는 게 제 입장이에요. 그런데, 과연, 이게 실험이고, 작업 과정이고, 완성된 작업이 아니라고 해서 무료여야 한다는 생각이 맞는가 하는 거죠.

김재리: 극장 공연에 우리가 기대하는 게 이미 정해져 있는 거죠. 스펙터클하거나 기승전결이 흥미롭거나 커튼콜까지 완벽한 것. 그렇다면 우리의 고민을 드러내는 과정은 작품이 아닌가?

장혜진: 저는 그 전자가 사실인 지 궁금해요. 저는 제가 소비를 하는 입장에서, 극장에 매끄러운 걸 바라지는 않는 것 같거든요.

김재리: 컨템포러리 관객이 그렇죠. 모르는 상황을 만나고 싶어서 가지, 알고 있는 걸 확인하러 가지는 않죠. 그게 공연의 형식이나 제작 방식과 맞물려 있는 것 같아요. 리서치나 실험의 과정도 작품의 일환으로 볼 것인가, 좀 더 과정 지향적인 작품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웰메이드라고 하는 안정적으로 세팅된 것에만 돈을 지불할 것인가.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시장 논리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완성된 상품에 돈을 지불하지, 만드는 과정 자체에 돈을 지불하지는 않거든요. 자본이나 경제적 논리의 지향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거죠. 우리가 관객을 잘 모르지만, 관객들이 뭘 보고 싶을지 판단하면서 작품을 만들지만, 지나고 보니까 리서치 자체가 작업이 될 수 있고, 이런 고민이 관객의 고민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돈을 낼 수 있는 건 아닌가.

김정현: 돈 이야기가 나온 김에 상품화에 관한 말을 해볼까요. 사전 미팅에서 혜진 씨가 이런 성격의 모임이 상품성이나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과 관련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장혜진: 제가 생각할 때 큐레이팅은 결국 경제화와 결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경제화할 수 없더라도 앞으로 경제화하기 위해서 큐레이팅이라는 응집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했어요. 그것 자체를 비판하려는 건 아녜요. 저는 경제화 자체는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질문은 아니고 관찰인 거죠. 결국 이런 모임 자체도 상품화나 경제화 운동의 과정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어요.

정세영: 경제화의 일종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여러 면이 얽혀있어서. 그런 측면도 있다는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영회의 취지 자체가 한 번 하고 끝난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어서 만든 건데, 다시 말하면, 이런 게 다시 유통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오늘 장홍석 씨와도 얘기 나눴던 건데, 새로운 걸 계속 만들어간다는 게, 소비되고 소모되는 점이 커서, 그럼 파급력이 적은 공연을 어떻게 더 반복해서 할 수 있을까, 파급력을 키워서 기회를 더 많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경제적인 게 연결되어 있다는 건 동의하는데. 창작자에게는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한 것 같고. 다들 그런 의미에서 상영회에 참석한 것 같아요.

김정현: 사실 상품화, 경제화라고 하면 자본을 추종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는데, 그것보다는 창작 환경에 대한 관심. 특히 여기 모인 분들이 경력이 아주 길지는 않은 분들, 소위 말하는 ‘젊은 창작자 집단’. 그리고 이들의 작업이 일회적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더 높은 거죠. 그런 작업을 다시 보고, 어떤 질문이 제기되었다면,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죠. 그런 필요를 많은 분들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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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회 시즌2 《리플레이 Re:play》


Non-Production


김정현: 아까 재리 씨가 창작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필요한 공동체 활동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재리: 같이 좀 만나줘요 (웃음). 제가 드라마투르그 하면서 안무가를 보면 안무가가 계속 고독하게 작업을 하는데, 고민이 많아요. 생산적인 고민도 많이 하는데, 나는 안무 공부를 이런 방식으로 하고 싶어, 하는 생각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게 혼자 하기는 어렵고. 안무랩에서는 임의로 모였지만, 상영회도 지향점을 갖고 모인 것처럼, 창작자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모여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세영: 저는 왜 안 될까가 궁금해요.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임을 만드는 게 다른 장르, 특히 미술 장르보다 특히 더 힘든 것 같아요. 미술에서는 신생 공간이니 모임이니 좀 더 자유롭고 편하게 이루어지는데. 연극은 극단이라는 일종의 이익 집단 위주로 이루어지고요. 그런데 1-2인이 주체가 되어 공연을 제작하는 분야에서는 모이기가 좀 더 힘든 거죠.

장혜진: 갑자기 드는 생각은 안무가 이루어질 때에는 이미 안무 사회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하나 만들기 까지 사회가 이미 형성이 되는 거죠. 어떤 종류의 사회예요. 고독하기는 한데, 실제로 혼자만 있지는 않거든요. 그 사회에 갇히던지. 피라미드 구조이든, 덫의 구조이든, 그 안에 있게 되거나. 아니면 우리가 모두 책임자가 되어 만나는 거죠. 창작자나 기획자로. 그 때 본인이 갖고 있는 사회를 다시 깨는, 도전도 받아들여야 하거든요. 내가 리허설을 진행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반성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그게 깨지면 또 작업이 안 나오는 거죠.

장홍석: 제가 이해하기로는, 어쨌든 모여서 해보자는 질문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잘 모일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고요. 저는 오늘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와서 각자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니 그냥 하게 되는 시스템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꼭 미래지향적이 되지 않더라도, 이런 만남이 지속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요.

장혜진: 저는 모였으면 빨리 흩어지자는 주의거든요. 모이긴 모이되, 빨리 흩어지면 좋겠기도 해요. 다른 모습으로 또 모이고. 아니면 너무 새마을 운동 같아요. (웃음) 모임이 힘이 되기 위해서는 흩어져야 해요. 그래서 각자 또 자율적으로 자기 역할을 해내며 사회와 문화를 디자인하는 거죠.

김재리: 모여서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시스템을 만들어서 기계처럼 움직이는 방식은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요. 모임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토론하는 것, 신변잡기로 흐르지 않으면서, 과제를 나눌 수 있는 게 이상적인 것 같아요. 작업을 할 때 필요에 의해 만나는 것 자체가 이상적인 모임은 아닌 것 같아요. 일 년 내내 작업을 하지는 않잖아요. 작가들이 일상을 어떻게 사는 지, 일상 안에서 만날 지점을 찾자는 거죠.

김정현: 작업을 하지 않는 심심한 시간을 어떻게 함께 보낼 것인가.

김재리: 그렇죠. ‘non-production’. 우리는 절대 작업이 아니야. 토론하고 연습하고 워크숍하면서 발견하는 게 많거든요. 실제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위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제안하고 싶어요. 기관에서 주도하는 사업이나, 지원금의 범위는 제한적이고 각각의 방향과 목적이 미리 설정되어 있죠. 이것에 자신의 생각이나 창작의 태도를 끼워 맞추기보다는 자율적으로 그 형태를 구축하고, 행위자의 입장에서 예술의 생태계나 창작에 대한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황수현: 세영 씨가 말한 모인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정세영: 제가 생각하는 모임의 지향점은 거의 그냥 만나는 것 같아요.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만나는 구성원의 성격만 비슷하면,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기만 해도 저한테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분야에서 뿔뿔이 흩어지는 것보다는, 모여서, 전체적인 모습이 보이면, 관심 있는 사람들도 현장의 흐름을 보기가 편해질 거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왜냐하면 정보가 없으니까. 현장을 보여주면 기회도 더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참고] 《리플레이》 상영시간표와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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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미술비평가·독립큐레이터. 동시대미술의 수행적 측면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한다. 2015년 제 1회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했고 AYAF 시각예술 큐레이터로 선정되었다. 2017년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부문 비평가로 입주해 있다. 《해적판》(2017),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2016), 《Dear. Drops(박정혜 개인전)》(2016), 《연말연시》(2015) 등을 기획했다.

김재리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겸임교수. 2014-2015년 국립현대무용단 드라마투르그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몸과 움직임읽기: 라반움직임분석의 이론과 실제』(공저), 『사라지지 않는 예술: 무용이론을 말하다』(공저) 등이 있다. 연구 활동으로는 한국연구재단의 2013-2014년 박사후 연구원, 2016년 신진연구자에 선정되었다. 2016년 국립현대무용단 잡지 ‘K-Contemporary’의 객원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춤/퍼포먼스 분야에서 드라마투르그 협업 및 컨템퍼러리 댄스에 관한 개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장혜진 HeJin Jang Dance/CEPA 예술감독. 안무가/무용수/드라마터그/에세이스트. 미국 뉴욕 무브먼트 아티스트 레지던시 및 움직임 강사를 비롯하여 뉴욕예술재단 안무 멘토, 뉴욕라이브아츠 상주 안무가, 홀린스 대학교 무용과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한국에서는 모다페 국내초청공연, 국립현대무용단 안무랩 큐레이터 및 무용학교 마스터 클래스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 등을 통해예술가를 지원하는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최신 프로젝트로는 <Drifring Body>, <이주하는 자아 문의 속도>, <Living without ( )> 등이 있다.


김정현_미술비평가·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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