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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5.25 조회 6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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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오늘의 기록: 춤 아카이브, 아카이빙, 아키비스트

미래를 위한 오늘의 기록: 춤 아카이브, 아카이빙, 아키비스트

글, 정리_허영균(웹진 《춤:in》 편집부)

모더레이터: 박성혜(무용평론가)
좌담: 김현옥(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권혜경(국립국악원), 이주현(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참관: 윤나영(서울무용센터 매니저)



줌인 좌담 허영균 관련 사진

왼쪽부터 김현옥, 권혜경, 박성혜, 이주현 ⓒ박호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국립국악원 국악아카이브,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은 국내 대표 아카이브다. 예술의 전분야를 망라하거나, 해당 기관의 기획 공연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거나, 소속 단체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는 등, 기관마다의 특징과 지향은 남다르다.
오늘, 수집된 예술 자료들은 과거의 증거일뿐만 아니라 재배치와 재맥락화를 통해 다시 새로운 작업의 근거가 되고 있다. 세 기관의 담당자와 모더레이터 박성혜는 ‘공연과 춤의 아카이브’ 현황과 방식을 소개하면서, 각 기관에 아카이빙된 자료들이 무용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작업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아카이브의 동시대적 활용에 대해 이야기를 펼쳤다.



기관별 아카이브의 특징과 지향


박성혜 모더레이터(이하 박성혜) : 국내 대표적인 아카이빙 기관의 세 담당자를 한 데 모시게 되어 기쁘다. 기관의 특성에 따라 아카이브의 방법과 지향이 다를텐데, 각자 기관의 특징과 지향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줌인 좌담 허영균 관련 사진

김현옥(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박호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김현옥(이하 김현옥) : 1979년 개원한 예술자료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소속된 부서다. 다른 국내 기관과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공연예술부터 시각예술분야까지 전 장르를 아카이빙한다는 점이다. 예술 전 장르를 아카이빙하기 때문에 춤아카이브만로서의 전문성은 미흡할 수 있다. 무용 아카이브는 크게 기증, 기탁, 이관 등의 방식으로 하는 수집과 구술채록사업, 무용 공연의 실황을 제작하는 영상제작사업 등이 있다. 또한 문예진흥기금사업 결과물을 이관 받기도 한다. 그 외에도 시중에서 유통되는 도서, 영상물, 연간물을 구입하여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권혜경(이하 권혜경) : 국악원이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국악원은 공연 기관으로서, 정악단, 무용단, 민속악단, 창작악단이 소속되어 있다. 이 네 연주단에서 연간 380회 정도의 공연을 하는데, 그 공연들의 기록물을 아카이빙하여 관리하는 것이 중점적인 일이다. 그 외에도 학술 발간, 교육 사업 등 각 부서에서 진행한 사업의 결과물을 이관 받고 있다.

박성혜 : 국악원에서 하는 모든 공연이 아카이빙 대상인가?

권혜경 : 대관 공연을 제외한 국악원이 기획, 주최한 공연 사업의 결과물을 아카이빙한다. 그 외에도 국내외에 산재한 국악자료를 조사하여 기증, 기탁, 구입의 방식으로 수집한다.

박성혜 :영상자료와 기록물을 함께 수집하는 것인가?

권혜경 : 공연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영상 기록물, 포스터, 팜플렛, 티켓, 사진자료, 의상스케치, 연출노트, 악보, 무보 등 공연제작 과정에서 생산되는 모든 자료를 모은다. 자료관리규정을 두어 이관을 의무화 하였다. 국악원이 본격적으로 아카이브를 시작한 것은 2007년이지만, 그 이전에도 기록물 관리를 하고 있었다. 국악원에는 박물관, 아카이브, 자료실(도서관)이 있다. 박물관은 1900년대 초 이왕직아악부로부터 내려오던 유물과 기록물들을 가지고 있고, 자료실은 아카이브가 생기기 이전에 만들어진 공연 영상, 음향 기록물, 사진 자료들을 관리해 왔다. 국악아카이브는 우리가 현재 생산하는 자료를 보존하는 기록관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외부에 산재하는 국악자원을 수집하고 관리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김현옥 : 예술자료원은 국립국악원이나 국립극장과 달리 소속된 극장이나 예술 단체가 없기 때문에 이관형 아카이브가 아니라 수집형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공연 기록물을 모두 수집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왜 선정하는지에 대한 가치 평가와 선정기준이다. 특히, 공공기관에 기록물로 등록된 자료는 시간이 지나면 그 자체로 힘, 권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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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혜(무용평론가) ⓒ박호상


박성혜 : 선정기준이 무엇인가?

김현옥 : 중요성, 원본성, 희소성, 대표성, 시급성, 활용가능성, 자료의 가치성, 시의성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명문화된 기준이 있어도 예술의 자료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추기 위해 주기적으로 관련 자문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박성혜 : 국악원처럼, 공연예술박물관도 극장과 소속 단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에서 생산되는 자료들도 수집대상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주현 : 그렇다. 또한 현재 국립무용단의 전신으로는 국립발레단이 있었던 것처럼, 이전 자료까지 수집하고 있다. 워낙 수많은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수집이 쉽지 않다. 특히 저작권이 언제나 난관인데, 어느 기관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극장 초반의 자료는 사실 별로 없다. 한국전쟁도 있었고, 극장을 이전하면서 자료가 많이 유실되었다. 특히 1950~60년대 자료가 없다. 거기에 국립기관이기 때문에 결재의 과정도 복잡하다. 국립 단체들의 초창기 자료들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아키비스트가 많지 않다는 것도 어려운 요소다. 한 사람이 수집, 정리, 관리, 대여 등의 업무를 모두 담당하기에, 국내외 아카이브는 아직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아카이빙 초창기이기에 국내자료, 국립 무용단 자료를 발굴하여 수집하는 것을 우선 목표하고 있다.



아키비스트가 된 경로


박성혜 : 아키비스트는 무용하는 사람들에게 생소한 직업이다. 어떻게 아키비스트가 되었는지 궁금하고, 본인은 어떤 아키비스트인지도 이야기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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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박호상


이주현 : 아키비스트는 사명감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카이브 기관이 많지도 않고, 이용객은 대부분 전문 분야의 사람들이다. 따라서 국가의 입장에서는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적게 느껴지는 사업이기도 하다. 매체가 발달할 때마다 계속 자료도 변환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많은 예산이 든다. 큰 예산과 많은 인력이 지원되어야 하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는 크지 않다. 그래서 인지 이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가도 사서나, 다른 방향으로 직업을 바꾼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나는 아키비스트라기 보다 학예연구사라서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한다. 이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허무한 일이기도 하기에 실제로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권혜경 : 나 역시 학예연구사다. 국악원 학예연구사는 여러 가지 업무를 해야 하는데, 나는 아카이브 작업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업무를 선택하였다. 본래 수학을 전공하다 춤이 좋아서 다시 무용 이론을 전공했다. 김천흥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그분의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춤은 기록하기에 가장 어려운 분야다. 이것을 잘 정리하여 연구에 활용될 수 있도록 역사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구술채록 사업에도 참여해 보았고, 그 후에 학예연구사가 되었다. 여러 업무를 거쳐 작년부터 아카이브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아카이브는 여러 분야의 학문이 융합되어 있다. 기록학, 무용학, 국악학은 물론이고 디지털 시대니까 기술적인 부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만나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 매력으로 뛰어들긴 했는데, 할수록 어려워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많다.

김현옥 : 나도 아키비스트가 아니라 학예사지만 아키비스트가 하는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아카이브란 말도 모른 채, 기록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현장 기록이나 구술 기록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었다. 국립오페라단에서 근무할 때는 자체적으로 생산한 기록물이라도 제대로 관리해보자는 취지에서 ‘도서 관리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여러 길을 돌아 예술자료원으로 왔는데 지금까지 이직하지 않고 근무하는 걸 보면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예술분야 아키비스트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예술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를 토대로 기록 관리 업무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예술자료원에서 공연예술분야 기획수집을 총괄하고 있는데, 개인의 능력으로는 소화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 연구자 집단과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보고, 실제로도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구술채록과 객관성의 문제


박성혜 : 아까 이야기 해주셨던 자료 선정의 기준이 흥미롭다. 특히 구술채록 사업의 경우에 시급성과 함께 객관성이라는 화두가 있을 텐데, 대상 스스로의 구술이기 때문에 왜곡, 과장에 대한 한계와 위험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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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국립국악원) ⓒ박호상


권혜경 : 구술채록은 당연히 객관적인 자료가 아니다. 주관적인 자료를 객관성이라는 잣대로 다가갈 때 위험성이 생긴다고 본다. 구술자료의 가치는 오히려 구술자가 무엇을 왜곡하는지, 왜 그런 방식으로 말하는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 개인이 자신이 살았던 그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가 드러나는 지점이 중요하다. 왜곡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자료의 유용성을 해친다고 보지 않는다.

김현옥 : 예술사적 기여도, 중요성을 먼저 평가한 뒤에 연간 채록 인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급성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그러다보니 주로 원로 예술가가 대상이 된다. 과거의 기억을 말로 풀어내다보니, 기억이 파편화되거나 축소, 과장, 왜곡, 은폐되기도 한다. 이것은 구술자료가 갖는 흥미로운 지점이자, 기록이 권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위험한 지점이기도 하다. 객관성의 경우는 단 한 사람만 구술채록을 한다면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에 활동했던 다른 작업자들의 구술을 채록하며 교차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구술기록을 사실이다, 아니다라는 관점이나, 절대적으로 신뢰할 기록물로 보지 말고, 여러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기록물로 보는 연구자적 자세가 요구된다.

박성혜 : 유명인사의 경우에는 자기 미화를 넘어, 자기 신화화에 이른 경우까지도 종종 발견된다. 구술채록에 대한 두 기관의 입장에 흥미롭다. 예술가들이 한번 들여다보아야 하는 또 다른 역사책이라 생각한다.

김현옥 : 특히나 무용인들은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놉시스나 무용대본만으로는 공연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워 영상 기록만큼은 충실히 하는 것 같은데, 다른 기록은 잘 남기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맥락의 글쓰기는 평론가, 연구자들의 몫이었다. 구술채록은 그 자체로 새로운 역사쓰기의 한 방식이자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아카이브의 동시대적 활용


박성혜 : 아티스트들의 입장에서 기관별 특징을 알고 있다면, 활용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아카이빙을 활용한 작품이 많다. 반면, 무용 분야에서는 익숙한 작업이 아니다. 내가 국립현대무용단에 근무하던 당시, 아카이브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공모했다. 그때 가장 많이 문의 받았던 것이 ‘어떻게 와 무엇을’이었다. 아카이브와 퍼포먼스의 결합된 개념과 예시가 적었던 것이다. 아카이브 퍼포먼스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에 대한 미비점을 감안하고 보다 친절한 안내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사 말하지만 아카이브 퍼포먼스는 기존의 것들을 재배치하여 새로운 프레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원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면이 드러난다. 따라서 자료의 동시대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없는 것이 제일 안타까웠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카이브를 자신이 작업의 일환으로 직접 다루는 아티스트들이 아카이브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이런 이슈에 관해 각 기관은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현옥 : 수요자가 찾는 전문적인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작의 입장에서는 예술의 경계가 무의미하지만, 우리처럼 자료를 수집해서 제공하는 기관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분류해서 제공할 것인지가 늘 고민이다. 아직 시범단계이기는 하지만, 예술자료원은 연구중심의 컬렉션을 지향한다.

권혜경 : 국악원은 이용자들의 접근성과 활용성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미흡하지만, 디지털 아카이브에 시소러스(Thesaurus), 온톨로지(Ontology), 의미 기반 웹 등 검색의 질을 높이는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줌인 좌담 허영균 관련 사진

ⓒ박호상


박성혜 : 기관의 정체성이 유지되면서 그에 맞춘 기술 개발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했던 전시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한 무브먼트 아카이브가 떠오르는데, 당연히 작가 중심으로 아카이브 해놓았을 거란 예상과 달리, 한 작가가 집중했던 주제와 개념들을 교차적으로 정리해 두었다. 단순한 연대의 나열이 아니었고, 작가들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에 놀랐다. 인상 깊었던 아카이브의 분류 사례였다.

김현옥 : 아무리 많은 아카이브 기관이 생기더라도 모든 예술을 다 아카이빙 할 수는 없다. 때문에 예술가들 스스로 자기 기록을 남기고,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쌓여 훗날 국가적 유산이 되는 것이다. 춤 박물관, 춤 아카이브 기관도 얼마 없다. 기관이 나서서 나와 내 작업을 기록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창작 작업을 기록하는 것은 또 다른 창의성을 요구한다. 스스로 기록하여, 자기 창작의 모티프로 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록물을 수집할 때, 예술가들이 만든 질서를 가능한 존중하고 지킨다. 그것이 그 예술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주현 : 기관 차원에서 자료를 이용하여 다양한 맥락을 제시한다면 이상적일 것이나, 국립기관이기 때문에 우리가 맥락화하는 방식은 최대한 자제한다. 컬렉션으로 한번 잘못 묶게 되면 자료 제공에 있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들이 방문하여 내 작업을 보존하고 싶다고 문의를 할 때도, 아티스트가 먼저 자기 기록 방식을 결정하길 권장한다. 기관과의 진행은 그 이후다. 이 작품을 후에 어떻게 활용할지, 어떻게 자료를 정리해나갈지는 아티스트만이 결정할 수 있고, 기관이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아카이빙에 접근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발생하는 저작권 문제


박성혜 : 일반 열람자가 아니라, 아티스트나 연구자로서 활용하기 위한 자료를 이용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

김현옥 : 먼저 홈페이지에서 소장여부를 검색한 후, 서초동 본원과 대학로 분원을 방문해서 이용할 수 있다. 관내 열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대출을 원할 경우에는 정회원으로 등록을 해야 한다. 공공기관이라 자료 접근 방식에 차이를 두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일반 애호가가 더 많이 이용하는 자료와 연구자나 창작자 집단이 찾는 자료가 달라 서비스 운영 정책을 보다 섬세하게 수정할 필요를 느낀다. 기록물의 생명은 활용에 있다. 활용을 위해서는 자료를 직접 눈으로 봐야하는데,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한 희귀자료를 모두에게 공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다 보니 차등을 두는 것에 대해서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예술발전을 위해 그리고 그것의 환원까지 생각할 때는 차등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권혜경 : 국악원의 자료는 오히려 연구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친숙하고 열려있는 편이다. 우리 기관의 고민은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김현옥 : 예술자료원의 인기 자료 중 하나가 자체적으로 제작해서 제공하는 공연영상자료다. 구입해서 제공하는 유통 자료는 대출이 가능하지만, 현장을 촬영한 영상은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출은 제한하고 있다. 관내에서만 볼 수 있어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도 꽤 많다. 다만, 이용자가 직접 저작권을 소유한 예술가나 단체의 대출 승인을 받으면, 대출하는 특별 대출제도가 있다.

박성혜 : 저작권 때문에 자료를 수집할 때도 문제가 많다. 1990년대 초반정도에는 자료 접근성이 훨씬 좋았다.

이주현 : 예술가들의 저작권을 보호해야하는 것과 자료를 활용해야 하는 가치가 상충한다. 또한 영상물이나 협업작품 같은 경우, 다양한 저작권이 묶여있어 더욱 어렵다.

김현옥 : 공연예술분야에 맞는 현실적인 법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공연예술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가 쟁점화 되고 활발히 진행되어야 법도 그에 맞게 바뀌는데 별로 관심이 없으니 기존의 틀 안에서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권혜경 : 저작권이 가장 현실적인 걸림돌이다. 국악원의 경우 방문 열람, 부분 복제는 가능하다. 기관이 전체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자료는 공공누리법에 의거하여 사이트에 공개하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저작권 문제는 아카이브를 하고 있는 기관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어려움이고, 기관간의 협력 테이블에서 법률 개정에 대한 공론화 필요성이 제기된 적도 있다.

김현옥 : 이용에 제약이 있어 불편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예술가의 권리가 보호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일장일단이 있다. 예술인들 스스로 이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용 절차를 간소화하고 싶어도 저작권, 초상권 등의 문제로 쉽지가 않다. 기관은 소유권을 가질 뿐, 저작권은 예술가들에게 있는 것이다.

박성혜 : CCL(Creative Commons License)의 장점은 예술가가 우선 자기 자료의 제공 범위를 제한하는 것 아닌가?

이주현 : 공연예술은 한 사람의 창작물이 아니다.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공개를 거절하면 자료가 제공되기 어렵다. 기관의 입장에서는 활용과 보호의 가치가 항상 상충한다. 오래된 자료일수록 더욱 그렇다. 디지털화하여 서비스하려고 노력하지만 예산과 인력의 문제로 잘 진행되기가 어렵다.

박성혜 : 예술자료원의 경우 자체 영상을 제작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가?

김현옥 : ‘공연영상 콘텐츠 제작사업’으로 공연예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예술인·단체, 주요 예술상 수상작, 주요 행사 등을 기록하는 사업이다. 통상 대극장은 카메라 3대, 소극장은 카메라 2대를 설치하여 녹화한다. 연간 2만 건이 넘는 공연이 무대에 오르지만, 예산의 한계로 1년에 약 100편 내외로 촬영한다. 작품성, 예술성, 역사성, 희소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추진하고 있다.

박성혜 : 외부에서 신청을 할 수도 있나?

김현옥 : 최근까지는 단체로부터 신청을 받은 후, 그 중 일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는데, 주요 작품 중 누락되는 공연이 많아 올해부터는 격월로 외부 전문가 작품을 통해 선택적으로 제작한다.

윤나영(서울무용센터 매니저) : 무용 공연의 특성을 고려하여 고안된 촬영 방식이 있나?

김현옥 : 사전 모니터링을 통해 중요한 장면이 누락되지 않도록 하는 정도다. 연출가나 안무가와 협의를 통해 어떻게, 무엇을 담을지 충분히 논의해서 기록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예산과 인력의 한계로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다. 안무가의 의도가 잘 반영된 기록물이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주현 : 예술가 개인이 아키비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과정 자체가 아카이브 되어야 한다. 결과를 중심으로 아카이브 하는 것이 기관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공연예술의 아카이브 방식과 아카이브 퍼포먼스


박성혜 : 시각예술 분야는 큐레이터의 권한과 역할이 막강하다. 심지어는 창작의 주체가 미술관도 작가도 아닌 큐레이터라 말하기까지 한다. 기관의 아키비스트들도 큐레이팅의 시각에서 아티스트가 해놓은 분류와 정리를 존중하면서, 재맥락화하는 전시 등의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업을 먼저 해준다면, 일반인이나 예술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쌓여있는 유물이 아니라 작동하고 있는 무엇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전제 조건은 자료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 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현옥 : 시각 예술의 경우에는 작품 자체가 전시를 통해서 보인다. 시각 예술은 큐레이터의 발굴과 해석이 매우 중요하다. 공연예술은 공연이 끝나면 작품 자체가 사라지는 휘발성, 일회성의 특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아카이브 방식과 보이는 방식, 활용의 방식 모두 다르게 접근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시각예술 아카이브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한데, 그것을 표본으로 공연예술에 적용하는 데는 특성의 차이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 자료원의 경우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 초점을 맞춰왔는데, 지금은 자료의 가치를 발견해 내는 작업을 중요하게 여겨 연구자 집단과 함께 자료를 정리하며 가치를 발견해내는 작업을 해보려 한다.

박성혜 : 프랑스는 국립안무센터가 19곳 있다. 그 중 렌느에 위치한 센터를 보리스 샤르마츠(Boris Charmatz)가 예술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이곳이 안무센터가 아닌 박물관이라는 선언을 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는 이 환경에서 예술가가 창작할 수 있는 새로운 제안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아카이브를 이슈로, 안무센터를 박물관화 하면서 다양한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그러면서 교육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자료는 공연으로 만들기도 한다. 파편화된 것을 통해 새롭게 맥락화하는 다양한 작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각 예술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주었다. 한편으로는 아직은 아카이브 퍼포먼스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여러 도움이 될 만한 사안이 많았다.

김현옥 : 국내에는 아직까지 아카이브 퍼포먼스의 사례가 몇 안 된다. 최승희의 작업을 모티브로 한 <이태리의 정원>과 국립현대무용단의 ‘아카이브 플랫폼’ 정도가 생각나는데, 국립현대무용단의 경우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였지만, 평가는 엇갈렸던 것 같다. 아카이브에 대한 용어가 생소했던 것 같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도 부족했다고 본다.

박성혜 : 아카이브 퍼포먼스와 재현 프로그램을 혼돈스러워 한다. 단순한 나열, 역사적 검증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카이브 퍼포먼스는 이와 다르다.

권혜경 : ‘아카이브 퍼포먼스’라는 것을 좀 더 열린 개념으로 볼 수는 없나?

박성혜 : 시각예술 분야에는 이미 구축이 되었고, 이 열풍에 대한 진단 또한 끝났다.

권혜경 : 전통공연예술에 그 개념을 대입해 본다면, 시각예술이나 컨템포러리 예술에서 진단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기록물을 활용한 공연 제작은 아마도 전통공연예술계에서 가장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 아닐까. 재현, 복원, 역사적 검증은 재맥락화 과정과 목적은 다르지만 그 과정에도 해석의 관점은 있는 것이고, 재현, 복원이 강조되던 시기를 거쳐서 전통공연예술도 결국 예술가의 관점과 해석이 보다 중요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김현옥 : 아카이브 기관은 풍부한 예술 자원을 수집해서 제대로 구축해 놓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자료를 선별하여 재연하고, 재구성하고, 재창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작업의 뿌리가 되는 일이 기관의 역할이라고 본다. 자료의 큐레이션은 기관에서도 당연히 해야 하지만, 그것을 공연으로 연결하는 것은 창작자들의 몫이다.

박성혜 : 각 기관의 지향과 목표를 설명하고, 소개하면서 아카이브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것을 재료로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예술 작업을 하기 바라는 목적에서 이 좌담을 진행했다. 아카이브를 통해 무용이나 시각의 경계가 허물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되는 아카이브를 기대한다.




박성혜 발레를 전공했지만 글쓰기가 좋아 무용전문잡지《몸》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이후로도 무용에 관한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무용공연에 관한 전반적 글쓰기에 노력 중이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교육 & 리서치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몸》지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다. 저서로는 『사라지지 않는 예술, 무용이론을 말하다』(공저), 『컨템포러리댄스 속의 인문학』(공저) 등이 있다.

김현옥 2010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에서 공연예술분야 기획수집 및 구술채록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예술을 사랑하고 그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하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

권혜경 수학, 무용이론, 한국학을 전공하였고, 2007년 한국춤문화자료원에서 ‘김천흥 컬렉션 DB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2009년부터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현재 국악아카이브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소장 자료의 다양한 연구활용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주현 무용 이론을 전공하고 한국 최초의 공연예술박물관인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에 학예연구사로 부임했다. 방대한 자료를 연구하며 어떻게 하면 이들을 잘 보존하고 또 활용할 수 있을지 고심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글, 정리_허영균(웹진 《춤:i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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