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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4.27 조회 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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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농도, 전환과 지속을 위한 마음 씀

피터 김용진_ 월간<싱클레어>편집장, 뮤지션

갑자기 그가 바라보더니 물었다.
“패티, 우리가 진정 예술을 찾은 걸까?”
나는 눈길을 피했다. “모르겠어, 로버트, 모르겠어.”
- 패티 스미스 <저스트 키즈> 중에서 -



삶의 어떤 전환들


삶에는 어떤 전환들이 있다. 기타만 연주하던 내가 우쿨렐레로 노래를 만들게 되는 변화. 밴드만 하던 내가 기타하나 들고 솔로앨범을 녹음하던 선택. 시사주간지를 좋아하던 내가 <싱클레어>라는 독립잡지를 만들게 된 순간. 그런 전환들은 단숨에 문턱을 넘는 방식이 아닌 은근한 경사를 따라 오르다가 다른 영역,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게 되는 지점에 있다. 그리고 그 경사는 결국 마음 씀 들이 만들어낸다.
긴 여행에 기타가 너무 짐스러워 크기가 작은 우쿨렐레를 들고 다니다 보니 그걸로 연주하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되었다. 영화 속 장면을 보고 찾아간 오키나와에서 외로워서 좋았던 순간을 담아 노래를 만들어 공연해보니 혼자 노래하는 모습도 좋아지게 되었다. 경쟁을 싫어하고 잘 못하는 탓에 직접 편집하고 인쇄하고 판매하는 걸 택하고 나니, 그걸 나중에 독립 잡지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몇 줄로 정리된 사건들이긴 하지만 모두 몇 년의 쌓인 시간이 있었다.



직업과 작업


직업과 작업이 있다. 생활을 위한 노동을 직업이라고 한다면 삶의 활력을 위한 활동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은 필히 비용을 필요로 하고 그걸 지불해야 한다. 삶을 위해선 작업이 필요한데, 생존을 위해서는 직업도 필수다. 직업과 작업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밸런스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작업을 포기하거나, 작업을 직업으로 삼거나 둘 중 선택하길 강요받는다. 특히 삶의 활력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더 그렇다.
하나를 버려야한다면? 이런 질문에는 그 자체에 이미 답이 정해져있다. 누구도 타인의 노예로 살고 싶지도 않고, 평생 습작을 이어가는 인생을 살고 싶지도 않을 테니까. 그냥 잊고 잘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한사람에게 직업과 작업은 균형을 찾아야하는 일이지 한쪽을 포기하고 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둘 중 하나를 억지로 선택해야할 때 결국에는 방향을 잃게 된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활력이 없다.
그렇다고 내 삶을 얽매고 있는 직장(직업)을 그만두면 내 작업을 할 수 있을 텐데. 경제적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작업에 몰입해서 작업만 하며 살고 싶다 생각한다면, 그럴 때에는 위험부담이 큰 결단, 선택을 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는 우리의 삶에서 언제나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먹는 문제만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적게 먹어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먹을 걸 좀 ‘잘’ 먹어줘야 작업을 할 수 있다.



작업의 농도


그런 경계를 알아야 한다. 그런 경계를 볼 수 있다면 직업인, 전업예술가(작업자)가 아니라 작업의 농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족을 부양해야하거나 여러 이유로 비용이 필요해서 직업을 유지해야하지만 그럼에도 작업의 농도를 따져봤을 때 10% 정도를 붙잡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작업을 하는 사람이고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상황이 좋아지면 그 농도를 높여갈 수도 있다. 시간이나 비용을 좀 더 작업 쪽에 쓸 수도 있다. 이때 또다시 결정을 해야 한다. ‘돈이야 많을수록 좋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작업의 농도는 짙어지기 힘들 것이고 계속 변화를 미루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작업이 중요하기에 그 조각을 더 키우는 데 시간을, 비용을 쓰겠다 생각하면 그 농도가 조금씩이라도 짙어진다. 사실 100% 농도의 작업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술가 중 얼마나 될까.
내 스스로 작업의 농도를 생각해 봤을 때 지금 나의 작업은 50%의 농도를 유지하고 있고 50%는 생활인으로 살고 있다. 원래는 농도가 꽤 진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급격한 농도변화를 겪게 되었다. 상황은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내 작업도 거기에 맞게 변할 수밖에 없다.
한 점으로서의 직업과 한 점으로서의 작업. 우리는 그 사이의 한 점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스펙트럼에 놓여 있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일정 농도를 유지하는 지속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공원 숲속을 걸으면서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조금 전부터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 나쓰메 소세끼 <점두록> 중에서 -



누구나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계속 하고 싶지만 마음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충분히 짙은 농도를 유지하며 좋은 성과를 낸 듯한 예술가들도 제자리인 듯한 느낌을 떨쳐내지 못한다. 내 경우는 음악을 만들어 공연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글을 쓰고 그 글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임을 이리저리 실험해보고 싶었다. 당연히 그것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싶었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매번 조금이라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몇 퍼센트의 농도만으로도 내가 하고 있음을, 지속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내일부터 작업만 하겠어!’ 라는 결단의 순간은 생각보다도 쉽게 오지 않는다. 그래도 그 열망이, 마음 씀이 쌓이면 그것들이 은근한 경사를 만들어 삶의 어떤 전환점을 지나게 해 주고 작업을 지속하게 해 주었다. 제자리인 듯하지만 결국 나아가고 있었다. 중요한 건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마음 씀을 잃지 않는 것이다.




피터 김용진 정치학과 생물학을 공부했다. 오래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서 고전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고전읽기학교 <신촌서당>을 운영하고 있다.
2000년부터 월간<싱클레어>편집장, 밴드 h.기타쿠스 의 멤버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경주 불국동에서 아내와 두 딸과 산다.


피터 김용진_ 월간<싱클레어>편집장,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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