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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2.23 조회 6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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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들의 몸과 마음, 어떻게 돌보아야 할까

남희경_미국무용동작치료전문가, 미국공인상담가

사회적 트라우마 시대, 무용수들의 몸과 마음


우리 사회에 힐링(healing)이 화두가 되고, 대중들이 힐링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트라우마가 심각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 혹은 화이트리스트로 상징되는 권력과 자본의 통제 속에 예술가로서 무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정신적 피로는 신체적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기도 하고, 또 몸을 직업적 도구로 사용하는 무용수들에게는 부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체적 상해가 무용수들의 직업적 기능만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부상에 대한 마음의 상태이다. 무용수들의 상해는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좌절감, 무력감,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불쾌한 정서적 경험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자존감을 손상시키고, 사회적 고립이나 단절을 일으키는 등 존재론적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 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담고 있고, 우리의 정체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몸이 멈추면 마음도 무기력해진다


우리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몸은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에 대해 긴밀하게 반응하고 있는 유기체이다. 가령 극심한 스트레스나 외상적인 사건을 겪으면 우리의 몸은 동결(freezing)되거나 마비(numbing)된다. 그 사건이 신체적인 상해가 아니라 심리적 외상이라고 하더라도 생리학적(physiological) 반응 즉, 우리의 몸의 감각이나 신경계에 영향을 준다. ‘지금-여기’의 몸은 ‘지금-여기’의 마음을 반영하고,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몸으로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분노는 몸의 근육을 긴장하게 하고, 불안은 몸을 반복적으로 행동하게 하고, 우울은 행동을 지체하게 한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의 신체 감각에도 영향을 미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지면 몸도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이렇듯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다.



몸과 마음은 통제될 수 없다


극심한 스트레스, 심리적 외상, 중독의 공통적인 증상은 모두 몸과 마음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해리(disassociation)증상’이라고 한다. 감정에 대한 무의식적 방어기제이다. 고통을 느끼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신과 고통을 분리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분리한다. 그래야 고통을 느끼지 않고, 느끼지 않는 것이 좀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근본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의식적으로 행하는 일은 통제할 수 있지만 무의식적 행동은 통제할 수 없다. 우리의 감각과 감정의 반응은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통제는 저항만 불러올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감정을 억압 할수록 우리 몸과 마음은 분리된다. 그러한 몸은 부상당하기 쉽고, 그러한 마음은 상처받기 쉬운 취약한 상태가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니라 해소와 돌봄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기준은 ‘지금-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생생하게 감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용수로서 몸을 단련하고,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일을 하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있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사는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는 신체의 부상과 같은 실수를 마음의 문제라고 보았다. 즉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적 욕구와 동기가 그러한 행동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체 심리학자들은 통증과 같은 증상을 억압된 기억과 정서가 몸으로 표현되는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수를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 따라서 우리의 부상당한 몸과 상처받은 마음에 필요한 것은 통제(control)가 아니라 해소와 돌봄이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려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소유권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몸을 지배하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인식하는 것, 다시 말해 좌절된, 무기력한, 혹은 불안해진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첫걸음이다.



돌봄의 시작은 몸에 대한 자각이다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몸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몸을 자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간다는 의미이다. 현재 자신의 몸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감각하면, 현재 자신의 심리적 상태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신체 증상들은 심리적 상태의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몸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우리 내부의 세상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나아가 교감신경계를 진정시킬 수 있다. 즉, 몸의 에너지를 자각하고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충동을 조절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몸이 상해를 입었다면 혹은 우리 마음이 상처를 입었다면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일단 ‘멈추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doing)’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즉, 존재를 감각하는 것(being)’이다. 그것은 멈추었을 때만이 가능하다. 멈추게 되면 외부로 향하는 에너지를 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의 호흡과 몸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기 시작할 때, 내면의 나침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남희경 한양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무용수로서 무용교육 활동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춤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무용동작치료사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심리상담가로 활동하면서 치유 활동을 통해 무용수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만나고 있다.


남희경_미국무용동작치료전문가, 미국공인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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