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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1.26 조회 7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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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젠더: 춤이 나의 젠더를 생산한다

김재리_무용학자, 드라마투르그

참여: 김보라, 장은정, 조인호
진행: 김재리
녹취: 권윤희(춤:in 영 프로패셔널 기자단)



줌인 무용학자, 드라마투르그 김재리 관련 사진

ⓒ박호상


춤은 오랫동안 여성의 전유물로 생각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남성이 춤을 추면, ‘남자답지 못한’ 남성 취급을 받았다. 물론 지금은 무대 위에서 많은 남성 무용수를 볼 수 있으며, 그 몸짓 또한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춤이 여성의 분야라는 것은 거부하기 힘들다. 이러한 시각과 편견은 단지 춤의 영역에 남성보다 많은 여성이 존재해서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부장적 질서와 정신과 신체, 이성과 감정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춤과 같이 신체적이고 감정적이며 불안정한 영역은 여성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질서로부터 여성 해방과 평등을 위한 페미니즘의 확장적 전개로 젠더에서의 권력관계를 밝히고, 최근에는 자연적 본성이라고 믿어왔던 성별에 대한 해체와 고정된 여성성(femininity)과 남성성(masculinity)에 대한 거부 등으로 성에 대한 인식 변화가 나타났다. 이는 페미니즘 이론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러한데,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을 극복하는 운동들이 일어나고, 성소수자(LGBTQ)의 인권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신체가 주 매체이자 주체로 고려되는 춤의 영역에서 안무가들은 젠더 이슈, 여성성과 남성성, 또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춤은 신체를 벗어날 수 없고, 신체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에 대한, 신체를 통한 젠더 인식은 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나?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주체’와 ‘주체성’에 대한 개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주체와 대상을 구성하고 있는 권력의 형태와 성별이나 섹슈얼리티, 인종 등 신체의 다름에 작동하는 규제들에 대해 재질문하고 있다. 과연 춤 ‘현장’에서의 젠더 이슈는 이론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최전선을 향해가고 있을까?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경험은 춤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 신체, 젠더, 여성주의


줌인 무용학자, 드라마투르그 김재리 관련 사진

김재리


김재리(이하 재리): 역사적으로 춤이 오랫동안 여성의 분야로 인식되어오면서, 여성의 신체가 지니는 특성이 춤의 형식이나 내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에 의해서, 여성을 위해서가 아닌 남성의 질서와 시각에 의해, 그들이 보고 싶은 여성의 모습을 그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춤에서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구축해온 것이다. 이러한 춤의 분야에서 무용수로, 안무가로 느끼는 젠더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가?



줌인 무용학자, 드라마투르그 김재리 관련 사진

김보라


김보라(이하 보라): 내가 무용수로 활동하게 된 시작점에 여성 안무자와의 작업 경험이 거의 없었다. 남성 안무자와 작업을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신체에 억압을 느꼈고, 정신적인 부분까지 힘들었던 것 같다. 안무를 시작하면서는 나의 신체를 탐구하는 것을 시작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성주의에 대한 입장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오히려 여성주의에 대한 논의가 작품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왔다고 할까? 여성주의 시각에서 작업하겠다고 생각하며 만든 작품은, <소무>이다. 무용수들과 여성의 정신적인 측면에 대해 다루었는데, 작업하다 보니, 그러한 정신을 갖더라도 반드시 신체가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하나의 신체에 남자, 여자의 양성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언어로는 구분할 수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여성, 남성의 구분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어떤 신체인가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것들이 여성주의 시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재리; 여성주의에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성중심적인 질서에 저항하고 그 안에서 고정된 여성을 해방하는 것이 중요한 핵심이다. 보라 씨의 경우 작업의 시작도 이러한 입장을 견지했지만, 작업을 통해 젠더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남성무용수의 입장에서는 어떠한가?

조인호(이하 인호): 무용수로 작품을 할 때 성별에 대한 고정된 관념과 실제 춤사위에서도 구분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한국무용은 창작 분야라 하더라도 전통적 질서가 남아있어서 남성과 여성 무용수의 역할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안무가와 작업을 할 때도 저에게 ‘남자답게’ 해달라는 요구를 한다.

재리: 춤에서 남자답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호: 전통적으로 사회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는 특성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강하고 빠르고 에너지가 넘치는 춤을 말한다. 반대로 여성적인 춤사위는 부드럽고 유연하고 가벼운 특성을 얘기하는 것 같다. 남자니까 당연히 그러한 춤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신체적으로 크지도 않고, 에너지도 많은 편은 아니어서 남자다운 춤이 버거울 때가 있다.

장은정(이하 은정): 내가 무용수로 활동했던 시기에는 (현대)무용 분야에 주로 여성들만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두 가지의 성을 하나의 신체로 담아내야 했다. 춤의 기술적인 부분을 포함한 표현에 있어서 한 몸으로 두 가지를 다 해내야 하는 압박이 있었다. 오히려 남성들이 무용의 영역에 많이 진입하고 난 이후 내 신체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남성과는 다른, 꼭 상대적 성을 인식하지 않고 마음이던 신체 그 자체건 춤을 통해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내가 활동했던 ‘컨템포러리 무용단’에서 여자들만 20년간 춤을 추면서, 기존에 해왔던 작업에 대해 다른 질감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이 들었을 때,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는 젠더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여성주의에 대한 물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나와 춤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되면서 결국 ‘여성’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2005년부터 <레드>라는 연작을 통해 ‘여성의 삶’을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남자랑 만나는 여자, 아니면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자로서 살면서 내 몸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탐구했다.

보라: 안무가로서 여성의 신체를 탐구하고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으로부터 여성주의가 확장될 수 있는 것 같다. 처음 여성에 대한 관심으로 작업했을 때에는 여성의 신체에 맞는 특정한 형태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은 여성의 신체 그 자체가 보인다. 주어진 사고나 이미지를 신체가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스스로 생각하고 감각한다.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다른 것을 드러냈을 때 ‘여성’이라는 의미가 생기는 상대적인 관점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신체를 감각하고 인지하고 발견해가는 것에서 여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남성무용수들과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신체가 다르고, 그것은 남성 여성의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발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리: 그렇게 여성의 신체를 재료 삼아서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성의 생물학적인 특징들을 포함한 여성성이 작품에서 묻어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신체를 탐구하는 (안무) 방법이 있는가?

보라: 누구나 똑같은 눈 두 개, 코 하나, 입이 있지만 자기 신체의 원형을 먼저 탐구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가진 신체의 디자인이든 성격이든, 성질이든, 질감이든 모든 자신의 신체 원형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난 이후에 그 원형을 변형시키기 위한 외부적인 요소들을 개입시킨다. 예컨대, 그 바람과 같은 자연 일부가 들어온다거나 거칠게 에너지를 쓰거나 오브제를 이용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떠오르는 생각이 어떻게 신체에 개입하는지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러한 탐구는 분명히 보이는 신체의 형태와 기능을 인지하는 과정과 그것에게서 더 깊이 들어가 보는 방법을 모두 포함한다.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인 관계
- 춤에서는 어떤 규제가 작동하는가?


재리: 무용수의 신체가 움직임을 실어 나르는 도구나, 남들의 시선에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그 자체가 발언하고 그것이 춤으로 발생하는 ‘주체적인’ 관점에서 보라 씨의 안무 방법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주의에서도 ‘주체’와 ‘주체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도 남성보다 여성이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별에 대한 권력관계에 대해 저항하고 평등과 인권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인호 씨는 남성이지만, 무용에서의 불평등한 성별의 관계나 개인의 신체적 특징과 성향과는 상관없이 성별에 의해 규범화된 춤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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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호


인호: 그래서 내가 작업을 할 때는, 중성적인 느낌을 많이 찾으려고 노력한다. 성별의 구분에서가 아니라 무용수로서 각자가 가진 색깔과 생각이 신체를 통해 어떻게 걸러 나오는지에 대한 것을 최대한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매번 한계에 부딪히는데, 오랫동안 학습된 춤이 신체에 각인이 되어 그것을 깨는 것이 매우 힘들다. 신체의 기억은 정신의 그것보다 더 강력하다고 하는데, 무용수들에게 매번 다른 과제와 주제를 주어도 여성, 남성의 전형적인 표현의 방식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재리: 관객들의 고정관념도 있어서 더 어려울 것 같다. 공연에서 남자와 여자가 둘이 듀엣을 하면, 뭔지 모르게 에로틱하게 보이는 것 같다. 은유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성(sex)을 지운다는 것이 개인의 몸성이나 얼굴성에서 비롯된 남성, 여성의 분명한 구분 때문에 중성을 찾는다는 것이 어렵게 들린다.

인호: 그러한 관객의 시각까지 고려한 안무의 방식이 중요한 것 같다. 올해 영국인 안무자 제임스 커즌스(James Cousins)와 <로잘린드(Rosalind)>라는 작업을 함께 했는데, 전형적인 춤에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 역할을 바꾸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소위 무용에서 전형적인 방식의 남녀의 춤을 보여주고, 같은 동작인데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보여준다. 안무가는 관객들이 이것을 보고 자신들의 성역할에 대한 관점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어색했다. 잠깐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무용수가 나를 들어 올리는데 불편했다. 하지만 작업이 끝나고 나니, 춤에서의 고정된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성별이 같더라도 그것에는 개인차가 존재할 것이고, 성별을 떠나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때, 더 다양한 춤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신체 탐색
- 범주화된 정체성이 아닌, 개별적인 정치성 찾기


재리: 조인호 씨는 성별을 지우는 것을 통해 무용수의 개별성을 더 찾고, 춤의 더 다양한 가능성을 찾는 것 같다. 장은정 씨는 <레드> 시리즈나, 최근의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이하 바비레따)> 등에서 오히려 여성의 경험을 토대로 여성성을 더 부각하는 방식의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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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정


은정: 나는 반대로 여성의 몸, 남성의 몸이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를 먼저 인정하는 것이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지점이 분명히 있고, 해낼 수 있는 거,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같은 성별 안에서도 개인차가 있고, 개인이 표현하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므로, 개인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한다. 관객들도 역시 안무가의 의도와 작품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보다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서 작업을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는 내가 하는 작업이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드러낸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남자가 못하는 나의 어떤 것들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요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성 무용수도 마찬가지로 춤에서 자신의 신체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70~80년대에 무조건 많이 뛰고 높이 차는 춤으로 남성성을 드러냈을지 몰라도, 어느 시점에서는 여성도 마치 남성이 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서로 경쟁하듯 강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의 몸은 다르고, 또 그 다름에서 할 수 있는 춤이 있는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레드>를 시작할 때부터 여성에 대해 예쁘고 날씬한, 즉 고정적 성 관념의 차원이 아니라 여자의 몸과 감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재리: 보라 씨는 안무가로서 여성/남성의 몸을 편견 없이 탐구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의 작업에는 여성무용수가 더 많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보라: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는데, 남성무용수들과 작업을 할 때 두려울 때가 있다. 남성무용수들과는 여성들과 대화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 같다. 작업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한데, 예민하고 모호한 부분을 남자와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남성무용수의 장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봤을 때는 남자들의 성향이 적극적이고 호기심을 가졌을 때,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남성들이 안무자가 많을 수밖에 없구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제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여성과 남성의 문제인지, 아니면 안무가의 방법이 무용수에게 이해되거나 전달되지 못해서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안무자가 작업의 방법과 방향을 분명하게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무자가 원하는 방법으로 무용수가 춤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지 않을까?



무엇이 젠더 구분의 규범을 재구성하는가


재리: 무용에서의 제도는 어떨까? 지금 안무가들이 제안하는 형식을 사려 깊게 읽어주는 그룹이 있나? 기존에 무용에서 지켜왔던 이분법적인 시각이나 젠더 구분에 대한 저항이 무용 제도의 변화를 발생시킨다고 생각하는가?

보라: 안무가로서 작업 자체에 대한 이야기, 안무가가 제안하고 있는 것들이나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비평을 받고 싶다. 하지만 오히려 외부에서 평가를 받을 때 무용수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때가 있다. 물론 그들은 칭찬으로 하는 것을 알지만, 무용수들이 얼마나 예쁘고 날씬하고 여성스러운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불편하다. 나와 무용수들은 나름대로 탐구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전부로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거부하기 위해서 오히려 남들이 보기에 더 추한 모습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그것에 대한 성격도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호: 제도가 변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용은 거의 지원금에 의존해서 작업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전통을 제외하고는 컨템퍼러리 무용으로 수렴되는 것 같은데 여전히 한국의 무용계에서는 장르 구분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작업은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 등을 구분해야 하고 그에 맞는 심사위원에게 평가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작업이나 실험에 영향을 준다.

은정: 콩쿨이나 학교 입시 제도가 지속하는 한, 이러한 구분은 지속 될 것 같다. 지금의 제도 내부에서 권력의 관계가 존재하고, 개인이나 집단의 힘을 공고히 하기 위한 규범들은 흔들림이 없다. 과거에 대학의 무용과 입시에서는 특정 학교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 스타일을 익혀 들어왔는데, 요즘에는 학교의 스타일보다는 유행하는 춤을 익혀 오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으로 콩쿨과 같은 영상을 보거나 댄싱 9과 같은 방송에서 소위 멋있게 보이는 춤을 따라 하는 것이다. 마치 올림픽에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기술이 있는 것처럼 수험자들이 거의 비슷한 춤을 출 때는 폭력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두 경우가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의 몸에 맞는 춤과 자신만의 표현을 한다기보다는, 외부 규격에 춤을 끼워 맞춘다는 느낌이 든다.



몸은 표현한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


재리: 좀 더 춤을 사회문화적으로 확장해서 생각해볼 때, 춤을 통해 경험된 신체의 특수성을 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장애인의 특수한 몸이 장애인의 정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무대에 서고, <바비레따> 같은 작품에서 보면 거기 안에 여성무용수와 심지어 관객들도 자기 삶에 대해 발언하기도 한다. 여성으로서 겪었던, 그리고 중년의 여성으로서 겪었던 삶들이 작품 안으로 계속 개입이 되는 방식으로, 그래서 여성과 남성의 문제가 더 드러나게 되고 몸이 지니는 정치성이 춤의 중요한 위치를 지니게 되는 것 같다. 이 작업에서 관객들이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무용수도 아닌데 춤을 추고, 말하기 힘든 개인의 사적인 부분까지 털어놓는 것을 불편해하지는 않았는지?

은정: 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그러한 과정이 쉽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바비레따>를 하면서 일반인 여성들과 워크숍을 했는데, 자신의 신체를 만지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고, 어떤 사람은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겨드랑이가 보여서 불편하다고 했다. 작업을 통해서 성별을 떠나 신체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과 억압이 폭넓고 강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사회적으로도 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존재하는데, 미디어에서 아이돌 그룹이 추는 자극적이고 젠더 구분이 확실한 춤이 넘쳐나거나, 외모가 스펙의 일부가 되는 것도 신체를 소비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신체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가지는 문제들이 아주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다. 무용 내부에서 여성/남성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사회문화적으로 확장해 고려해볼 필요가 있으며, 예술가는 과연 무엇을 제안하고 행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분명히 컨텀퍼러리 작업자라고 한다면 사회 문화적으로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영향을 받는 것을 넘어서 아주 적극적으로 무대 위로 끌고 와야 되고,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그것에 대한 발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경험과 접점이 생길 때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라: 무용계에서, 또 작품에서도 남성 여성 혹은 안무가와 무용수, 스승과 제자 등에서 발생하는 권력관계는 사회적 제도와 무용계 내부에서 구성되는 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런 것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볼 때가 불편해서 극장에 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재리: 세 명의 안무가가 서로 다른 경험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특정한 구분과 영역에 속하기보다는 개인성을 주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 같다. 퀴어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입장에서 본다면 춤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고정된 정체성을 찾기에 신체는 안정적이지 않다. 안무가가 탐구하는 신체, 행위를 하는 신체에서 개인의 정치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체의 탐색을 통해서 오랫동안 자신의 감각과 경험에 대해 철저하게 바라볼 수 있고, 자기반성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존의 규범이나 규정들을 전복시키고 예술이나 사회에 새로운 제안을 한다는 것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한계점도 있는 것 같다. 교육이나 훈련은 무용수의 신체에 각인되어, 그것을 떨쳐내고 새로운 신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최근 학문이나 예술적으로, 또는 현실 정치에서 논의되는 젠더의 문제에 무용(예술)은 어느 정도 가닿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여성의 몸이 아니라 세포 수정을 통해 생산할 수 있다는 의학적 진보는 출산이나 모성애와 같은 자연적 본성이라고 믿었던 여성성에 대해 재질문하는 반면, 무용에서의 여성성에 대한 질문은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김재리 무용학 박사, 무용 이론가. 국립현대무용단 드라마투르그를 역임했고, 성균관대학교, 국민대학교 등에 출강했다.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 연구원, 신진연구자에 선정되었으며 최근 ‘사라지지 않는 예술: 무용 이론을 말하다’(공저)를 출간했다. 안무의 현장에서 이론을 구성해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몇몇 안무가와의 드라마투르지컬 협업 및 ‘컨템퍼러리 댄스에서의 아카이브’에 관련한 개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김보라 아트프로젝트보라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 중이다. 여성의 시각에서 신체 탐구와 움직임 리서치를 지속하면서 <소무> <각시> 등의 작품을 소개했다. 현재는 ‘지각하는 신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리서치 중이며, 신체에 더 집중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장은정 ‘일상의 위대함을 위하여’를 모토로 몸, 춤, 삶을 연계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초빙교수를 재직 중이며, 프로젝트 그룹 ‘춤추는 여자들’의 대표이다. 대표작으로는 <레드 시리즈> <예감> <몇 개의 질문> <하나> <비밀의 정원>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 등이 있다. 53세 나이의 ‘몸’을 들여다보고 나를 확인해가는 솔로 3부작을 준비 중에 있다.

조인호 In Dance Company의 대표이다. 한국무용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창작춤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홀로시나위> <아리랑> <생각하기> 등이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임학선 댄스위의 정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홀로시나위’의 솔로버전을 4인무 버전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리서치를 진행 중이다.


김재리_무용학자, 드라마투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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