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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6.12.29 조회 4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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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선 춤, 시대를 위로하다

김서령_프로듀서/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줌인 프로듀서,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김서령 관련 사진

[승무] 장순향-11. 광화문 광장 (사진 김이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지난 10월 12일 한국일보 기사를 통해서이다. 2015년 5월 청와대에서 작성하여 각 기관으로 내려온 블랙리스트는 세월호 정부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세월호 시국선언,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에 서명한 예술가 등 9,473명의 이름이 적힌 A4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명단이었다. 사실 이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확인되기 전부터 이미 문화예술계 내에서는 블랙리스트가 돌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있어왔다. 국가의 조직적인 예술검열에 대한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이 없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 심사과정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던 예술검열, 블랙리스트 파문은 관련 문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결국 사실로 확인되어 국민들을 큰 충격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최순실-차은택-김종에 의한 문화예술체육 분야의 국정농단은 생각보다 광범위했고, 여기에 재벌 기업의 대가성 기부금 모금과 특혜 의혹까지 가세하여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헬조선’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끝까지 묻는다!―끝나지 않은 2015년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예술검열 사태


지난 10월 말 여느 때와 같이 무심히 페이스북을 넘겨보던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야 할 정영두 안무가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주영 한국문화원 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정영두 안무가는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6일까지 10일간 매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한국문화원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했는데 이는 지난해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프로그램으로 준비되던 중 불과 공연을 2주 앞두고 일방적인 공연 불가 통보를 받았던 앙상블 시나위의 <소월산천>의 예술검열 사태에 대해 당시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으로 그 결정을 주도하였던 용호성 현 영국문화원장에게 다시금 책임을 묻기 위함이었다. 정영두 안무가는 2015년 당시에도 본인이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던 10월 31일 금요공감 공연일부터 며칠간은 국립국악원 앞에서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1인 시위를 펼친 바 있었다.



줌인 프로듀서,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김서령 관련 사진



‘점잖은’ 무용인들도 뿔났다!
-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250 무용인 동참, 한국춤비평가협회 시국선언, 전국 144개 무용단체 시국선언


11월 4일(금) 블랙리스트 예술행동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은 이 땅의 문화예술인들의 연대를 통해 전 국민의 축제와도 같은 촛불 집회의 시작점이 되었던 사건이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예술가들과 자발적 블랙리스트가 된 예술가들을 주축으로 박근혜 퇴진, 차은택-김종 구속수사, 박근혜 게이트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 실시, 문화부역자 사퇴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시국선언문이 준비되었는데 이에 동참하는 문화예술인 수만도 7,750명에 달했다. 무용계에서는 김윤진 안무가의 제안으로 SNS를 통한 무용인 서명이 시작되었고 불과 2일 만에 250명의 무용인들의 서명을 받아 동참하였다. 뿐만 아니라 11월 4일에는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이름으로 시국선언문이 발표되었고, 11월 8일에는 한국무용협회를 주축으로 하여 전국 144개 무용단체가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무용인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말수(?)가 적고 점잖은(?) 무용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금싸라기 땅에 입주한 가난한 예술가들-광화문 캠핑촌 문화행동’


11월 4일(금) 11시에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진행된 블랙리스트문화예수인 시국선언 기자회견에는 200여명의 각 분야 문화예술인이 참여하였다. 기자회견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긴급예술행동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인 분노와 항의의 표현으로 펼쳐진 텐트들은 (당시 경찰들과의 심한 몸싸움 속에서 예술가들이 온 몸으로 지켜낸 텐트이다.) 두 달이 넘도록 여전히 광화문을 지키며 촛불집회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주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전 사회적인 항의 움직임이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각종 문화예술단체는 물론 앞서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 왔던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사회운동네트워크, 쌍용차, 기륭전자,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 등이 광화문 캠핑촌에 결합했고 일반 시민들도 입주 신청을 통해 동참했다.
광화문 캠핑촌에서는 매일 아침 9시 입주민들이 모여 촌민회의를 연다. 이후 오전에는 자체적으로 캠핑촌 정비 시간을 갖고 12시에는 촌민들로 구성된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이 청와대, 국회, 대기업 본관 등 비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실제 청소를 통한 예술행동을 진행한다. 그리고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는 매일 시민들의 자발적인 1인 시위가 이어진다. 저녁 6시부터는 광장에서 매일 다른 프로그램으로 촛불문화제가 열린 뒤 촛불행진이 이어진다. 특히 금요일과 토요일은 음악, 무용, 연극, 미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참여로 빽빽한 일정의 전시와 공연, 체험 프로그램들이 시민들과 만난다.
이곳 광화문 캠핑촌에서도 여러 무용인들의 예술행동이 매주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양대학교 사회교육원 무용학과 주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블랙리스트 2관왕 장순향 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민족춤협회가 주축이 되고 있다. 한국민족춤협회는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지난해 진행된 추모제 <세월호 연장전>에 참가한 무용인들과 그 뜻에 동참하는 춤꾼, 서예가, 풍물, 배우, 비보이, 소리꾼, 탈꾼, 기획자 등 많은 장르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색적인 춤단체라고 한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춤교실 및 공연으로 예술행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주말 촛불집회 중앙 무대에서 여러 차례 선보인 장순향 교수의 <하야춤>과 한국민족춤협회의 <시국춤! 하야하라 굿판>은 전국에서 모여든 민족춤협회 회원들의 참여로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독립무용가들의 몸으로 전하는 외침!―매주 목요일 광화문 광장 무용인 1인 시위


한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는 박근혜 퇴진 및 문화행정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무용인 1인 시위가 11월부터 매주 목요일 낮 12시~1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1월 3일 김윤진 안무가를 시작으로 11월 10일 댄스씨어터 틱의 김윤규&서진욱, 11월17일 오설영, 11월 24일 장은정, 김혜숙, 아마추어 그룹 추자, 12월 1 일 박소정, 12월 8일 나연우, 12월 15일 춤바람커뮤니티 3355의 원을미, 박윤채영이 광화문을 지켰고, 12월 22일 윤성은, 12월 29일 송주원, 1월 5일 조형준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줌인 프로듀서,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김서령 관련 사진

상단좌측부터 김윤진(ⓒ김윤진), 김윤진(ⓒ김윤진), 댄스시어터 틱(김운규, 서진욱, ⓒ김서령)
하단좌측부터 장은정(ⓒ박성혜), 나연우(ⓒ박성혜), 원율미, 박윤재영(ⓒ박소정)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로 진행되는 1인 시위이지만 목요일만큼은 독립 안무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매주 안무가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흥미로운 콘셉트들로 진행되어 점심시간 광화문을 가로지르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광화문의 칼바람과 차가운 돌바닥을 딛고 춤추는 무용인들의 결연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무용인들의 활동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는데 지난 11월 12일 부산 서면에서 진행된 박근혜 하야 부산 민중총궐기에서는 부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무용가들이 대거 참여한 문화공연이 열렸다. 춤패 배김새 대표 하연화의 평화맞이굿을 비롯하여 김경미의 입춤, 강미선의 지전춤, 정승천의 보리둔디춤 등 다양한 전통 및 창작춤이 거리에서 추어졌고 촛불집회를 찾은 수많은 부산시민들과 함께 했다.
(*영상 링크: https://youtu.be/8_JqioVmRG0 영상제작-이스크라21)



줌인 프로듀서,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김서령 관련 사진

하연화(부산)―11.12 부산민중총궐기(사진 장영식)


범무용인 예술행동-도시의 노마드


광장에서는 전문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시민들의 예술행동도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댄스프로젝트 시민춤단에서 파생된 그룹 ‘도시의 노마드’는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시청뿐만 아니라 여러 관련 행사들에 참여하여 춤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11월 12일과 11월 19일에는 광화문 국민 총궐기대회에 참여하여 프레스 센터 앞에서 <달의 아들>을 공연했고, 11월 26일 총궐기대회에서는 즉흥 공연을, 그리고 12월 8일 탄핵 결정 전날에는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진행된 언론노조 총력투쟁결의대회에서, 12월 10일에는 통인동 사거리에서 진행된 참여연대 행사에서 역시 <달의 아들>을 공연했다. 도시의 노마드 공연의 백미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서클춤인데 모두가 손을 잡고 원형으로 둘러서서 이 땅의 올바른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춤을 추는 모습은 평화로운 촛불 집회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줌인 프로듀서,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김서령 관련 사진

[달의 아들] 도시의 노마드 (1)―11.12 국민 총궐기 프레스센터 앞(사진 최보결)


혼란한 시국.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12월 9일, 100만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토요일에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든다. 아직 헌재의 결정이 남아있고, 특검을 통해 밝혀내야 할 진실은 수도 없이 많이 쌓여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직 우리 국민들이 해야 할 몫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용인들은 대부분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도 발언을 하지도, 어떠한 행동을 하지도 않는 그룹으로 인식되어 왔고, 내가 지켜본 모습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국민들이 삶이 변화했듯이 무용인들도 가만히 있어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자신들의 예술언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이어져 온 예술검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파문,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에 이르기까지 격랑의 소용돌이에 흔들리고 있는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무용인들의 외침은 계속, 더 크게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 그것이 우리 국민들 각자의 역할일 것이다. 무용인들은 무용인답게 우리의 무기인 춤으로 이 땅을 지키고, 세상을 바꾸고, 다시 희망을 꿈꾸면 되는 것이다.

다시 토요일, 오늘도 자연스레 발걸음이 광화문으로 향한다.
민주주의를 바로잡고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모인 평범한 사람들, 희망을 향한 그들의 간절한 외침이 있기에 12월의 광장은 생각보다 참, 따뜻하다.



김서령_프로듀서/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1999년 공연예술기획 이일공에서 기획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고 2004년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을 공동 설립하여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 축제, 예술교육 프로그램 등을 기획, 제작, 컨설팅 하고 있다. 2013년~2014년 문화역서울 284 예술기획팀 공연/다원예술 감독으로서 새로운 공간과 다장르 예술에 대한 탐구와 실험을 진행하였으며, 2015년에는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예술감독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예술로서의 국악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김서령_프로듀서/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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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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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순향2020-06-12

    승무를 춘게 아니라 블랙을 검은 장삼으로 표현했을 뿐 내용이나 형식은 전혀 다릅니다만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