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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6.11.24 조회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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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서 번역으로, 독립으로

김해주_독립큐레이터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아르고스 센터 포 아트 앤 미디어1)에서는 퍼포먼스와 댄스 영상을 모은 <스텝 업!>(Step Up!)이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1970-2000 카메라에 담긴 벨기에 무용과 퍼포먼스’(Belgian Dance and Performance on Camera 1970-2000)라는 부제가 붙은 이 전시는 지난 10월 시작해 2017년 7월까지 약 10개월 간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다. 전시는 각기 다른 디스플레이가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퍼포먼스 영상이 가진 운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고 오십 여 개의 작품을 개별 스크린과 모니터에서 소개하기 위해 각각의 챕터 내의 작품들은 정기적으로 다른 작품으로 교체되고 있다.



줌인 독립큐레이터 김해주 관련 사진



동시대 벨기에 예술에서 퍼포먼스와 무용은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60년대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는 카페와 바를 중심으로 해프닝이 일어났고, 1970년대 브뤼셀, 겐트, 리에주의 아트센터와 예술학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퍼포먼스가 실행되었다. 1978년에는 복합적인 장르를 소개하는 브뤼셀의 아트센터 뵈르스하우뷔르흐(Beursschouwburg)에서 첫 번째 퍼포먼스 아트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무용의 경우는 1980년대 새로운 세대의 댄서와 안무가들이 등장해 1990년대 벨기에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함께 성장했으며 1995년에는 P.A.R.T.S와 같은 무용학교도 시작되었다. 벨기에의 무용은 특히 연극의 언어, 서커스, 시각예술 등을 다양하게 결합한 형태로 이목을 끌었다.

시간과 신체의 움직임에 기반을 둔다는 공통점을 가진 무용과 시각예술의 퍼포먼스는 작가들 사이의 교류와 협업을 통해서 연결되어 왔다. 또한 비디오나 필름과 같은 영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는 무엇보다 퍼포먼스가 가진 일회적인 속성에 기인한다. 한 번 실행하면 사라지는 퍼포먼스를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영상이 점차 작업 내부의 장치로 활용되면서 카메라의 특성에 조응하는 퍼포먼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960년대 촬영기기가 보편화된 후, 스튜디오나 집에서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작가들의 자기 반영적인 초창기 퍼포먼스 영상작업에서부터 무대나 전시장에서 상연되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것, 스크린이나 모니터를 활용하는 퍼포먼스, 카메라 앵글, 조명과 무대 등을 사전에 준비하여 움직임을 촬영하고, 편집과 사운드 등의 후반 작업을 거치는 영상작업까지 카메라와 몸의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형식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전시 <스텝 업!>의 경우 어떤 특별한 분류의 기준 없이 이 스펙트럼 안에 있는 다양한 작업들을 소개한다. 부제에서는 ‘댄스와 퍼포먼스’라고 분리된 제목을 두고 있지만 실제 전시에서는 시각예술에서의 퍼포먼스와 무용에서의 영상을 장르적으로 비교하거나 분류하지 않고 각각의 작업 안의 몸짓, 구성, 시점 등의 유사점과 차이들을 자율적으로 읽고 연결할 수 있도록 펼쳐놓았다. 이는 또한 기획자의 입장에서 시각 예술에서의 퍼포먼스와 무용을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거나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것이기도 하다.



줌인 독립큐레이터 김해주 관련 사진

에릭 포웰, 바이올린 파즈(1986), <스텝 업!> 전시 전경, 아르고스 센터 포 아트 앤 미디어


11월 말 현재는 첫 번째 챕터 중 두 번째로 구성을 바꾼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장 동선의 입구와 끝에 마치 괄호의 양쪽 끝처럼 놓인 두 개의 대형 스크린에 티에리 드 메이(Thierry De Mey)의 <손/테이블 뮤직>(Hand/Musique de Table, 1987)과 안무를 에릭 포웰(Eric Powels)이 1986년 16mm 필름으로 촬영한 <바이올린 파즈>(Violin Fase)를 상영하고 있다. 1982년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에 맞춰 만든 케어스마커의 네 개의 안무인 <파즈>는 사실 티에리 드 메이의 촬영 버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영상은 안무에 따라 극장, 스튜디오 등 촬영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티에리 드 메이는 1980년대 초부터 안느 테레자 더 케어스마커 외에도 빔 반데케이버스, 그리고 그의 여동생인 미셸 안느 드 메이의 작업에 영상으로 함께했다. 또한 그는 뮤직 앙상블인 막시말리스트!(Maximalist!)를 창단했고, 익투스 앙상블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티에리 드 메이는 무용영상 제작에 있어서 단순한 기록 이상의 연출을 보여준다. 그의 영상은 촬영의 대상이 되는 본래 안무를 더 넓은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작업이면서 그 자체가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상연된다. <로사스 댄스 로사스>(Rosas Danst Rosas, 1997)는 <파즈>와 함께 더 케어스마커와 티에리 드 메이를 동시에 알린 작업이다. 루뱅에 위치한 건축 학교에서 촬영한 이 영상은 건물의 기하학적 공간 형태를 최대한 활용하였고 필름 버전이 1983년 초연된 실제의 공연보다 짧은 길이로 제작되었다. 티에리 드 메이가 직업 음악에도 참여했는데 <파즈>에서 시작된 반복적인 음악과 움직임의 연결이 더욱 심화되었다. 네 명의 무용수는 일상적인 동작들을 반복하여 추상화된 짧은 감정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안무를 촬영하는 경우에는 원래 공연의 기억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기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영상이 극장에서 그 공연을 보았을 때의 기억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러나 ‘완벽한’ 기록은 불가능하고 모든 사람의 다른 기억을 하나로 수합할 수는 없다는 것이 퍼포먼스 기록의 특징이다. 퍼포먼스의 기록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인 하나의 시선을 선택하고, 그 시선의 기록으로서 남는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실험영화 감독이자 1970-80년대에 이본 라이너와 트리샤 브라운 등 여러 안무가의 작업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했던 바베트 맨골트(Babette Mangolte)는 퍼포먼스의 기록에 있어 완벽한 컨트롤은 불가능하며 관객의 위치가 작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간에서 관객과 퍼포머 사이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명의 관객으로서 카메라의 위치를 잡는 것이다. 맨골트가 가급적 객관적인 기록을 위해 필요한 주관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티에리 드 메이의 영상은 감독의 주관적인 해석과 시선을 더욱 자유롭게 활용한다.

이 전시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윌리엄 포사이스의 <원 플랫 씽>(One Flat Thing)을 티에리 드 메이가 영상의 형태로 만든 <원 플랫 씽 리프로듀스드>(One Flat Thing, Reproduced)는 원제에 ‘reproduced’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공연의 기록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한다. 티에리 드 메이는 한 명의 관객의 시선으로서 촬영하는 동시에 일반적인 공연 관람의 동선과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각도와 앵글로 이 복잡하고 역동적인 안무를 기록한다. 카메라는 신체에 근접하거나 댄서들이 소품으로 사용하는 테이블의 아래에 함께 들어가거나 부감으로 춤의 장면을 본다. 관객들의 시선이 닿는 대상을 각기 순간적으로 선택하며 바라보게 되는 라이브 공연과 달리 이 작업은 포사이스의 작업을 티에리 드 메이의 해석과 카메라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된다.



줌인 독립큐레이터 김해주 관련 사진

티에리 드 메이, <손/테이블 뮤직>(1987), <스텝 업!> 전시 전경, 아르고스 센터 포 아트 앤 미디어


다른 안무가의 작업을 기반으로 하는 <파즈>나 <원 플랫 씽 리프로듀스드>와 달리 <손/테이블 뮤직>은 작곡가로서의 그의 작업과 영상이 결합된 작품이다. 이 작업은 세 개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여섯 개의 손을 위한 작곡인데, 이 경우에도 신체의 움직임이 영상과 음악 작업의 출발점이다. 세 명의 타악 연주자는 각각의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손을 악기처럼 사용하여 연주를 진행한다. 연주는 매우 간단한 동작으로 구성된 스코어에 기반을 둔다.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치기(le plat), 손등으로 테이블을 때리기(le revers) 그리고 손등으로 테이블을 밀기(le dactylo) 등의 동작의 반복으로 리듬이 만들어진다. 영상은 미디엄 샷과 클로즈업을 위주로 한 여러 각도와 크기로 세 사람의 연주를 충실히 담는다. 특별한 연출이 강조되기 보다는 세 연주자의 반복적인 손의 움직임이 하나의 무용 작품처럼 화면에 담길 수 있는 방식으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손이 연주이자 춤이 되면서 작곡이 안무와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이 작업에서 프레임, 소리, 편집 등 영상의 모든 요소는 음악과 상호적으로 표현의 강도를 증폭시킬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간다. 이처럼, 티에리 드 메이의 작업은 퍼포먼스의 기록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퍼포먼스의 움직임과 동반하는 음악을 재료로 활용한 영상이 되며, 이는 또한 자신의 음악과 작곡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1) Argos Center For Arts and Media http://www.argosarts.org/



김해주_독립큐레이터 시각예술과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안무사회>(백남준아트센터, 2015), <결정적 순간들>(국립현대무용단, 2014), <Once is not enough>(시청각, 2014), <Memorial Park>(팔레 드 도쿄, 2013) 등의 전시와 퍼포먼스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김해주_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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