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사물들]은 춤과 함께 한 사물들을 통해 한국 춤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탐색해 보고자 마련한 코너입니다. 춤에 사용되는 도구는 단순한 쓰임을 넘어,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그 쓰임과 함께 춤의 역사도 변화해 왔습니다. 2021년 한 해, 격월로 연재될 예정인 이 코너와 함께, <춤:in> 독자들이 춤 속의 흥미로운 사물들과 한국 춤을 새롭게 만날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칼. 검(劍). 검기(劍器). 검무(劍舞).
칼은 흔히 사물을 자르거나 베어내는데 쓰는 도구를 통칭한다. 용도는 다양하다. 요리를 하거나, 연필을 깎거나, 면도를 하거나, 의사가 수술할 때, 조각을 하거나 무언가를 만들 때 등 종류를 모두 나열할 수는 없지만, 용도에 따라 칼의 모양도 기능도 다양할 것이다.
검(劍)은 칼의 한자어이다. ‘검’ 하면 역사물 속 무사(武士)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전쟁 장면도 떠오른다. 칼 모양이 직선이고 양날이 세워진 칼을 검(劍)이라 하고, 칼의 몸이 휘어지고 한쪽에만 날이 있는 것을 도(刀)라 한다. 검과 도의 모양이 다르니 사용 방식도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검의 손잡이나 칼집에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검의 주인이 추구하는 가치관, 도덕적, 예술적 지향을 엿볼 수 있다.
검기(劍器)는 검처럼 쓰는 도구를 말한다. 검의 모양으로 만든 도구이니, 진검(眞劍)은 아니다. 대개 검무를 출 때 드는 무구(舞具)를 말하는데, 쌍으로 2개를 사용하며, 날을 세우지 않았다. 쇠로 만들어 진짜 검처럼 반짝거린다. 또 나무를 깎아서 만든 목검(木劍)도 있다.
이 검기를 들고 추는 춤이 검무(劍舞)이다. 우리 역사에서 삼국 통일 이전 신라의 화랑 황창랑이 백제 왕을 치기 위해 검무를 추었다는 설화는 시대를 넘어 전해졌다. 또한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에도 고구려 군사가 검무를 추며 행진하는 모습이 남아있다. 검무는 오랜 역사와 무수한 이야기와 인물을 품고 있는 춤이며, 검기 역시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크기와 모양, 문양을 보여주고 있다.
현행 검무에서 사용하는 검기는 참으로 예쁘다. 길이는 팔뚝 정도이고, 손잡이와 칼등에 매듭이 달린 유소 장식이 달려있다. 얼굴이 비쳐질 정도로 광택이 나는 칼날 위에 붉고 푸른 비단실로 만든 매듭과 술 장식이 선명하게 어울린다. 춤꾼의 공간에서 장단을 타면서 칼은 언뜻언뜻 번쩍이고, 붉고 푸른 유소가 날렵하게 흔들린다. 또한 칼이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칼의 몸과 손잡이가 연결되어 있고, 구름 모양의 쇠조각이 그사이에 끼워져 있다. 그래서 칼을 돌릴 때마다 ‘찰랑찰랑’ 또는 ‘창~! 창~!’ 소리가 나며, 긴장감을 일으킨다.
현행 검무의 검기 ⓒ한용훈
진주검무와 통영검무가 일찍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해주검무나 호남검무도 전승의 맥이 단단하며, 경기검무나 평양검무도 있고, 장검무로 재구성된 밀양검무도 추어지고 있다. 검무의 음악은 대개 타령 - 자진타령 - 타령 - 자진타령으로 추어지고, 초입에 염불 장단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검무의 동작은 다양하다. 칼을 빠르게 빙글빙글 돌리는 동작을 떠올리겠지만, 칼을 팔뚝에 얹어 단아하게 어깨춤을 추기도 한다. 팔을 옆으로 곧게 들어 칼을 아래로 떨구기도 하고, 칼목의 쇠조각을 눌러 잡아 검기를 곧게 뻗는 동작도 구사한다.
그런데 이렇게 검무에서 칼의 몸이 돌아가게 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이다. 19세기 말 즉 조선시대까지 추어진 검무에서 검기의 칼 몸이 돌아가는 광경이나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서양식 극장이 들어오고, 예인들의 활동이 일제의 관리 감독을 받는 기생조합이나 권번을 통해서 전개되었는데, 엽서 사진이나 신문, 그림 등에서 검무 모습을 볼 수 있다. 칼의 몸이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칼 손잡이의 연결 구조가 바뀌었고, 칼의 목이 꺾어졌다. 손잡이와 칼의 몸 사이에서 손을 받쳐주던 받침대가 구름 모양의 쇠조각으로 바뀐 것이다. 또 칼은 짧고, 폭도 좁다. 검기를 만들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사진 한 장으로 춤을 모두 읽을 수는 없지만, 이 당시 검무에서 검기(劍氣)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엽서 사진 <어린 춤꾼(少女の 舞者)>도 검무를 추는 모습이다. 동기(童妓)들의 검기는 더욱 좁고 짧아 보이며, 춤추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대정권번 기생의 검무 / 어린 춤꾼의 검무
무슨 연유로 일제강점기에 칼의 목이 돌아가게 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때부터 현재까지 칼의 목이 돌아가는 검기로 검무를 추고 있는 것이다. 진주검무가 1967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진주검무의 예능보유자들은 젊은 시절 진주권번에서 활동했던 예인들이었으니, 일제강점기 검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후기까지 검기(劍器)의 본래 모양은 반듯했었다. 신윤복(1758~ ?)이 그린 <쌍검대무(雙劍對舞)>는 익히 알려진 검무 그림으로, 검기의 모양새뿐만 아니라 검을 다루는 품세와 검무의 복식, 검무가 뿜어내는 정조(情調)도 느낄 수 있다.
신윤복의 <쌍검대무> 부분, 간송미술관 소장
치마가 날릴 정도로 춤이 역동적이며, 대무(對舞)의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기녀는 검기를 다른 각도로 나누어 쥐고서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무예도보통지》의 <쌍검> 동작에서 ‘향우방적세(向右防賊勢)’의 자세이다. 오른쪽 기녀는 오른팔을 들어 올려 긴장하고, 왼손에 쥔 검기를 오른 겨드랑 밑으로 넣어 힘을 비축하고 있다. <쌍검> 동작에서 ‘초퇴방적세(初退防賊勢)’의 모습이다.1)
그리고 검이 팔뚝 길이가 아닌 팔 길이만큼 긴 장검이다. 저 검이 진검이라면 기녀는 검술 훈련을 따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오른쪽 기녀의 검기에는 유소가 달려있으나, 왼쪽 기녀의 검기에는 장식이 전혀 없다. 신윤복이 왼쪽 기녀의 검기에 달린 유소를 깜박 잊고 그리지 않았던 것일까. 모를 일이다.
이렇게 민간에서 추어지던 검무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기획한 수원 화성의 봉수당 진찬에서 처음으로 궁중 정재로 추어지게 되었다. 이후 궁중의 연향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한 정재 종목이 되었다.
검무가 궁중으로 들어가자 검기는 궁중의 격식을 갖추었다. 1829년 (순조 29) 궁중 연향에서 검무는 ‘검기무(劍器舞)’로 명명되었고, 검기(劍器)는 무구(舞具)로 제작되었다. 궁중에서 진검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검의 날을 세우지 않았고, 검의 등 즉 칼등에 멋을 내기 위해 비늘 모양을 뾰족하게 돌출시켜 비단실로 만든 술을 달았다. 손잡이에는 나비 모양의 매듭이 들어간 유소를 달았다. 검기는 정철칼날(正鐵刀刃)을 사용했는데, 주재료인 시우쇠는 무쇠를 불려서 만든 쇠붙이의 한 가지라고 한다.2)
조선 후기 연향을 기록한 의궤에 검기의 도식이 있다. 흑백으로 그려진 그림에서 검기가 단순해 보이지만, 헌종 무신년(1848) 진찬을 기록한 병풍 그림에서 검기와 검무는 화려하다.
순조 기축(1829)《진찬의궤》에 실린 검기의 모습3)
헌종 무신(1848)《진찬도병》통명전 진찬도 부분4)
이를 통해 검기가 다양한 모양새로 춤추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그림에서는 칼을 잡기 전 롱검(弄劍)하는 장면이라든가, 검을 잡고 일어나 대무를 하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궁중 정재의 그림 중 유일하게 검기무의 그림은 치맛자락의 흔들리는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궁중에서 검기무는 인기 있는 종목이었던 것이다.
민간에서 검무를 보고 기록한 시문들을 보면 검무는 더욱 역동적이고, 검기(劍氣)가 가득한 춤이었다. 박제가(1750~1805)가 남긴 <검무기(劒舞記)>에서 그 감흥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검광이 현란하여 그 얼굴이 드물게 보인다. … 가볍게 걷다가 도약함이 마치 땅을 밟지 않은 듯하다. 보폭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남은 기운을 다한다. 무릇 치고, 던지고, 나아가고, 물러나고, 위치를 바꾸어 서고, 스치고, 찢고, 빠르고, 느리고 하는 동작들이 다 음악의 장단에 합치되어 멋을 자아낸다. 이윽고 쨍그랑 소리가 나더니 검을 던지고 절하였다. 춤이 끝난 것이다. 온 좌석이 빈 것처럼 고요하여 말이 없다. 음악이 그치려는지 여음이 가늘게 흔들려 소리를 끌었다.”5)고 했다. 무예 동작과 같은 검무의 춤사위가 다양하게 전개되는데, 검무가 끝난 후 좌중에 검기가 가득하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검을 들고 추는 검무는 검(劍)이 갖는 상징성으로부터 비롯된 춤이다. 자른다, 베어낸다는 원초적인 기능으로부터 검은 절단하다, 결단하다, 지킨다, 의협(義俠), 무인(武人), 무예(武藝), 대결 등의 개념들이 연상된다. 그리고 그 치열함 속에 허무(虛無)와 낭만(浪漫) 그리고 탈속(脫俗)도 떠오른다. 특히 조선후기에 기녀가 추었던 검무는 이러한 개념과 이미지들을 함축하며, 미적 완성을 추구했던 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