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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22.12.16 조회 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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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솔_춤in 편집위원

요안 부르주아, 그 이름 뒤에 가려진 저자들



요안 부르주아, 그 이름 뒤에 가려진 저자들



박다솔_춤in 편집위원



요안 부르주아는 프랑스 서커스 예술가이자 현대무용 안무가로 현재는 그로노블 국립 안무 센터(CCN2)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세련된 무대 연출과 독특한 도구의 사용으로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왔던 요안 부르주아는 인터넷에 올라온 한 익명의 비디오와 함께 표절 가능성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언어로 쓰이지 않은 까닭에 그 일치율을 따져보기 어려운 무용이나 서커스 같은 장르에서 저자성은 어떻게 인정되고 확보되는가? 현대 예술에서 종종 나타나는 ‘기존의 작품을 차용하여 전유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유효한 것인가? 질문해 본다.



서커스 세계에서 ‘저자’ 되기

서커스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특히, 새로운 기예 도구의 발명을 통해 고유한 저자성을 획득하는 것은 현대 서커스의 경향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다수의 현대 서커스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기예 도구를 해체 및 변형하거나 새롭게 발명하고 도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다양화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정신과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물질화시킨 집약체를 탄생시키는 데에 수개월 또는 수년, 인생 전체를 바쳐가며 몰두한다. 그러나 그 ‘몸과 정신이 물질화된 집약체’를 탄생시키는 것은 창작의 가장 초기 단계 혹은 창작의 사전 단계에 해당되며, 도구의 발명 및 제작 과정을 리서치 삼아 본격적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현대의 서커스 예술가들은 기예 도구의 발명만으로 독창성을 인정받기도 하나, 발명한 도구를 미학적으로 연출하고 형식화함으로써 저자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반면, 한 명 혹은 여럿에 의해 발명된 서커스 도구가 다른 예술가들에 의해 재사용, 재전유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흡사 훌라후프처럼 생겼으나 지름의 길이가 사람 키를 넘고 쇠로 만들어진 씨어 휠(Cyr wheel)은 1996년에 캐나다 서커스 예술가인 다니엘 씨어(Daniel Cyr)가 고안한 기예 도구로, 20세기 중반 독일에서 발명된 체조 기구 저먼 휠(German wheel)을 변형한 것이라 알려졌다. 씨어 휠은 현재 서커스 장르 안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기예로서 존재한다. 씨어 휠은 휠을 다루는 자의 신체 특징과 기호에 따라 크기, 무게, 재질이 다양화되고, 앞서 나열된 요소의 조합과 더불어 회전의 각도, 횟수, 방향 등에 따라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이 경우, 씨어 휠의 발명은 저자(발명가)의 이름과 함께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며, 이후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창작을 위한 수단으로서 도구가 재전유된다. 그 어떤 변형이 이뤄지더라도, 그것이 원작자에 의해 제작된 것이 아니더라도, 원작자가 생각하지 못한 획기적인 씨어 휠 기술이 탄생한다 하더라도, 도구에 새겨진 저자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저자의 이름이 새겨진(이미 그 저자성을 인정받은) 도구가 다른 사람에 의해 ‘창작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이로써 새로운 미학과 형식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는 미학적 형식 차원에서 새로운 저자의 탄생을 맞게 된다. 물론, 원작자에게 저작물을 사용하는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했는지, 어디까지를 원작자의 저작으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또 다른 (응당 이뤄져야 할) 논쟁을 야기한다. 그러나 만약 창작자가 아직 저자성을 공고히 하지 못한 다른 창작자의 도구를 동의 없이 사용하고, 도구뿐만 아니라 미학적·형식적 고유성까지 빌려와 작품을 만든 뒤 이를 통해 원작자가 취하지 못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 작품의 ‘저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요안 부르주아의 〈Celui qui tombe〉(기울어진 사람들, 2014)ⓒGéraldine Aresteanu


요안 부르주아 표절 논란의 시작

2021년 2월 6일, 소셜 미디어 비메오(Vimeo)에 〈l’usage des oeuvres〉(작품의 사용)이라는 제목을 단 익명의 영상 하나1가 업로드되었다. 이 영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커스 예술가이자 안무가인 요안 부르주아가 지난 약 10년간 발표해온 작품들의 몇몇 장면을 시기상으로 요안 부르주아보다 앞서 창작되고 발표된 다른 서커스 예술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배치해 시청자가 그 시각적 유사성을 비교할 수 있게끔 편집되어 있었다. 이 영상은 순식간에 소셜 미디어에 빠르게 확산되었고, 영상 내 언급된 당사자들이 하나 둘 자신의 작품이 요안 부르주아에 의해 표절 당했음을 인정/고발하는 입장문과 인터뷰를 발표하며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입장을 표명한 예술가들은 해당 비디오가 익명으로 올라왔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문제라 지적하긴 했으나, 표절의 심각성을 주지시키는 데에 집중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영상에서 언급되는 예술가들의 이름과 이들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기예 도구 및 연출 형식을 묘사해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끌로에 모글리아(Chloe Moglia)와 멜리사 본 베피(Melissa Von Vepy) - 매달리기(중력 버티기), 루시앙 레인즈(Lucien Reynes) - 큰 짐볼 위에 놓인 판자 위에서 행위 하기/공중에 매단 판자 아래 혹은 위에서 신체 상태 변화시키기, 요르그 뮐러(Jorg Muller) - 원형 기둥 모양의 수조 안에서 움직이기, 카밀 보아텔(Camille Boitel) - 연신 무너져 내리는 무대 세트들, 장 밥티스트 앙드레(Jean-Baptiste Andre) - 중력을 받는 몸을 이미지(실시간 영상 촬영)로 왜곡시키기, 피에르 펠리시에(Pierre Pelissier) - 인간 오뚜기 되기, 콜렉티브 쁘띠 트라베스(Collectif Petit Travers) - 정지점을 찾는 행위로서 베토벤의 ‘푸가’에 맞춰 저글링 하기…. 각각의 이름 옆에 쓰인 도구나 연출 형식은 해당 예술가들이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것들로, 그 자체로 이미 (아마도 서커스 세계 안에서) 저자의 이름을 대체하기도 한다. 문제는 요안 부르주아가 이것들을 ‘차용’이라는 명목하에 저자의 이름이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며, 그가 이 행위로 인해 예술가로서 더 많은 기회와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 행위가 우연히 일어났다기보다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다.


비메오(Vimeo)에 올라온 〈l’usage des oeuvres〉(작품의 사용) 중 캡쳐 이미지 01
출처:https://vimeo.com/509288862

비메오(Vimeo)에 올라온 〈l’usage des oeuvres〉(작품의 사용) 중 캡쳐 이미지 02
출처:https://vimeo.com/509288862

비메오(Vimeo)에 올라온 〈l’usage des oeuvres〉(작품의 사용) 중 캡쳐 이미지 03
출처:https://vimeo.com/509288862

논란이 점점 커지자, 연극·거리예술·서커스 국립센터(ARTCENA)에서는 해당 이슈를 공론화하되 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루 살피기 위해 홈페이지에 ‘작품의 사용으로부터’라는 주제로 요안 부르주아와 끌로에 모글리아, 그리고 쁘띠 트라베스의 공동 예술감독인 줄리앙 클레멍(Julien Clement)과 니콜라 마티(Nicolas Mathis)의 글을 싣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글은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요안 부르주아가 자신의 글을 통해 ‘예술사는 늘 아이디어와 모티프, 레퍼런스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변형하는 행위를 통해 이어져 왔다.’2는 입장을 밝히며 자신의 서커스도 레퍼런스의 차용을 창작법으로 이용한 것일 뿐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고유한 저자가 되었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시에 씨어 휠을 예로 들며 “한 창작자가 씨어 휠과 같이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나 기술, 경험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런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것이 도구나 기술, 경험만은 아닌 것 같다.


쁘띠 트라베스의 줄리앙 클레멍과 니콜라 마티는 동일 사이트에 요안 부르주아가 〈L'Art de la fugue〉(푸가의 예술, 2011)가 자신들의 작업 〈Pan-Pot〉(2006), 〈moderement chantant〉(잠잠히 노래하며, 2009)의 작업을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3을 실었다. 이들은 특히 요안 부르주아가 〈L'Art de la fugue〉에 삽입한 첫 장면이 〈Pan-Pot〉, 〈moderement chantant〉의 첫 장면과 완전히 똑같다고 설명한다. 두 사람은 해당 공연을 본 뒤 요안 부르주아에게 이와 관련해 대화를 나눌 것을 제안했지만, 거부당했음을 덧붙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자신들이 자기 작품을 공연하게 되었을 때, 관객들이 자신을 찾아와 ‘당신의 작품이 요안 부르주아의 작품과 완전히 똑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고 증언한다. 이는 결국 요안 부르주아가 작품을 단순히 사용한 것뿐만이 아니라, 작품을 점유하게 된 것임을 확인시킨다. 〈Celui qui tombe〉(기울어진 사람들, 2014) 초연 공연 출연자이기도 한 마리 퐁트(Marie Fonte)나 요안 부르주아의 대표작 중 하나인 〈Cavale〉 창작 과정에 참여하고 듀엣 공연에 출연한 에티엔느 사글리오(Etienne Saglio), 〈Ophelie〉(오펠리어, 2018)로 그와 협업을 한 요르그 뮐러는 르 몽드(Le Monde)지와의 인터뷰4에서 자신들이 요안 부르주아와 함께 작품 창작에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레딧의 창작 부분에서 삭제되었고, 따라서 이후 작품의 성공으로 인한 영광을 요안 부르주아가 독식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요안 부르주아가 서커스 창작에서 독창성과 저자성을 얼마나 해이하게 인지하고 이를 편의에 의해 사용하고 있는지 반증하는 부분이다. 그는 르 몽드지의 인터뷰 요청 또한 거부했다.



요안 부르주아가 점유한 것

요안 부르주아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도구와 테크닉, 경험을 사용하는 것이 예술사 안에서 이미 관습적으로 반복되어온 행위이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예술이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예술사에서 ‘차용’의 개념이란 예술작품의 원저자가 (그 시기가 생전이든 사후이든 간에) 독창성과 저자성을 공공연하게 인정받은 상태에서 다른 예술가에 의해 다시/새롭게/변형되고/재구성되며/의미화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원저자의 저자성이 인정받고 있는가는 무척 중요한 사안이다. 만약, 세계적인 유명세를 취한 자가 사용한 것이 특정 장르 안에 머물렀던 (그에 비해 유명하지 않은) 저자의 것이라면? 이를 통해 그가 더 많은 창작의 기회를 안게 되고, 그로써 원저자의 독창성과 저자성이 삭제 혹은 소멸되어 버린다면 어떠한가? 더불어, 그가 사용한 것에 도구나 개념뿐만 아니라 원저자의 미학적, 연출적 형식까지 포함된다면?


요안 부르주아는 그르노블의 르 쁘띠 불떵 드 그르노블(Le Petit Bulletin de Grenoble)을 통해 표절 당했음을 주장하는 다른 예술가들이 이 사건에 부당함을 느낀다면 왜 소송을 걸지 않는 것인지5 질문하며, 문제 제기가 불명확하고 근거가 없는 것이며 자신의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 발언에 대해, 해당 예술가들은 송사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고,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예술계에서 외면당하거나 경제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 등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익명의 비디오가 올라온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요안 부르주아는 여전히 그르노블 국립 안무 센터의 예술감독직을 맡고 있으며, 표절 논란이 있는 작품들 또한 계속 투어 공연을 하는 중이다. 물론, 다른 예술가들도 멈추지 않고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요안 부르주아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름들이 이미 한차례 지워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건재하고, 지워졌던 이름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다시 뚜렷이 써 내려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요안 부르주아가 점유한 것은, 과연 도구뿐만 일까?

박다솔_춤in 편집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한 뒤 , 프랑스 리옹 2 대학에서 공연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극단, 극장, 축제 등에서 기획자로 활동 했고 , 2013 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무용평론으로 젊은비평상 가작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몸의 행위를 바라보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연극, 무용, 거리예술, 서커스에 대해 쓰고, 말한다.
이 글의 필자는 요안 부르주아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14년부터 『웹진 아르코 』, 『더 아프로』, 『춤과 사람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그의 작업을 다룬 글을 발표해왔을 정도로 요안 부르주아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사람 중 한 명이다. 요안 부르주아 표절 논란 사건 이후, 자신조차도 일명 주류 예술가들의 작품을 주로 살펴봐왔음을 인정하고 서커스 창작에서의 도구의 발명과 그 사용에 대해 면밀히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다.
belle.dadasol@gmail.com
박다솔_춤in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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