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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21.08.12 조회 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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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

불확실함 속에서: 솔직하게, 나다운 춤을 추기

사당역 연습실 ⓒKenn. 김병구
Q 당신은 누구입니까?

춤을 좋아하는 사람, 박선화입니다. 춤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웃음) 이번에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새삼 느꼈는데, 제 인생은 정말 춤밖에 없더라고요. 춤뿐인 제 인생이 좋기도 한데, 어떻게 사람의 삶에 하나밖에 없을까 싶기도 해요. 주변 분들이 제게 항상 생각이 많아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구든 서울이든 해외든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연고지 없이 오랜 시간을 혼자 보내다 보니, 머리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가만히 정리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떠돌이 그 자체죠. (웃음)

의외로 전에는 정말 안정적으로 살았어요. 학교도 모난 데 없이 잘 다녔고, 졸업 후 들어갔던 대구시립무용단도 별 탈 없이 즐기면서 잘 다녔죠.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안정적인 생활이 제 삶에서 기운의 흐름을 막고 있는 듯 느껴졌어요. 삶이 편안한 만큼 제 속이 갉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언제부턴가 어디에 매여있으려 하지 않고,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어디론가로 항상 도망 다녔어요. 저는 매우 게을러서 자신을 지옥이나 불구덩이로 밀어 넣어야 뭔가를 하게 되거든요.

Q. 대구와 서울, 베를린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셨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바체바(Batsheva) 무용단에서 춤추는 것이 꿈이었어요. 대학생 때에는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꿈틀거리면서 움직임을 만들곤 했는데, 친구들이 ‘너 뭐 하냐?’고 물으면 ‘그냥 놀아'라고 대답했어요.(웃음) 그런데 2011년쯤에 어느 날 친구가 유튜브로 영상 하나를 보여주는 거예요. 너 좋아할 것 같다면서. 그게 바체바 무용단의 영상이었는데, 그 영상을 보는 순간 반해서 그날부터 제 마음에는 ‘여기를 가야겠다'라는 생각만 가득했어요. 그렇게 무작정 가가(Gaga) 워크숍을 들으러 뉴욕으로 향했을 때가 스물셋이었어요. 같은 해 겨울에는 무용단이 있는 이스라엘로 가서 일주일 정도 워크숍에 참여하고 여행도 다녀왔어요. 그러다 대구시립무용단에서 제공했던 해외연수 기회를 통해 키부츠(Kibbutz) 무용단과 연결된 학교 프로그램에서 기숙 생활을 하면서 수업 듣고, 공연도 올리고, 이후 2~3주 정도 여행도 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중간중간 해외를 갈 때는, 오직 춤만 추면 돼서 행복했던 기억이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에서 구직 활동을 하려니 쉽지 않았어요. 그땐 무슨 생각으로 그리 낙천적이었는지 3개월 정도면 될 거라 생각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한국에서의 제 경력은 참 애매하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그곳에서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아침에는 발레 클래스를 듣고, 연습실 빌려서 연습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Q. 여기는 어디입니까?

여기는 제가 인고의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낸 곳이에요. (웃음) 김보람 안무가의 <쓰리볼레로> 작품이 끝난 이후로 약 4개월간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동안 여기서 쭉 살았어요. 아침에 밥 먹고 와서 여기 계속 있는 거죠. 혼자 놀았다가, 기본 동작 연습했다가, 누워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연습실에 계속 혼자 있으니 자연스럽게 솔로 작품을 준비하게 됐어요. 그 작품이 뉴댄스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죠. 고등학교 때도 상과 일등과는 거리가 멀었던 터라,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으니 새롭더라고요.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으니 다른 작업과 연계되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죠. 그 시작을 함께 한 공간이라는 생각 때문에 제게 의미가 깊은 공간이에요.

Q 모므로살롱에서 발표한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모므로살롱에서 발표한 듀엣 작품의 베이스는 초연작인 제 첫 안무작이에요. 2017년에 <뻔한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렸죠. 그때 당시에 안무에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닌데, 하고 나니까 안무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 작품이 해외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영상으로 대체하게 됐어요. 그래서 촬영 공간 섭외 차 모므로살롱에 연락해봤는데, 모므로살롱에서 함께 공연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죠.

모므로살롱에 처음 방문했을 때, 공간 특유의 빈티지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 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보사노바풍 음악에 춤 추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올랐죠. 또,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샤를르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의 라 보헤마(La boheme)에 춤추는 상상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그런 상상들이 기존 작품 <뻔한 이야기>에 더해져 완전한 다른 작품 <미드나잇 인 살롱(Midnight in Salon)>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고, 3주 동안 ‘박선화 주간'을 진행하게 됐어요. 코로나로 인해 관객을 만나기 어려운 때였는데,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들을 만나서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Q ‘정제공장 프로젝트’도 진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안무 작업을 많이 하는 분에 비하여, 저는 그동안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춤에 담아내어 풀어내는 작업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그저 춤을 좋아하고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일 뿐이니까요. 저는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기보다 순간에 집중하는 움직임 자체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것에 초점을 두어 작업하고자 해요. 진실한 마음을 전하려면 가장 순수해지는 순간에 빠르게 집중하여 춤으로 담아내는 거죠. ‘정제공장 프로젝트’는 가장 날 것으로, 순수한 순간을 위해 달려가겠다는 제 방향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업이에요.

Q. 이곳에서 춤은 어떻게 발견되나요?

이곳은 제 춤이 가장 편안해지고 스스로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이에요. 춤을 위해 여기에 있진 않았지만, 여기서 보낸 모든 시간이 자연스럽게 춤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춤은 본래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야만 출 수 있는 거잖아요.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그 순간을 살아야 하고, 지금에 최선을 다해야 하죠. 작품에서도 그렇고 삶에서도 그렇고요. 이렇게 오늘만 보고 살다가 내일은 어떻게 살는지 걱정되긴 하지만, 결국 저답게 잘살고 있길 바라요. (웃음)

Q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올해 상반기에는 무용수 활동에 집중할 예정이에요. 개인 안무 작업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무용수 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야 공연을 올릴 수 있거든요. 그래도 하반기에는 흥미로운 작업 제안을 많이 받아서 다양한 활동을 할 것 같아요. 모든 것이 확실치 않지만, 확실한 건 어디서든 춤을 추고 있을 거라는 거예요. 솔직하게, 나 다운 춤을요. (웃음)

취재·정리 김연임_웹진 [춤:in] 편집장

박선화_무용가 박선화는 춤추는 순간에 본인이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는 무용가이다. 본능적이고 날 것의 움직임과 솔직하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 방향성으로 두고 작업 중인 프로젝트 단체 ‘정제공장’의 안무자이며, 프리랜서 무용수로서 여러 단체와 작업 중이다.
김병구_사진작가 김병구는 경계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그 이질감이 사라지는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나뭇가지를 잘라내면 수피들이 상처를 덮어내듯, 분리 또한 동합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경계 DMZ, 왕릉의 도시 경주, 문명과 원시의 공존 등을 사진으로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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